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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Jan 06. 2022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언제 들어도 능숙해지지 않는 상황들에 대해

아주 오래 시간이 흘러 다시 이 글을 보았을 때 오늘 느꼈던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 글을 쓴다. 너무 슬픈 일이라 차마 이곳에도 자세히 남길 수는 없는 오늘의 일들을, 나는 앞으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 학과 교수님이 별세하셨다. 연세가 거의 아흔이 넘으신, 연로하신 교수님이었다. 이곳에서 학업을 시작한 이래 이따금 명예교수로 계신 분들의 부음을 듣긴 했지만 그때는 이름만 들었지 뵌 적이 없는 분들이라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침 지난 학기에 이 분의 수업을 듣기도 했고, 나와 연구실도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복도에서도 종종 뵈었던 분이기 때문인지,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서너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분이 너무나 '이상하다.'


며칠 전 쓴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이곳에 온 이래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감사하게도 그들의 지난 삶과 가치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게 된다. 이 노교수님 또한 그랬다. 당신 분야에서는 정말 세계적인 학자이신 이 분은, 사실 나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분야이지만 그 분야를 전공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거의 전설과도 같은 분이시다. 웬만한 논문에서는 반드시 이분의 성함이 등장할 정도이니까. 수업 첫 과제를 제출하고 피드백을 받아 들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국 대학원에서도 있어봤고 미국에서도 짧지 않은 시간 유학을 했지만 한미 통틀어 그렇게 꼼꼼하고 자세한 피드백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학자 이름의 e를 a로 잘못 썼다고 점수를 깎을 정도로 냉정하고 가차 없었지만 그 연세에 이 정도로 한 자 한 자 내 과제를 읽고 피드백을 달아주셨을 모습을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보다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다.


언젠가 '너무 똑똑한 사람들은 교사가 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에게는 너무나 쉽고 당연하게 이해가 되는 것들을 학생들이 이해하지 못할 때, 천재적인 교사는 그것을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 들었다. 이 노교수님이 약간 그런 분이었다. 수업 시간에 한 번 스치듯 설명한 것을 그다음 시간에 질문했을 때 아이들이 즉각 대답하지 못하면 어이없어하셨고, 말씀은 또 어찌나 빨리 하시는지 심지어 미국 애들도 따라가지 못해 녹음을 해서 나중에 다시 듣는다고 할 정도였다. 덕분에 개강하고 첫 몇 주 동안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다가, 한 번은 수업을 마치고 남아 교수님에게 '말씀 좀 천천히 해주시면 안 되겠냐'라고 부탁드린 적도 있었다. 그런 불만을 가진 학생이 내가 처음이 아니라면서 교수님 당신께서도 말씀하셨다. "사실 내가 말이 빠르다는 얘기는 전에도 많이 들었는데, 노력해볼게. 그렇지만 내가 말을 빨리 하는 유일한 이유는 딱 하나야. 이 과목이 너희에게 재미가 없을까 봐. 내가 말을 천천히 하면 너희가 지루해할까 봐. 그래서야. 다른 이유는 없단다." 그렇지만 그 말씀을 하시고 나서 바로 다음 시간에도 교수님은 변함없이 랩 하듯 말씀하셨고,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 모습에 망설임 끝에 어렵게 한 말씀 올렸던 나는 그게 영 서운하기도 하고 좌절스럽기도 해서, '다시는 말 천천히 해달라는 부탁 따위는 절대 하지 말아야지,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으시는군' 생각했더랬다.


