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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Feb 07. 2021

섬세하고 다정한 마음으로

할머니를 떠나보내며

[이 글에는 드라마 '눈이 부시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혹시 그 드라마를 아직 보지 않으셨고 혹시라도 나중에 시청할 계획이 있는 분들은 읽지 마시고 이 페이지를 넘기시기 바랍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요양원에 계셨던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뵈었던 것은 재작년 11월 말이었던 것 같다. 작년 1월에 출국을 해야 했기에 출국 준비로 바빠서 뵐 수 없었으며 귀국한 이후에는 코로나 상황이 계속 나빴던 탓에 요양원은 거의 1년 넘게 외부인 출입을 금했다. 야금야금 금지 기간을 연장하다가 그렇게 2021년 새해가 밝았고 이제 곧 설인데 대체 언제쯤 할머니를 뵈러 갈 수 있을까 가족 모두가 걱정할 때쯤 이른 아침 전화가 왔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셔서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 어서 빨리 오시라고. 코로나는 참 잔인하게도 마지막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감염 우려로 인해 임종을 지키는 것도, 염을 하기 전 고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것도, 가족 중 단 한 사람만 허락되었다. 심지어 화장을 하고 납골당에 안치한 후에도 정해진 짧은 시간 이상 머물 수 없었다. 우리가 나가야만 또 다른 가족들이 입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불평하기에는 우리 가족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축에 속했다. 임종 후 진행된 코로나 검사에서 음성 판정이 나왔기에 이 모든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양성이 나왔을 경우에는 감염 우려 때문에 장례를 치를 수도 없고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화장을 비롯해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린다고 했다. 당연히 3일장은커녕 장례식을 할 수도 없고 혹 유품이 있는 경우에는 유족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그 역시 바로 소각된다고 했다. 코로나 시국에는 함부로 죽어서도 안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할머니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모두 내가 한참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실 장례에 관한 기억은 (심지어 살아계실 적의 기억도) 별로 남아 있는 것이 없다. 그나마 친할머니는 내가 8살일 적에 돌아가셨기에 그나마 유년기에 함께한 추억들이 조금이라도 있는데, 할아버지 두 분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분들의 얼굴이 얼핏 기억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건 내가 그분들의 사진을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사진 상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인데 마치 실제 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친할머니는 내가 8살 때 설 당일에 돌아가셨다. 나름 설빔이랍시고 빨간 스웨터를 입었는데, 큰집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다. 이미 이동 중이었기에 옷을 갈아입을 새는 당연히 없었고 또 옷의 색상 따위를 생각할 틈도 없었건만, 큰집에 도착해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붉은색 옷을 입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크게 당황해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아버지는 우리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고 '살아계실 때 진심으로 효도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씀하셔서 나는 아버지가 정말로 하나도 슬프지 않고 괜찮으신 줄만 알았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우리가 걱정할까 봐 하셨던 말씀이 아닐까 싶다.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괜찮은 사람은 없으니까.


외할머니는 말년에 치매를 앓으시면서 크게 고생을 하셨다. 정확히는 고인보다 할머니를 돌본 우리가 고생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할머니의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어느 순간에는 일제 치하로부터 독립하던 날의 꼬꼬마 시절에 머물렀고, 어느 순간에는 이제 막 시집 온 순진무구한 새색시 시절에, 또 어느 순간에는 다시 현재로 돌아와 손녀인 내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배우 김혜자 님이 열연한 드라마 '눈이 부시게'를 나는 정말 좋아하는데, 그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우리 할머니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치매 노인을 가정이든 주위에서든 제대로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드라마의 반전을 보는 순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인공 혜자(한지민 분)는 어느 날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할머니(김혜자 분)가 되어 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망연자실한다. 한창 썸을 타고 있던 동네 청년(남주혁 분)과 행여라도 이 모습으로 마주칠까 전전긍긍하고, 하루아침에 폭삭 늙어버린 혜자의 모습에 부모님과 오빠, 친구들도 모두 당황하지만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대해준다. 드라마의 반전은 마지막 회에 다다라서야 밝혀지는데, 주인공 혜자(한지민 분)는 사실 실제 혜자(김혜자 분)가 치매에 걸리는 바람에 젊은 시절의 자신으로 자꾸만 기억이 돌아가는 것이었고, 오빠인 줄만 알았던 이는 실제로는 자신의 손주였으며, 부모인 줄 알았던 두 분은 사실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였다. 썸을 탄다고 생각했던 동네 청년은 젊었을 적 요절한 자신의 남편과 빼닮은 사람이었음이 밝혀진다. 치매에 걸리기 이전과 이후의 기억들이 혼재되어 혜자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었던 것인데, 그 혼재된 정도, 수많은 기억들 중 어떤 것이 치매 이후에도 각인되어 있는지를 살피다 보면 굴곡진 주인공 혜자의 삶의 고단함이 그대로 전해져 그야말로 폭풍눈물을 흘리게 된다. 


