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졸업앨범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구슬픈 사연이 있어서죠.
바야흐로 제가 대학생 때
부모님은 신촌에서 모텔숙박업을 하시다가 그만두시고
경기도 시흥의 조그만 원룸건물을 사들여
원룸 임대업으로 업을 전환하셨습니다.
시흥으로 이사한 후에
안방은 202호 원룸, 제 방은 205호 원룸
그리하여
좁디좁은 원룸방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죠.
어머니는 살림을 하시면 이것저것 모으시는 버릇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냉장고는 꾸준히 입주된 음식들로 북적이고
집구석, 찬장 속, 장롱 위는 안 쓴 숟가락, 그릇 등 집기류로 가득 메워졌었습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몇 개 사서 집에 가도
냉장고에서 테트리스를 해야
비로소 아이스크림의 거주공간이 마련되는
그런 상황도 흔히 있었죠.
원룸으로 이사를 하면서
원룸의 특성상 거주 공간이 이전보다 많이 좁아졌고
이사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버렸지만
어머니가 차마 못 버린 물건들과
한 집안의 세월이 담긴 많은 짐들은
이사 올 때 그대로 박스에 포장된 채로
계단에 방치했습죠
그중에는 생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던
책들이 많았고, 어머니가 아껴왔던 새 그릇세트 수저세트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희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희 집이라기보다
계단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은 치밀했습니다.
모두가 자는 한밤중에 들어왔고
묵직해 보이는 것들은
돈 되는 것들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무거운 책들과 숟가락 세트만 골라서 다 가져갔습니다.(ㅠㅠ)
어머니가 아끼던 숟가락 세트, 그릇세트
그리고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아끼던
대백과사전 전집과
이원수 아동문학 전집,
만화로 읽는 과학 학습 백과 등
그리고
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앨범
을 몽땅 털어갔습니다.(이삿짐 아저씨도 옮길 때 욕하면서 힘들어했던 건데)
그 도둑이 그 무거운것들을 아지트로 나르고
힘든 거사뒤에 전리품을 확인할때
이 박스를 까면 수저가 나오고, 저 박스를 까면 책이나오는
웃지못할 참사가 벌어졌을것을 생각하면
샘통이기는 하나
저와 어머니에게는 나름 소중한 것들이었어서
그때 아쉬움이 많았네요.
그리하여 결국
저희 집에는 졸업앨범이라는 것이 한 개도 안 남고 사라졌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대학생 때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죠...
그럼 대학교 졸업 앨범은 어쨌냐고요?
그것은...
대학교 때 CC였는데
4학년 때 사귀던 같은 과 여자친구가
뭐 하러 한집에 졸업앨범이 두 개나 필요하냐? 면서
한집에 하나만 있으면 되니
하나만 사자고했고
졸업앨범을 여자 친구만 사는 것으로 전격 결정한 후에
헤어져서
그렇게 대학교 졸업앨범은
그 한집에 하나만 가게 되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