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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annie Mar 17. 2024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타인의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

최근 지난 1월에 지원했던 학회에 발표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말 가고 싶었던 유명한 학회였기에 무척 기뻤는데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같이 지원했던 친구는 떨어졌기 때문이다. 보통 연구 분야가 비슷한 친구들끼리는 학회도 비슷하게 지원하기 때문에 발표자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이 돌면 며칠 내로 서로 붙었는지 떨어졌는지 알게 된다. 정말 감사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지원한 학회에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가끔 다 같이 우르르 지원했는데 그중 몇 명은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학회에 붙는다고 해서 대단한 연구이고 떨어진다고 해서 못한 연구인 것은 전혀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 다 붙었는데 나 혼자 떨어지면 속상하긴 할 것이다. 


조금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박사 과정 초반 2년 동안은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아서 학회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때문에 다른 애들은 빠르면 첫 해부터, 늦어도 2년 차부터 학회에 나가서 이런저런 발표를 하는데, 나는 3년 차였던 작년부터 지원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우리 학과 애들 대부분이 동일한 학회에 붙어서 다 발표하러 가는데 나만 그 주에 남아서 조금 속상했던 경험도 유학 초반에는 있었다. 워낙에 큰 학회라 교수님들까지 우르르 가시느라 학회가 열리는 주간에는 수업도 다 휴강할 정도였으니 내가 의기소침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학회 성격에 따라, 그리고 심사위원들이 누구냐에 따라 발표자로 선정되는지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발표 채택 여부로 연구의 가치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동일한 연구인데 어느 학회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가 다른 학회에서는 쏟아지는 질문 세례를 받았던 적도 있다. 구두 발표와 포스터 발표도 흔히 구두 발표를 더 쳐주는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연구 초반에는 포스터 발표를 해서 청중과 직접적으로 소통을 많이 해서 피드백을 최대한 받고,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온 다음에는 구두 발표를 해서 더 완성도 높은 결과를 선보이고 홍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자주 산책하는 길목에 애플망고 나무가 있는데 오늘은 운 좋게 무려 4개를 주웠다! 마트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난 '길바닥표' 애플망고


서론이 길었는데 여하튼 최근에 연락을 받은 그 학회는 이쪽 분야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학회인데, 애초에 나는 지원할 생각이 없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연구는 이미 웬만한 학회에 나가서 다 발표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지원할 생각으로 초록을 작성 중이던 친구가 '어차피 제출하면 심사위원들이 심사평을 주니까 떨어지더라도 손해 볼 게 없다. 게다가 이 학회가 이 분야에서는 제일 큰 국제학회 아니냐, 청중 구성 자체가 다르니 일단 제출해 보라'는 말에 설득되어서 얼떨결에 마감기한 사흘 전부터 작성하기 시작해서 교수님 검토도 받지 못한 채 간신히 제출했더랬다.


(학계에 있지 않은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을 곁들이자면 '초록 (abstract)'이란 내 연구를 간단히 요약하는 서류로 보통 종이 1-2장(500자) 분량이다. 대개 첫 장에는 발표하고자 하는 연구에 대한 모든 것, 즉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와 목적, 상세 내용을 담고, 두 번째 장에는 관련된 그래프나 표, 참고문헌 목록 등을 싣는다. 요즘은 온라인 학회도 많이 발달한 추세라 2장도 아니고 1장 안에 모든 것을 다 집어넣으라는 학회도 있고, 그래프나 참고문헌도 필요 없으니 그냥 100자 이내로만 작성해서 제출하라는 학회도 있다. 요구하는 분량이 줄어들수록 도전하기는 쉽지만 100자 요약문만으로 내 연구가 초청될 만한 연구임을 증명하는 것은 오히려 더 어렵다.)