조금은 밉기도, 원망스럽기도 했던 교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던 건 학기가 흐르며 교수님과 인간 대 인간으로 겪으면서였던 듯하다. 개강하고 수강생들에게 보낸 첫 이메일 서두에서도 밝히셨지만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19세기 사람'이라고 말씀하신 게 어쩌면 농담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교수님 댁에는 컴퓨터도 없다는 사실을 종강 즈음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캠퍼스 일대가 정전이 되었는데, 교수님 댁에 컴퓨터가 없어 오늘 Zoom 수업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학과 공지가 왔던 것이다. 내가 낸 과제 Word 파일이 출력이 안된다면서 이것 때문에 퇴근을 못하고 있다고 난감해하실 때 PDF로 변환해 다시 제출하면서 '이 쉬운 것을 하실 줄 모르시다니, 그리고 퇴근 후에 댁에 가셔서 출력하셔도 될 걸 왜 꼭 지금 하시려는 걸까 역시 사람은 나이가 먹으면 아주 쉬운 것들도 어려워지는 걸까'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죄송스러워졌던 순간이었다. 젊은 교수님들은 너무나도 쉽게 터득하고 곧잘 세팅하는 Zoom 온라인 수업이, 당장 로그인도 어려운 노교수님에게는 너무나도 큰 장애물이었고, 이제와 짐작컨대 코로나 이후 시작된 온라인 수업이 어쩌면 그분께는 매일이 전쟁 같았을 거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든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건 나의 장점 중 하나인데, 이런 일이 있을 때에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다음 학기부터는 대면 수업으로 다시 돌아간다니 정말 다행이야. 이 온라인 수업 포맷도 어렵고, 무엇보다 난 사람이 정말 그리웠거든'라고 말씀하셨던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그 3주 간의 방학 동안, 나를 비롯한 소수의 학생들만 연구실에 나와 있었고, 학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교직원들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출근한 교수님이 바로 그 노교수님이었다. 죽음을 앞둔 그 몇 주간 쥐 죽은 듯 조용한 연구실에 성실하게 출근해 자리를 지키며, 자그마한 연구실 안에서 교수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예전 같지 않은 몸에 실망하셨을까? 익혀도 익혀도 여전히 서툰 컴퓨터와 각종 소프트웨어에 당황스러우셨을까? 대면 수업이라더니 갑작스러운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첫 2주는 다시 온라인으로 돌아간다는 공지에 낙심하셨을까?


교수님 강의 자료를 보다 보면 지금은 오십이 넘었다는 딸이 갓 태어났을 때부터 아동기에 접어들 때까지 아이가 내는 소리나 행동을 학자 관점에서 분석해 기록해두신 것을 갖다 쓰신 경우가 왕왕 있었다. 내가 만약 그 딸이라면 정말 감격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피도 눈물도 나지 않을 것 같지 않은 완벽주의자 교수님도 내면에는 누구보다 정이 많으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종강 후에 크리스마스 카드를 써서 우편함에 넣어두었더니 그다음 날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주셔서는 카드 정말 고맙다면서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너와 같다면 이 세상은 분명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고 남다른 감수성을 가지신 분이라는 생각은 더 굳어졌었다.


차라리 그 카드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교수님과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메일이 없었다면, 딱히 엮인 사소한 추억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이 갑작스러운 소식이 조금은 덜 마음 아프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기억이란 것은 참 이상한 게, 어떤 사람은 단 몇 번, 아주 짧게 만나고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기도 한다. 대면으로 만난 것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기껏해야 한 학기 온라인으로 만난 게 전부인데, 왜 오늘 들은 이 소식에 나는 눈물이 계속 나는지.


삶과 죽음은 무엇일까?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이곳에 와서 이렇게 밤을 새워 가며 무언가를 읽고 쓰고 누군가를 가르치고 때로는 격앙된 목소리로 의견을 교환하는 걸까. 우리의 젊음을 다 쏟아가며 때로는 건강을 상하기도 하고 좌절과 자기 비하를 겪기도 하면서, 그 모든 걸 감내하면서까지 우리가 향해 달려가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이든 한국이든, 그것이 공부이든 경제활동이든, 그 어떤 직업이든..... 가장 근원적인 곳에 위치한 삶의 정수를, 목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이곳에 남길지 말지도 잠시 고민했지만) 사실 오늘 아침에 조깅을 하면서 출근하시는 노교수님을 스치듯이 지나쳤던 것 같다. 너무 찰나여서 인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조금 비뚤어지게 쓰신 채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힘없는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시던 모습. 작고 왜소한 그 체구가 떠오른다. 한 때는(아니, 심지어 지금도) 학계를 호령하고 강단 있었을 젊은 날을 뒤로한 채, 서서히 저물어가는 자신의 육체와, 그렇지만 여전히 한창때의 생기를 잃지 않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감성을 바라보면서 그 괴리가 점차 커져갈 때의 마음이 어떠할지.... 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아프다. 어디서 무얼 하든 행복해야 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삶이 너무 덧없고 하찮게 느껴진다.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손에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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