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남 그게 뭐라고 #5

다섯 번째 이야기 : 결혼생활 그리고 폭력의 법칙

by 지푸라기



결혼을 하고 나서


배우자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어떤 것은 적잖게 놀랐다.





나도 결혼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색할 것이라 생각했고


모르는 것도 많을 것이라 생각했고


새로운 일들이 계속 생길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나의 배우자는


내가 상상했던 것을 초월했다.





사소한 것들 중에는


배우자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던 것이 있다.


공과금이나 세금을 어떻게 내는지부터


은행 통장은 어떻게 만드는지 청약이 무엇인지


돈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절약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도 없었으나


그것들에 알고자 하는 의지도 별로 없었다.


다소 생각 없이 소비를 하였고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도 많았다.


그중에는 인터넷 쇼핑몰 같은 데서


각각 12개월 할부로 열댓 개의 물건을


사버리는 사건도 있었고


사고 싶은 물건들을 내가 못 사게 했다가


다투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항상


그것들의 뒷 책임은 나의 몫이었다.






내가 버는 돈으로는


둘이서 한 달 생활이 불가능했고


나는 항상 마이너스 통장을 끼고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배우자는


프라이팬의 끝부분이 살짝 긁혔다는 이유로


이번 달에 새로 산 프라이팬을


기꺼이 쓰레기장에 내던져 버리거나


쓸모없고 예쁜 생활용품들을 사들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신혼집으로 처음 이사할 때도


그전에 배우자가 월세로 있었던 원룸은


월세 계약을 거의 사기 수준으로 높게 부른 집에


확인도 없이 넙죽 들어갔던 터라


중간에 나온다고 다른 세입자로 변경이 되질 않아


신혼집에 둘이 입주하고 나서도


배우자가 원래 살았던 원룸은 비어있는 상황인데도


거의 6개월을 다른 세입자를 못 구하고


월세를 억지로 납입했다.







자취를 오래 했던 배우자라서


나름의 살림이나 집안일을


알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실상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빨래와 청소,


식사준비와 장보기


쓰레기 버리기와 분리수거하기 등


거의 모든 집안일이 나의 몫이었다.


심지어 돈 벌어오기 까지도...


배우자는


단 하나의 요리도 할 줄 몰랐고


단 하나의 집안일도 할 줄 몰랐으며

(유일하게 한 것은 세탁기에 빨래 넣고 돌리는 것까지이고 그것을 널고 그것을 개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세상과 소통을 해야 하는 어떤 것도 직접 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내게 말했다.





그래도 나는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의 반쪽이라 생각했고


그런 모자람 들은 내가 다 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는 형님에게


관련해서 상담을 받았는데


" 배우자가 돈을 쓰는 것을 나무라는 남편이 아니라 배우자가 쓸 수 있는 돈을 모자람 없이 버는 남편이 되자"


라는 말을 들었다.


나 스스로도 그 말이 정말 맞다고 생각하고는


나 자신의 영달이 배우자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일도 정말 열심히 하고 꾸준히 공부했다.


그래서 나는


나의 30대 후반 나이에 이르러서는


연봉이 많이 올라서


1억 가까이 되었지만


그때 까지도


우리 집은 매달 적자에 시달렸다.


그렇게


내 이름 석자 새겨진 마이너스 통장이


나의 결혼생활동안 나의 필수 동반자였다.





결론적으로


일은 일대로 열심히 했고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열심히 했고


집에서 식사준비까지도 나의 몫이었다.


그렇게


배우자에게 아침밥 한번 얻어먹은 적 없었지만


어차피 요즘 세상의 대부분의 여자들이 똑같을 것이라고 스스로 자위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나의 반쪽을 끝까지 사랑하고


보살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이상함들이 한도를 초과하는 사건이 터졌다.






사소한 부부간의 말다툼을 하던 중에


배우자라는 사람이 부엌으로 가서


갑자기 칼을 들고 나타났다.


나에게 칼을 들이 밀고는


"죽어버린다"라고 외쳤다.


나는 배우자를 진정시키는 것만 생각하고


칼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게 했고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그 이후로도


그 사람은


다툼이 있을 때마다 칼을 찾았고


어이없게도 나에게 겨눴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주변의 물건들을 나에게 집어던지거나


이따금씩 말다툼 도중에


나를 발로 차는 등의 폭력을 사용했고


심지어는


끈 같은 것들이 옆에 보이면(넥타이, 샤워기 등등)


자신이 죽어버리겠다고 목을 조르는 시늉까지 했다.





누군가 오해할 수 도있을것 같아 덧붙이자면


그렇게 수많은 폭력을 배우자로부터 당하면서 나는


단 한 번도 배우자에게 폭력을 가한 적이 없다.


나는 거의 항상 울면서 이러지 말라고 타일렀고


그때마다 배우자의 흥분상태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만 부단히 노력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나에게 폭력을 가하면서


"오빠가 나를 때릴 수도 있으니까 내가 먼저 때리는 거야"


라는 이해도 안 되는 말을 했다.


나는 "내가 널 때린 적도 물건을 너처럼 집어던진 적도 한 번도 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그 이후로도


다툼이 있을 때마다


자기 분에 못 이겨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리고


내 글을 내가 다시 읽어봐도


"나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았나" 싶지만


그때는 우습게도


그것들이 큰 문제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저 배우자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그것을 내가 잘 컨트롤해줘야 한다는


이유 없는 사명감만 있었다.


나는 내 배우자를 사랑하기에


남들과는 다르고 좀 과한 면이 있더라고


이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보 같이도 말이다.....





어느 시사 프로그램에서


'폭력의 법칙'이라는 제목으로 학교폭력문제를 다뤘던 적이 있다.


그중 '둔감화'라는 것이 있는데


폭력을 일상적으로 당하는 쪽은


자신이 당하는 폭력이 폭력이라고


생각을 쉽게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서


소위 빵셔틀로 불리는 학생을 인터뷰를 했는데


그 학생은 오히려


가해자들을 옹호하며


'그 친구 다혈질이긴 한데 사실은 착하고 괜찮은 친구예요'


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정작 그 친구 자신이 너무나도 많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


웬만한 폭력은 폭력으로도 느끼지 못하는 '둔감화'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 버렸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인터뷰를 보고


이성을 충분히 갖고 있는 나이에


그런 거대한 폭력 속에서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는 것에


그 친구가 너무나도 바보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그 이야기


그 인터뷰


그 빵셔틀


그 사리분별 못하고 있던


그 불쌍한 친구는


나였고


내가 바로


바보였다.


우리 집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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