치매에 대해 이제는 제법 많이 알려져서 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지원을 해주고 사람들도 그 증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이 있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치매는 직접 겪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로 슬프고 괴로운 병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기억이 거의 분 단위로 리셋된다고 보면 된다. 5분, 10분 전 했던 대화가 쳇바퀴 돌듯 반복된다. 멈춤이란 없다. 내가 멈추기 전까지는 이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다른 치매 환자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우리 할머니는 당신의 기억이 자꾸만 휘발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우리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똑같은 질문이 반복돼도 매번 처음 들은 질문 인양 반응했지만, 눈치가 빠른 할머니는 해맑게 우리 대답을 들으시다가도 문득 어느 순간 당신께서 바로 조금 전 같은 질문을 했다는 걸 인지하시고는 미안하고 민망한 표정을 지으실 때가 있었다. 그러면 역으로 할머니가 오히려 우리 대답을 처음 들은 척을 하시기도 했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도 그 상황을 인지했다. 그렇게 서로가 이미 이 슬픈 상황을 인지했음을 깨닫고도 티 낼 수 없어 웃으며 대화를 이어나갔던, 조용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과 계산들이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이 싫었다. 아이들은 수백 번 읽었던 동화책을 또 읽어도 까르르 웃으며 재미있어한다. 아기들에게는 똑같은 콘텐츠라도 매 순간이 새롭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도 그와 비슷하다. 물론 아기들은 그 기억이 더해질수록 재미가 배가 되지만 치매 노인은 기억이 휘발되어 매 순간이 새롭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다.


또한 치매 노인은 아기와도 같이 사랑에 굶주리며 관심을 필요로 한다. 가족들이 각자의 일을 하려고 주방이나 방 등 각자의 공간에 들어가 있으면 할머니는 우리들을 찾았다. 그 모습이 미안해서 나는 일부러 책과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나가 테이블에 앉아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내 시선이 할머니를 향해 있지 않으면 할머니는 시무룩해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부모의 관심과 애정을 단 일분일초도 빠짐없이 필요로 하는 아기처럼, 치매 노인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같은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바로 옆에서 말동무를 해주고 어루만져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는 울적해하기도 가끔은 토라지시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치매라는 것은 우리가 아주 당연하게 알고 있어 체화된 것들, 머리로는 이미 너무 통달해 있어 몸이 기억하는 것들마저 위협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물을 마실 때 해야 하는 행동의 프로세스를 몸으로 알고 있다. 컵에 물을 따르고, 팔을 뻗어 다섯 손가락으로 컵을 잡고, 입이 있는 쪽으로 컵을 들어 올리면서 입술을 벌려야 하는 일련의 행동들 말이다. 움짤을 만들 듯, 월레스와 그로밋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듯, 이 동작을 아주 짧은 시퀀스로 잘게 쪼갠다고 상상해 보라.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누워서 떡먹기보다 쉽게 순식간에 해낼 이 동작이 사실은 아주 복잡한 행동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치매 노인에게는 바로 이 프로세스에 대한 기억이 서서히 사라진다. 목이 마른데 일단 물이 어디 있는지 기억이 가물하고, 행여 물을 찾았다 하더라도 컵에 물을 따르기 위해 해야 하는 동작, 따른 후에 입가에 컵을 가져오는 동작, 입을 벌리고 식도 안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동작까지가 처음 마스터하는 것처럼 새롭게 다가온다. 아가가 처음 걸음마를 뗄 때 다리를 뻗고 구부리는 동작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수도 없이 넘어지는 것과 똑같다.