여하튼 이렇게 제출된 초록은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7명 정도 되는 해당 분야 심사위원들이 검토 후에 학회에 초청할지 말지, 초청한다면 구두 발표로 초청할지 포스터 발표로 초청할지 결정을 내린다. 큰 학회일수록 제출되는 초록 양도 많을 테니 당연히 제출 시기가 이르고 발표 시기가 늦어진다. 초청 여부와 상관없이 심사평은 동일하게 오는데, 내 계획은 이 학회가 워낙 유명한 학회이니 분명 명망이 높은 심사위원들이 검토할 것이고 (규모가 작은 학회의 경우 나와 같은 박사 과정생이 검토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학회에 떨어지더라도 이 심사평을 받으면 그걸 기반으로 향후 추가 연구를 계획해 보자는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사실 심사평을 받아보면 대개 학회 수준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것 같다. 일전에 어떤 학회에는 3명의 심사위원들로부터 평을 받았는데 그중 한 명은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잘 모르므로 이 연구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는 한 줄 평을 써서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이 초록만 봐서는 이 분야에 기여하는 바가 전무한 연구'라는 평도 받은 적이 있다. 심사평의 목적이 애초에 연구자에게 좀 더 나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건설적인 평을 주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면, 저 두 심사평은 아무런 기능도 없는, 그저 연구자 기분만 불쾌하게 하는 심사평이었던 셈이다. 반면 4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어떤 학회에서는 7명의 심사위원들이 최소 한 문단씩 되는 심사평을 보내줘서 감동했던 적도 있다. 이번에 채택된 학회에서는 총 4명의 심사위원들이 검토해 줬는데, 그중 두 명은 심지어 A4용지 한 장 분량의 심사평을 보내주어서 놀랐다. 심사위원 당 몇 편의 초록을 검토하도록 배정받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 성의라니 익명이 아니었다면 꼭 학회에 가서 직접 인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쓰다 보니 학회에 대한 소개글처럼 되어 버렸는데 사실 오늘 브런치 글을 쓰게 된 것은 이번 이 학회 소식으로 인해 조금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 전에 꼭 이 학회에서 발표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곳인 만큼 기쁜 소식이었지만 마냥 기뻐하지 못한 채 마음이 좀 어려웠다. 같이 초록을 제출했지만 떨어진 친구가, 학회 발표 결과 여부를 듣고 난 이후부터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정도는 공부도 같이 하고 오가며 티타임도 갖고 못하면 문자라도 주고받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요새 좀 바쁜가 하고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른 친구들과는 연락도 잘하고 놀러 다니면서 나와 만나는 것은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나와 마주친 순간 그 친구가 크게 당황하던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횡설수설하더니 자기가 그 학회에 떨어진 것을 아직 지도교수에게 말하지 못했다며(그 친구는 지도교수와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린 상태였다), 자기가 떨어진 사실을 비밀로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게 그 친구와 대화한 마지막이었다. 이후 일주일이 넘도록 친구는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지만 나와 공부하지도 않고, 나와 같이 있는 자리도 피하고 있다. 자신은 떨어졌는데 나만 붙은 게 속상했던 걸까? 물어보자니 솔직히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고, 또 그 기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그냥 가만히 놔두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아마 본인은 꼭 붙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속상한 것은 속상한 것이다. 학회라는 게 붙을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지. 그리고 사실 사람들은 타인에게 별 관심이 없다. 나 역시 그 친구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에는 좀 의아했지만 (난 오히려 내가 떨어지고 그 친구가 '당연히' 붙을 줄 알았다), 그 순간에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 이후에는 워낙 바쁘고 할 일이 많아 정신없다 보니 그 친구가 학회에 떨어진 것에 대해 곧 잊어버리고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다들 그렇지 않나? 보면 다들 자기 인생 걱정하느라 바쁘지 남의 일에 그렇게 크게 관심을 갖고 두고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한 달 전에 남들 얘기 들었던 걸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나? 일주일 전은? 바로 사흘 전은? 생각보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다.


요새 내 최애 유튜브 채널인 MBC 아나운서국 '뉴스안하니' 중 한 장면. 유학생활 중 내 모토다!


여하튼 비밀로 해달라고 했으니 덩달아 내가 학회에서 발표하게 된 것도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누구가 학회에 지원했는지 교수님들이 알고 있으니 내가 붙었다고 이야기하고 다니면 당연히 나머지 애들에게도 사람들이 '넌 어떻게 됐어?'하고 물어볼 게 뻔했다. 사실 학회에서 연락을 받은 직후에 지도교수님과 (이 연구를 발전시킬 때 많은 조언을 주셨던) 또 다른 교수님 한 분에게는 바로 알려드렸는데, 이후 이 친구를 만나서 '비밀로 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다음부터는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둘이 지원했는데 난 떨어지고 친구만 붙은 상황을 난 살면서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서 그 친구의 마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그게 충격이었나 의아하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축하한다는 말도 한마디 없이 연락을 줄일 정도로 우리의 우정이 이 정도로 얄팍했나 싶어 서운한 마음도 든다. 생각해 보면 부모 빼고 내 좋은 일에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남들 안 좋은 일에는 같이 울어주기 쉬워도 남들 좋은 일에 같이 웃어주기는 쉽지 않은 게 대부분의 인간들인 것이다. 특히나 그게 자기와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분야에 있는 사람일수록 말이다. 인간의 심리란.


꽤 가깝다고 생각했고 속마음도 나눌 정도로 신뢰하는 친구였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유학 생활 중 맺은 인연들에 대해 좀 현타가 왔다. 내가 그간 어떤 사람들을 믿었던 건가 허무한 마음도 든다. 처음에는 속상한 마음이 컸는데, 좀 시간이 지나고 난 오늘은 기분이 좀 나은 것 같다. '나라면 저러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고 했다. 내가 같은 입장에 처했다면 나만 떨어진 게 조금 속은 상해도 겉으로나마 같이 기뻐해주고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을 것 같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그것이 그 친구의 한계일 것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싶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타인의 기쁨에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그것이다. 남에게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나와 비교하면서 배 아파하거나 질투하거나 '난 왜 이럴까' 자기 비하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저 사람처럼 잘 되려면 무엇을 배워야 하나, 그 사람의 장점은 무엇일까 생각하며 좀 더 건설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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