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이야기 : 또 다른 불행
어느 날
바람 잘날 없었던 우리 집에
단비 같은 소식이 날아 들어왔다.
배우자는 나에게
임신소식을 알렸다.
없는 살림에
한 식구를 더 추가하기 위하여
갑자기 이것저것 분주해졌고
새 식구를 위한 준비로
하루하루가 바빠졌다.
그 바쁨에
그 활기에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계류유산입니다. 소파수술을 해야 합니다."
맑았던 어느 날
와이프와 가게 된 병원...
병원을 나와 하늘을 보니
그 맑았던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앞이 안보일정도로 눈물이 나왔고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고는
모든 게 내 잘못인 양
자책감이 들었다.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상실감이 더 클 배우자를
보듬아야 했다.
수술날짜에 연차를 썼다.
연차를 쓰면서 '사유'란을 작성하다가
눈시울이 붉어졌다.
병원에 가기 전에
나는 미리 집안에서
아이를 떠올릴만한 모든 것들을 치웠고
병원으로 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딴것들 뿐이라는 생각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고
배우자나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내안에서 나를 조롱했다.
수술이 끝난 후
배우자는 힘겨워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이내 또 울고 싶어 졌지만
울지 못했다.
내가 울면 배우자는
나를 보고 얼마나 더 슬프고
나를 보고 얼마나 더 힘들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그때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고만고만한 나이에
결혼이란 것을 처음 했고
모든 게 처음이고 생소하기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매뉴얼 따위는
내 머릿속에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그저 마치 제웅마냥
멀뚱멀뚱 있다가
불현듯
힘든 배우자를 위해서 뭐든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밥도 안 먹는다는 배우자를 집에 데려다 두고
신혼집 인근의 암사시장에 혼자 가서 사골과 잡뼈를 사고
집에서 10시간을 넘게 고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사골국을 끓였지만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정성을 쏟았지만
배우자의 고통과 상실감에는 비할 바 아니라는 생각만 들었고
조용히 끓고 있는 국을 바라보면서
불순물과 거품만 꾸준히 걷어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배우자가 더 슬퍼할까 봐
울음을 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입맛도 없다는 배우자에게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억지로 밥을 하얀 국물에 적셔서 먹이고
어떻게든 웃게 만들고 싶어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계속 연기를 하면서
되지도 않는 농담을 했다.
밤이 되어
배우자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혼자 조용히 밖에 나왔다.
그리고 그냥 동네를 서성였다.
익숙한 동네거리를 걷는 동안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을 못 보여줘서 미안해'
'내가 등신같이 울기만 해서 미안해'
'암 것도 못해줘서 미안해'
주말에
기분전환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는
배우자를 데리고 무작정 파주에 갔다.
유명한 어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쇼핑몰에 가서
만수르라도 된 것처럼 배우자에게
"너 원하는 것 몇백만 원이 나오던 다 사"라고 말했다.
그렇게
첫 아이를 보내고 나니
이것저것 어떤 기억들이
나를 괴롭혔다.
배우자와 다투면서
내가 했던
행동들이, 말들이
다 병신 같게만 느껴졌다.
배우자한테 돈 너무 많이 쓴다고 뭐라 했던 것
인터넷 마켓에서 쓸데없는 물건 산다고 뭐라고 했던 것
우리 집에 필요 없는 것 좀 사지 말라고 핀잔했던 것
물질적인 부분을 통제하려고 들었던 것들이
다 후회가 되었다.
"행복하게 사는 게 목적인데 돈을 아껴서 불행하면 그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누구보다도 부자처럼 와이프를 돈 쓰게 하고
내가 앞으로 열심히 살고, 일해서 다 메꾸자'라는 생각만 했다.
만수르처럼 돈 쓰라는 말에 배우자는
작심하고 80만 원짜리 코트를 골랐고
호기롭게 몇백만원을 쓰라고 했던 나는
또 등신같이
그 정도 가격에 안도했다.
그 당시 우리는
살면서 그렇게 비싼 돈을 써본 적도 없는
딱 그 정도의 사람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배우자를 더 챙겨야한다고 생각했다.
배우자의 기행으로
집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다가도
이따금씩 생기는
그러한 새로운 사건들로 인해
우리가 말그대로의 우리로써
다시 결속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결속은
그 이후에
내가 당하는 폭력을 더욱
무디게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현재의 불행 보다도
더 큰, 커다란 불행이
미래의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