그러니까 치매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그렇지만 마음만 그렇기에 그를 대하는 상대는 이 사람이 지금 현재에 있는지 과거에 있는지, 과거에 있다면 정확히 과거 어느 시점에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매 순간이 새롭고 낯설었던 유년기로, 청년기로,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에는 다시 본래 흐르던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니 어찌 보면 생의 스펙트럼을 자유로이 오가는 것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입관을 하러 들어간 새하얀 방, 그 안에 누워 있는 할머니의 얼굴은 다소 부어 있었는데, 코로나 이전에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홀쭉하게 말랐던 모습에 비해 부은 얼굴을 보고 외숙모는 깜짝 놀라며 속상해했지만 나는 오히려 이 모습이 더 할머니 생전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치매가 오기 전,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 통통했던 할머니의 얼굴 말이다. 그래서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했다. 치매로 힘들어하셨던 시간보다는 그 이전의 시간이 더 길었기에, 나는 그 이전의 할머니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좀이 나 쑤신다며 일을 찾아서 하시던 그 씩씩한 할머니의 모습. 아니, 어쩌면 치매와 힘겹게 싸우던 할머니에게 내가 잘못한 게 너무 많아서, 미안한 기억이 너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점점 건강이 악화되셨던 최근 몇 년 간 가족들도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마지막 때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온 덕분인지 우리 모두는 생각보다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장례를 치렀다. 우리는 마주 앉아 어렸을 적 있었던 이야기들을 하며 웃기도 하고 허기가 져서 끼니때가 되면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할머니와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방으로 들어가 눈물을 훔치기도 하고 목이 메어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입관을 하고 발인을 하고 화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안치를 하고 돌아올 때까지도 그 과정들을 반복했다. 하하 그때 그랬지 맞아 하며 웃다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북받쳐 서로 껴안고 눈물을 쏟다가, 다시 옷매무새를 만지고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해내는 과정의 반복, 또 반복.


장례를 마치고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난 오늘. 지금은 자꾸 왔다 갔다 하는 이 과정의 반복 주기는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길어지다가, 어느 순간에는 태연하게 일상을 영위하는 과정에 안착하게 될 것이다.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우리 모두에게는 죽음과 이별의 순간이 온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을 만큼 보람 있게 뜻깊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난 사실 할머니가 요양원에 계실 때 찾아뵙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할머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세상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하고 낙담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끝은 다 이와 비슷할 텐데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일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에 우울해지곤 했다. '할머니 우리 이제 갈게요 다음에 또 올게요' 인사를 건네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슬퍼하는 그 표정이 마음에 걸려, 잠깐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우리는 인사를 하지 않고 자리를 뜨곤 했다. 할머니의 기억은 분 단위로 리셋되니까, 이렇게 가는 게 차라리 덜 속상하게 하는 방법일 거야, 하고 자위하면서.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가 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얼마 되지 않는 수 분의 시간 동안에도 속상해할 할머니를 떠올리면, 이것이 맞는 일인가, 우리는 과연 좋은 자녀이고 손주일까 죄책감이 들었었다. 무엇이 할머니를 더 배려하는 일이었을까.


영화 '코코'에서 등장하는 멕시코 민담에 의하면 죽은 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는 사후 세계와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곳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고 한다. 천국은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는 자유로이 걷고 뛰어다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입관을 할 때, 할머니의 몸을 닦아주고 마지막으로 예쁘게 꾸며주신 분은 마치 자신의 어머니를 다루듯 너무나도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운 손길로 우리 할머니를 만져주셔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그분은 일주일에 그런 일을 몇 번이나 하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많이 만날 텐데 어떻게 그렇게도 정성을 다해 섬겨주는지 고마움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사람들에게 저토록 정성과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대하는 일. 자신의 필요 여부와 상대의 효용 가치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아온 탓에 그 모습이 유독 생경하고 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던 것도 같다. 이 세상 모두에게는 날 때부터 부여받은 소명이 있다는데, 어쩌면 그 소명이란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마주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게 전부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분은 늘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이지만 우리 가족 모두는 그분의 그 손길에서 눈길에서 진심으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마 당분간은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슬픔 가운데 감사와 기쁨이 들었던 건 그래서였다. 사는 건 쉽지 않고 고단함과 고민의 연속이지만 할머니를 그렇게 아껴준, 우리와는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그분의 마음에 차마 부끄럽지 않게, 나 또한 삶 속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사려 깊고 정성스럽게 대해야겠다는, 새해 첫 결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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