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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를 억까할 때

by 지푸라기



예전에 20대 때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었고


합격했었던 적이 있는데(지금은 제가 공무원이 아닙니다.)


그때 같이 노량진에서 공부했던 친구를


얼마 전에 만났네요.


그 친구는 그때 공무원이 되었고


저는 사연이 있어서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지요.




그때는 왜인지 많은 이들이


공무원시험을 너도나도 보는 분위기에


공무원 시험 공부 한다고 하면 뭔가


어려운 취업시장을 잠깐 피한다고나 할까


정식으로 어른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한


유예기간이 연장된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혹시 나만 그랬나요?)


처음에는 그러한 도피처로도 생각이 되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쉽게 시작했지만


나름 어렵게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에 마침내 합격했었고


전형기간 중에 불의의 사고로


면접을 아예 못 보게 되었고 합격이 박탈되었지요.


그 불의의 사고는


그냥 밤에 지나가던 술 취한 남자 셋이


처음 보는 저를 보고는


제가 기분 나쁘게 쳐다봤다면서


이유 없이 때렸고(그때 옆에는 제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사타구니 근육 파열로


저는 거의 불임이 될뻔했고


그때의 수술로 인해


공무원시험 면접기간에 출석도 못하고


그냥 불합격처리되기까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노력의 정당한 대가를 타인에게 빼앗기고(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갈망하던 공무원이 되지 못했고


제 노량진 동료였던 친구는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공무원이 된 친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제 인생은


마치 거기서 실패한 듯 보였고


그 친구는


인생에 꽃길만 펼쳐졌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아마도


직장도 결혼도 뭐든지 나보다 낫고 좋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었네요.




각자 사회로 나아가


각자의 업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던


30대 초중반에


어느 날 그 친구가 갑작스레 결혼한다고 연락이 와서


그 친구를 만났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운 여인이


그 친구의 피앙세였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소극적이고 말수도 없던 그 친구가


제가 한 때 선망했던 공무원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예쁜 신부와 결혼까지 하게 되는 모습을 보니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는데 많이 부러웠었네요. (졌구먼)


'나는 결혼을 이 친구처럼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그때 했었고요.




또 시간이 흘러


그렇게 계속


바쁘게 서로가 살아갔고


지난여름의 어느 날


꽤 오랫동안 만남이 없었던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형 오늘 뭐해요 오랜만에 얼굴 볼까?"(이 친구가 한 살 동생입니다.)


"그래 그러자~ 연락 좀 하고 지내자 이 새끼 ㅋㅋㅋ"


그 친구는


이미 호봉이 쌓이고 승진시험도 잘 봐서


나름 급수가 있는 공무원이 되어있었고


저도


제 영역에서 나름 선전해서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직급이 되어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술이 좀 들어가니까 갑자기


"형 나 사실할 말이 있어... 나 작년에 이혼했어~"


"어 진짜? 야 나두 얼마 전에~ ㅎㅎㅎ"(뜬금포로 야나두 써먹기 ㅋ)


사실 놀라긴 했습니다.


이 친구의 결혼은


제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니까요.




그래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열심히 잘 살아와서 승진도 빨리빨리 잘했고


호봉도 많이 올랐고


앞으로 인생이 이혼 따위로 망가지거나 하지 않을 거라며


우리 열심히 살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형, 나 이 정도 직급돼서 이제 겨우 연봉 얼마 정도 받아 ㅎ"


라고 얘기하는데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내 20대의 젊은 날을 그렇게


갈아 넣으며 준비했던 공무원시험


거기서 합격해서 공무원이 되어


승진도 빨리하고, 공무원 급수가 꽤 올라가도


제 생각보다도 너무 적은 이 친구의 연봉...


공무원 연금은 차치하고라도


연봉 수준이 그렇게 낮은지는


전혀 몰랐었기에


놀랐었습니다.




제가 한때 갈망했던 직업


그 직업을 쟁취해서


고속승진까지 했던 친구...


만약에


제가 과거로 돌아가서


공무원 시험 합격시점에서


괴한들을 만나지 않고 아무 사고도 없이


면접보고(그 당시 공무원 시험 면접은 면접 때 북한 찬양만 안 하면 합격)


공무원을 했으면


이 친구의 지금 보다도


제가 승진을 빨리 할 수 있었을지도 장담 못하고


그렇다면


저는 지금 이 친구가 받는


연봉보다 적은 연봉을 받으면서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저의 원래 운명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이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좀 아찔한 느낌이었습니다.




한때


너무나 잘 나간다고 생각을 하고


직장이고 결혼이고 다


저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이 친구는


결국


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결혼생활을


끝내게 되었고


제 선망의 직업을 가지고 승진도 잘했지만


적은 월급을 받으며(제가 생각하기에)


지금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인생이 억까라고 느껴질 때


어쩌면 그것이 인생에서


더 나아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기는 정말 힘들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를 다치게 했던 그 괴한들이 의인들이었나?'


'조상신이 나를 어여삐 여겨서 자객을 보낸 것이었나' ('이 놈아 그 직업은 너한테는 아니야!' 하면서)


이런 미친 생각까지 하게 된 날이었네요.




사실


저도 작년에 이혼을 하였는데


제가 이혼을 했던 것도


조상신이 저를 어여삐 여겨서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렇게 고생하고 돈 벌어다 주는 기계로 살면서


집안일도 거의 제가 다하고


아이들 돌보는 것도 거의 제가 다하고(제가 돈벌러 회사가는 시간에는 무조건 돌봄 아줌마 썼어요 / 전처는 전업주부였고요)


친구 한번 못 만나고


술 한번 안 먹으면서


주말마다 이틀은 무조건 저 혼자 독박육아를 했고


이 모든 것을 맡아하면서


묵묵히 몇 년을


그렇게 병신같이 사니까


조상신이 제가 너무 불쌍해서 만들어준 것이


이혼이라는 생각을 사실 많이 했거든요.




살다 보니까


'인생사 새옹지마가 정말 맞는 말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조상신이 보우하사 공무원이 되지 못하였고


그것이 결국 저한테는 다른 좋은 직장으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렇게 새옹지마가 되었고



조상신이 보우하사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저한테는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게 또 저에게 새옹지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찰리채플린의 격언도 너무 맞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제가 공무원시험을 합격한 후에


아무 이유도 잘못도 없이


공무원 합격자격을 박탈당함으로


세상으로부터 억까당했던 것은


그 당시의 저에게는 비극이었지만


지금 여기, 이만치에서 보면 희극이 되어버렸고


이혼을 하게 된 때는


저에게 많은 고통의 시간 속의 비극이었지만


언젠가는 먼발치에서


웃으며 관망할 수 있는 희극이 될수 있으리라 희망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누구나 지금 힘든 것은


어떻게든 새옹지마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어쩌면 나중에 웃으며면서 얘기할


그런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


지금 인생이 힘들다면


억까 같다면


그렇게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해요.


미래에


더 나은 곳에서


더 나은 내 자신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요.


현재 나를 힘들게하는 그 이야기들로


나와 웃으며 소주 한잔 하기 위해 말입니다.





그럼


당신 그리고 우리...


오늘을 또


힘 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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