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누나는 나에게 정신적 멘토이자 스승이었다.
두 살 터울의 누나는 빠른 생일 덕분에 나보다 3학년이 위였고, 그로 인해 나는 학창 시절 누나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기억은 초등학교 때 밖에 없다. 누나는 보이시한 외모와 성격 탓에 동성들에게 항상 인기가 많았고 여고, 여대를 다니던 시절에는 종종 집에 선물이나 편지를 들고 귀가를 하였다. 누가 봐도 너무나도 정성스러워 보이는 사탕으로 만든 하트, 스킬자수로 만든 털뭉치(?), 종이학 등... 이런 것들이 누나의 책상을 항상 장식하고 있었고, 누나는 아무 치도 않게 그런 것들을 쌓아두다가 너무 많아지면 쿨하게 버리는 모습을 보였었다. 그런 누나를 보는 중학생이었던 나의 시각으로는 누나가 참 이상하고도 신기했다. 누나와 나는 어렸던 시절에는 곧 잘 싸웠지만 누나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누나의 존재는 나와는 다른 구름 위를 걷는 존재처럼 느껴져서 싸움 따위는 자연스럽게 하지 않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점은 둘째 치고, 내가 중학생일 때는 누나는 고등학생,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누나가 대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나와는 레벨이 다른 이라는 생각으로 당연하게 인식되었던 탓도 있었으리라 싶다.
우리 가족은 잠실에서 반지하 셋방을 살다가 내가 중학교로 진학하는 해에 아버지가 영등포에 집을 사셨고, 그 바람에 누나와 나는 졸지에 영등포에서 잠실까지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하는 나름 장거리 통학생 신세가 되었다. 그때에는 전학을 가는 것도 겁이 났었고, 초등학교 때의 친구들을 이사로 잃는다는 것도 막연하게 두려웠었다. 이때부터 나는 본의 아니게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당시 지하철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용객 누구나 지하철 안에서 할 만한 것이 딱히 없었다. 당연히 핸드폰도 없었고 삐삐가 겨우 태동하던 그 시절... 혹시나 누가 보고 버리고 간 신문을 주으면 그것의 신분이 미천한 벼룩시장이었어도 그 당시의 나에게는 굉장한 럭키비키였다. 실은 주로 스포츠 신문이 많았었고, 일간 정론지들은 읽을 것이 많아 사람들이 한번 사면 지하철에 놓지 않고 거의 가지고 내려서 지하철 선반에서는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 공공의 예절(?) 또한 몸에 익히고 있었던지라 지하철에서 귀하게 얻었던 그 보물들을 다 읽고는 지하철을 내리기 전에 누군가를 위해 선반 위에 올려놓는 미덕도 잊지 않았었다. 누군가가 내가 놓고 간 그 신문을 보며 즐거워할 것을 상상하면서 '내가 조금은 어른스러운가?'라는 중학생 다운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중학교부터 장거리 통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결국 신문 따위에 성이 차지 않아서 집에 있는 책들을 하나둘 가져다가 읽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다는 생각은 겉멋이 반이었던 것 같다. 아침저녁으로 등하교를 하는 지하철에는 나 말고도 예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넘쳤었고, 그들에게 책을 읽는 남성의 이지적인 모습을 선보이고 싶었던 허영이 중학생 나부랭이었던 나에게도 있었다. 그때는 마치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 속 창가에서 바람을 맞으며 책을 보고 서 있는 남자 주인공의 우수에 찬 모습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장거리 통학을 하면서 집에 있는 읽을만한 책들을 다 읽고, 동네 책방을 다니며 용돈을 쪼개서까지 책을 빌려 읽었었다.(뭐 물론 그때 신분에 맞게도 만화책도 많이 읽었었다.) 하지만 항상 용돈이 부족했던 나는 가끔 누나의 책도 가져가서 읽으며 누나에게 핀잔도 들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나에게 시크하게 책을 한 권 던져주며 "읽어"라고 하였고, 나는 즉시 순순히 읽었다. 사실 그 당시 누나는 여중, 여고, 여대의 확고한 비구니적 색채(?)를 이어가며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고, 그 책 또한 물론 페미니즘 서적이었다. 그책의 이름은 '아주 작은 차이'. 페미니즘이라고 하면 '그거 나도 알아 그냥 마냥 굶는 거 말하는 거 아님?'이라고 모지리처럼 생각했던 나에게는 분명 색다른 조우였다.
