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오후에 회사일정이 있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사실 멍 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과거에 함께 일했던
부하직원에게서 카톡이 왔습니다.
저희 회사 근처 오면 저를 한번 볼 수 있냐고요
제가 가용한 시간대에 맞춰서
그 친구가 오겠다고...
저는 순간적으로
'이 친구 결혼하나?'(청첩장 줄려고 연락 왔나?)
'정수기나 보험영업 같은 영업 쪽에서 일하나?'(우리 집 정수기 아직 괜찮은데 ㅎ)
라고 처음에는 생각을 했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2017년도에 우연히 함께 일을 하다가
각자의 길로 떨어지게 된 후
그동안 서로 연락 한번 없었고
처음 연락이 온 것이 오늘,
그리고 처음으로 말한 것이
저를 만나고 싶다는 얘기였거든요.
이제 갓 삼십 대에 접어든 여성 하고,
나이가 10살 이상 차이나는 남자가
갑자기 만나는 일이
흔한 일을 아니라서
처음에는 당황했었지만(갑자기 연락 온 것 자체가 당황스러웠죠)
일단 그렇게
회사 인근의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고
그간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무슨 연유로 저에게 연락을 갑자기 한 건지
파악이 되더라고요.(옥장판 팔려고 왔더라고요. ㅎ)
때는 바야흐로 2017년
2017년도에 제가 회사를 하나 차리고
거기에 잡무를 하는 막내직원 하나 뽑았었는데 그게 이 친구였습니다.
특출 난 능력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사무보조 직원을 뽑은 것이라
학과도 졸업여부도 상관없었고
그 당시 사무실이 지방에 있었기에
지방현지에서 직원을 뽑았습니다.
그때
그 지역 대학교를 다니다가 휴학하고
공무원시험을 알아보고 있던
이 친구가 지원하여
같이 일하게 되었죠.
조금 일을 같이하다 보니
이 친구가 말귀를 잘 알아듣고 영리하고 빠릿빠릿 하길래
허드렛일만 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시간이 날때마다
이것저것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에서 필요한 업무에 관련된 사항들
제가 몸담고있는 건설업종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갔을때 도움될만한 것들
그리고 이것저것 인생조언들...
(이 기간 동안 이 친구가 포기하려 했던 학사를 무조건 따야 한다고 설득도 했지요)
그렇게
제가 직접 붙들고 하나둘씩 가르친 게 8개월
그리고 회사사정으로 저는 서울로 사무실을 옮기게 되어
이 친구와는 떨어지게 되었는데
그 이후, 이 친구는
제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대학교 교수를 협박(?)해서 레포트 만 제출하고
학사 수료
저한테 배운 것들을 살려서 그 지역에서 이름 있는 건설사에
취직 완료
그 후 이직을 했는데 서울에 있는 건설사 합격해서(그동안 건설 관련 자격증 취득)
서울 이사(촌에서 상경성공)
서울에서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어(태권도장 사범 / 훈남)
결혼 성공(현재 결혼 2년 차)
원래 이 친구 전공이 '중국어과'였던 것과
저를 만날 때까지
그 지방의 토박이로 일평생을 살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너무 다른 인생의 시작을
제가 만들어 준 셈이더라고요.
그간 자기 삶의 진행과정들을
저에게 설명하더니
모든 게 저 때문이고 너무 고맙다며
밥 한번 사고 싶었다고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네네 옥장판은 아니었습니다. ㅎㅎㅎ)
그 친구는 그동안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하다고도 하고
저는 그 친구 결혼할때 나 왜 안 불렀냐고 타박도 하면서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그 친구는 신혼답게
10시에 퇴근하는 남편 밥 차려줘야 한다고 부리나케 집에 가고
저도 그 친구와 헤어져서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생각을 해보니
마치 제가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이선균이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ㅎ
그렇게 하나 또 배웠습니다.
항상 모든 관계는 소중하다 생각하기에
누구에게나 최선을 다해왔고
그런것들이 이런 긍정적인 상황들을 만들어 줬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누구의 인생을 바꿨다가 아니라
그 아이의 선함과 성실함이
나로 하여금 그때 그 아이를 돕게 만들었으니
이것은 또 그 아이의 복이었고
'그렇게 좋은 인연이 되었다.'라고도...
저는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고
누구에게도 항상 배울 점이 있다. 라고 생각하며 살고있고
언제 어떻게든 허투루 사람을 대하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나부터 상대방에게 진정성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
그렇게 지내온 제 삶이, 인간관계의 결과가
바로
'오늘, 이 아이로 나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겨울의 또 다른 어느날에는
다른 신기한 일이 있었는데...
처음 이직한 회사로 들어왔었던 바로 그때에
저랑 어떠한 연유로 얼굴을 붉히며 싸웠던
경영지원부 여자 팀장님이 있었습니다.
그 후 1년 이상 흘러서
그 겨울 어느날에 그 팀장님이
자기네 집 김장했다고
저한테 김장김치를 싸와서 주시네요.
그 팀장님은 집이 가깝다고 항상 버스 타고 다니는 분인데
저 때문에
그 무거운 걸 바리바리 싸들고
버스 타고 왔을 것을 생각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처음에는 얼굴 붉히며 싸웠던 관계가
어느새 이렇게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구나를 생각해 보고는
다시금 인간관계에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경영지원부 팀장님은
제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저에 대한 오해를 하고
저와 싸웠던 것이었는데(저도 좀 무례해 보일 행동을 하긴 했었습니다.;;;;)
원래 성격은 너무나 선하고 정이 많은 분이셔서
자기가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가끔씩 그날일들이 떠오를 때마다
그 얘기를 몇번이고 사과를 하십니다.
(저는 그 얘기 들을 때마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고 합니다. ㅎ)
이렇게 저에게 최근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보면
좋은 인연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별것 아니고
소소하지만
이런저런일로
웃음이 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