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이야기 : 아들이 알았다.
나는 아들들에게 수시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스킨십은 물론이거니와 사랑한다는 말을
생각날 때마다 한다.
이런 행동은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기인한 행동이 맞는 것 같다.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 다 무척이나 무뚝뚝하셨다.
나는 살면서 부모님으로부터 '사랑한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사실 나도 부모님께 애정표현은 지금도 어색하다)
심지어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날에 부모님으로부터 애정이 듬북 담긴 무언가를 받는 것을 떠나서
딱히 선물을 받아본 기억조차도 없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했다.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내가 받고 싶었던 것들 다해주기로
애정표현도 많이 하고
스킨십도 많이 하고
무슨무슨 날이 아니어도 선물도 많이 해야지~
라고 말이다.
작년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첫째 아들에게 늘 하던 대로 사랑한다고 애정표현을 하다가
그때는 조금 다르게 애정표현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
아들은 대답했다.
"응 엄마"
순간 나는 당황했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엄마와 이혼소송을 2022년부터 시작하여
당연히 따로 살고 있었고
2024년에 법적으로 정리까지 끝나버린 상황이었어서
이제 그 사람은
아이들 엄마로서 말고는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말 그대로 남이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의 8살 난 아들이
'그간의 세월 동안 엄마아빠의 사이를 눈치로라도 대충 알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은
그저 나의 착각이었다.
하기야 아이들이 나와 주말에 만날 때에는
"아빠집 가는 날이다." 하면서 신나 했던 것
나와의 만남이 끝날 때 즈음에는
"이제 엄마집 가야 해~"라고 말했던 점을 미루어보면
그냥 엄마와 아빠는 단순히 따로 살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빠집', '엄마집'이라는 내가 어렸을 적에 써본 적도 없는 단어들...
그리고 그 단어를 아주 당연하게도 쓰고 있는 아이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나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당연히 너지, 그다음은 네 동생이고~ 아빠는 이렇게 두 명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아직은 아들이 이혼을 이해할 만큼 성장하지 못했구나...'를 다시금 되새기면서
나에게는 앞으로 부모의 이혼을 아이들의 마음에 심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기에
모든 것을 알았을 때의 그 충격을, 그 고통을 어떻게 서로 감당해야 할지를 생각하면서
내내 착잡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시간이 1년이 지난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주말에 아이들을 만나고
늘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과 시간들을 하얗게 불태우고
헤어질 때 즈음에
아빠집이라고 불리는
우리 집 아파트에서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위층에서 내려온 어떤 아저씨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었다.
그 아저씨는 신나하는 아이들이 귀여웠는지
"어디 놀러 가요?"라고 아이들에게 물었고
나는 아이들이 "엄마집 가요~"라고 말해버리면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두려워서
"네~"라고 짧게 먼저 대답했다.
그런데 이제 6살인 둘째 아들 녀석이 그 사이를 파고들며 말했다.
"아닌데~"
나는 '둘째가 또 엄마집 간다는 소릴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첫째 아들 녀석이 둘째 녀석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런데 둘째 녀석은 그걸 헤치고 나가 기어이
"엄마집 가요~"라고 말해버렸고
첫째는 내 눈치를 슬쩍 보며, 그걸 못 막아서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그제야 이해했다.
아들이
알았다.
내가 두려워서
먼저 말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먼저 알아차린 첫째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도 아려왔고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고
못난 부모 때문에 생긴 흠들로
내가 너희들은 힘들지 않게 하리라
고통받지 않게 하리라 라는
다짐을
뒤늦게나마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너무 어려서 힘든 시기를 겪는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잔망스럽게 조숙해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동심을 가질 수 있는 여건이 계속되었으면 한다.
그저 어린이 때는 어린이의 역할만 했으면 한다.
여러 생각들이 났지만
결론은
이제는 피할 수 없이 그것들과 마주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조만간
첫째 아들 녀석과의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볼 계획이다.
지금이 적당한 그때인지는 모르겠지만
없는 말주변으로 힘내서
그동안 못했던 얘기들을 하고
아들의 입장을 더 이해할 수 있는
내가 조금은 더 어른의 모습이 될
시간을 가져볼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