그 책을 요약하자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에 대한 여성들의 투쟁과 남성들이 겪어보지 못한 여성의 억압에 대한 공감과 그 여성들에 대한 지원에 관련된 내용이다. 그리고 모두 열몇 개 정도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던 것 같다. 그중 나의 그간의 생각을 바꿨던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떤 여성과 남성이 연구소에서 일을 하며 결혼을 하게 되었고 육아를 위해 여성이 일을 그만두고 연구소를 떠나게 된다. 세월이 지나 육아가 끝나갔고 남성은 연구소에서 승진을 거듭하여 그 가족의 삶은 둘이 맞벌이를 할 때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성은 다시 일을 하고 싶었고, 남성은 그 여성을 지원하여 다시 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그 여성은 스스로의 탁월한 능력으로 수년간의 공백기를 이겨내고 연구소의 최고직인 소장이 된다.
나는 이 에피소드 하나만 읽고도 이 안에서의 여러 가지가 놀라웠다.
첫째로 내가 생각한 패러다임과는 전혀 다른 전개 때문이었다. 집이 먹고살만하면 한국가정에서는 다정한 남편이 와이프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할 때 이렇게 말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돈 잘 벌잖아. 그동안 네가 양육하느라 고생 정말 많았으니까 이제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돈도 좀 쓰면서 집에서 편하게 있어도 괜찮아~^^" 그런데 이 외국 남편은 달랐다. 와이프의 일하고 싶다는 말을 듣고 와이프의 성취를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지원했던 것이다.
두 번째는 그동안의 근속을 해온 남편을 와이프가 순수 능력으로 앞질러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남편은 분명 와이프의 능력을 알아봤었고, 남편 본인의 영달을 우선시하지 않았으며, 와이프의 성취를 위해서 와이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놀란 것은 이 에피소드가 실화라는 것이다. 결국 와이프를 편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필라테스나 요가나 수영을 하게 하고 일을 못하게 해야 멋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상한 남편상에 대한 내 굳건했던 생각은 어쩌면 너무나 편협한 시각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이내 수정되었다.
이것은 그저 단 한 가지 책에서 나온 한 가지 에피소드가 나의 가치관을 변화시킨 사례이다. 누나는 이런 책들과 갖가지 자기 계발서들을 이따금씩 나에게 던졌고, 나는 그저 읽었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행위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이런 책들 하나하나가 나를 만들었다'라고 말이다. 나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그리고 여성을 또 사람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등등... 이렇듯 나의 누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하고 싶은 말들을 책으로 전달하며 나에게 수준 높은 가스라이팅(?)을 지금도 하고 있다. 내 삶에는 나의 가치관을 수정하는 것과 같이 나를 변화시킨, 누나를 통해 비로소 보게 된 여러 가지의 세상들이 있었고, 후에 그것들로 인해 나는 남들보다는 조금은 편협한 시각에서는 벗어난, 조금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나는 내가 멋 모르던 어린 시절부터 어려울 때 조언자였고,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가끔 이정표 역할을 했으며, 내가 힘이 들 때에 기꺼이 내 편이 되어 위로를 건네는 보호자 같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누나는 나에게 단순히 책의 공급뿐만 아니라 내가 정신적으로 미성숙단계였던 어렸을 적에 다혈질이었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완충재 역할도 했었다. 폭압에 대신(또는 먼저) 맞섰었고, 아버지와 대립하며 이것저것을 몸소 경험해 주면서 뒤따라 성장해 가던 나에게 나름의 이정표 역할도 했다. 그렇게 유복하지도, 마냥 정상적이지도 않았던 가정에서 내가 정서적으로 안정적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누나의 역할이 컸다.
요즘도 가끔 누나가 책 좀 보내겠노라 나에게 얘기한다. 나는 읽기 귀찮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아 이것저것 이유를 만들어 누나의 책 권유를 반려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누나의 끈덕짐에 그 책들은 나에게 오게 된다. 그리고 안 읽으면 누나가 민망할까 봐 어느새인가 누나가 보낸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어떤 시구에 이런 말이 있다.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
지금도 내 지친 삶에 그리고 비루한 정서에 풍요를 보태줄 책을 열심히 고르고 있을 나에게는 하나뿐인 누나에게 부끄럽지만 이런 말 언제 한번 해주고 싶다.
'나의 인생의 8할은 누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