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고 나서 불현듯 배낭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냥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알바를 많이 했었다.
알바를 많이 하다 보니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천태만상의 인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중 어떨때는 아주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안 좋은 부류들도 종종 있었는데
바로, 아르바이트생을 그냥 천민정도로 여기는 인간 부류였다.
우리나라가 계급사회였나 싶을 정도로 나를 마구 하대한다. (내가 수드라였던가 ㅎ)
그중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 장면들이 있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목동의 모 백화점 파인 다이닝에서 알바를 할 때에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해오라며 어떤 아주머니분이 나에게 신용카드를 주는데
옆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그렇게 아무한테나 카드 주면 너 카드 다 털려"라고 말하며
음식 먹는 내내 옆에서 열심히 서빙해 주던 나를 범죄자 보듯 쳐다보면서 내 손에 있던 카드를 거칠게 도로 뺐었던 적이 있다.
그냥 무개념이 도를 넘어선 광경이었는데 그 당시는 내가 눈치도 개념도 없던 때여가지고
누군가가 나를 하대하는 것을 하대 하는 것이라 생각지 못했어서 반박도 아무 말도 못 했었다.
그 레스토랑은 가격대가 좀 있어서.(2000년에 이미 국수전골 1인분이 1만 4천 원이었다. / 이 당시 김밥천국 된장찌개 3000~3500원) 목동 사시면서 돈 좀 버는 분들이나 바로 앞에 있는 방송국 관계자들이 종종 오는 집이었는데 깔끔하고 고급진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종업원들은 정복을 갖춰 입고 나름 폼나게 일하지만 그 동네에서 돈도 잘 벌고, 난다 긴다 하는 양반들이었던 손님들이 종업원들을 이런 식으로 하대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꽤 많이 있었다.
반말은 디폴트로 기본 장착되어 있어서
'야! 너 일단 물 한잔 가져와"라고 시작하는 아저씨 분...
나 말고 남들의 편의 따위는 전혀 상관없었던
옆 테이블에 있는 겉옷 치워 달라니까, 비싼 옷 건들지 말라면서 쌍욕부터 하시고 끝까지 옷 안 치우던 할머니 분...
백종원 저리 가라의 품평을 작렬하며 '뭐 이렇게 비싸~' 하면서 나한테 이 레스토랑이 어쩌고... 나한태까지 '여기서 나가라는 둥' 훈계하는 아줌마 분...
게다가 대놓고 종업원들 얼굴 품평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한테는 이런 데서 일하게 생기지 않았다는 할머니도 있었는데 내가 멍청이여서 얼평을 당하고도 그날은 기분 좋긴 했었다. ㅋ)
어느 날은 중절모를 쓴 중후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와서는 거기서 일하던 한 여종업원에게
"넌 뭐 이렇게 생긴 게 우악스럽게 생겼니?"라고 말하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쿨하게 냉면을 처 드시고 나간 적도 있었다. (아마도 200년 전쯤 미국 남부에서 목화 따던 흑인 노예를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을까?)
그때 그 여종업원은 나보다 한 살 어린 20살 정도의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그날 휴게실에서 펑펑 울었었다.
그들은 그렇게 돈으로는 매너와 인성은 절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나에게 몸소 가르쳐 주었다.
이후에 을지로에 위치한 지금은 유명한 골뱅이 골목(이때는 여기가 핫플이 아니었다.)에 있는
지인 친구분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게 된 적이 있는데 근처에서 근무하는 공장 노동자들이 퇴근 후에 많이 찾아왔었다.
그때 내가 거기서 일을 시작한 시점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백화점의 파인다이닝에서도 배울 만큼 배우고, 벌만큼 버는 사람들도 그렇게 매너 없고 개념 없는 사람들이 많았었는데 이 호프집에 오는 손님들은 거친일들이 업이시니까 얼마나 매너 없이 막무가내고 얼마나 나를 우습게 알까?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 중 상당수가 더 예의가 있었다.
사실 반전은
나는 거기서 많은 분들에게 온정을 느꼈다.
인근 조그마한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전직원 두세 명 남짓, 맥주 한잔 마시러 와서 기껏 1, 2만원 쓰고
안주 부족해도 땅콩안주 리필하면서 시간을 보내 놓고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에게 만원, 오천원 팁을 주고 택시 타고 가라고 하던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팁을 건네어주면서
" 내 동생이 생각났다."
" 나이가 어릴 때 내가 너처럼 일했었다." 라며
대견하다거나 힘들 텐데 안쓰럽다는 식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고
내가 화장실에서 청소라도 하고 있으면 괜찮다고 다 지나갈 거라고 힘내라고 나를 토닥여 주기도 했었다.
오자마자 나한테 반말로 음식을 주문했다가 반말한 것을 사과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이것도 좀 놀랐던 게 목동의 파인다이닝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반말하셨던 분은 끝까지 반말만 하신다. / 반말기능 상시장착)
을지로의 호프집에서도 간혹 무례한 분도 있긴 있었지만 목동의 파인다이닝에서 일할 때 느꼈던 나를 한없이 내려다보는 듯한 그런 무례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을지로의 호프집에서 만났던 손님들은 아마도 내가 알바하는 모습으로 자신들의 삶을 투영해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더 겸손할 수 있었고 더 예의가 있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은 후에
이제는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는 나는
항상 식당의 종업원들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갖춘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을 이미 알고 있고
내가 그들을 하대하면, 그것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살면서 다른 건 다 참아도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참기 힘든 인간 부류가 있는데
바로 식당이든 카페든 종업원들을 하대하는 인간들이다.
그런 것들을 목격한 경우에는 그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업적이 있더라도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
그 사람과의 관계지속의 욕구가 전혀 안 들기 때문에 그런 인간은 그냥 그 이후 손절해 버린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얼마 안될지언정 너는 나와 그 가치를 누릴 인간은 아니다.' 라며 말이다.
나도 일해봤고
나도 당해봤다.
그렇게 역지사지
그래서 역지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