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어딜 가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지만 특히나 이 학계라는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생하는 대학원생들의 경우에는 peer reviewer들의 평가에 의해 내 연구가 학술지에 게재되거나 학술대회에 초청되고, 학과 내 내 입지도 교수진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되다 보니 나에 대한 남들의 평가, 그리고 남들이 무슨 연구를 하고 있고 얼마나 진도를 나갔는지 같은 것들에 예민한 사람들이 항상 있다. 나 또한 입학 초반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이런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해서, 동기 중 누가 나보다 빨리 유명 학술지에 페이퍼를 기고한다든지 나보다 늦게 입학한 학생이 먼저 졸업한다든지 하면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남은 남이고 나는 나, 대학원 생활 4년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주위를 보면 이걸 잘하지 못해서 불행해지거나 질투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A가 바로 우리 학과에서 그런 것에 엄청 예민한 사람 중 하나이다. A는 장점이 많은 친구다. 사회성이 좋아 처음 보는 사람과도 곧잘 친해지고, 머리가 좋고 성실해서 연구도 착착 진행하며 성과도 잘 낸다. 남이 어려움에 처하면 선뜻 자신의 시간과 자원을 들여 내 일처럼 도와주는 까닭에 우리 학과는 물론 다른 학과에도 친구가 많다. 그 덕에 학과 내, 크게는 캠퍼스 전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뭐가 이슈인지 이 친구를 통해 다 알 수 있다. 그 정도로 귀가 넓고 마당발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나 장단이 있듯 바로 그 점이 A의 단점이기도 하다. 많이 아는 만큼 그걸 좀 부적절하게 떠벌리고 다니기도 하고, 학과 내 모든 애들의 학업 진도 상태를 꿰고 있는 만큼 자기 입장에서 그걸 평가하는 말을 할 때도 있다(예: "B가 이번에 무슨무슨 학회에 나간다고 하더라. 나라면 그 학회는 그 분야에서 별로 쳐주지 않는 분야이니까 곧이 시간 들여 그런 학회는 안 갈 텐데." "지난주 C 발표한 건 솔직히 별로였어. 나라면 결론에서 그 통계분석 결과는 보여주지 않았을 거야.").
우리 모두 자신의 주관을 지닌 사람이다 보니 나 또한 남의 언행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함부로 그걸 입밖에 내지는 않는다. 입장 바꿔서 내가 열심히 진행해서 발표한 연구 결과를 내 친구들이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평가하고 입방아에 올린다는 걸 알게 되면 너무 속상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친구의 향후 연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건설적인 피드백이라면 직접 그 친구에게 말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부정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또한 아직 한창 배우고 있는 사람인데 남의 연구에 함부로 배 놔라 감 놔라 할 주제가 못 된다. 그런데 A는 꽤 자주 남의 연구에 대해 평가를 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게 나를 믿고 하는 말 같기도 하지만.... 그런데 바로 A의 그런 단점이 크게 부각되는 일이 있었는데, 바로 지난 학기에 A와 같은 학기에 입학한 동기가 그 학기에 논문 심사를 받겠다는 계획을 세웠을 시점부터였다.
나는 그 동기와 그다지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그 장대한 논문 심사 계획 또한 당연히 A를 통해서 전해 들었다. 그 동기와 A 둘 다 나보다 한 학기 늦게 입학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나 역시 그 계획을 들었을 때 그보다 느린 내 진도를 돌아보며 조금 현타가 왔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이고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A는 아무래도 동기라 그런지 그게 좀 더 자신과 비교가 되면서 배가 아팠던 모양이다. 그 장대한 계획에 대해 만나는 사람마다 소문을 내고 다녔다. 당연히 좋은 소문일 리 없었다.
"세상에 아직 논문 쓰지도 않았는데 이번 학기 안에 논문 심사를 받겠다는 거 있지!
지금 이번 학기 8주도 남았는데 어떻게 그걸 완성한다는 건지.... 너는 가능하다고 생각해?"
어? 글쎄... 나는 말을 얼버무리며 답을 피했다. 그런데 사실 난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때 그 아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꽤 오래전 그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나는 매 학기 첫째 주가 끝나기 전에 학기 내 모든 과제를 끝낸다"던 그 애의 이야기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학기 중에는 자기 연구에 몰두하고 싶어서, 기말 페이퍼를 포함한 모든 coursework를 개강 초반에 강의계획서가 업로드된 이후 2주 내에 다 끝내버린다는 것이었다. 우리 학과는 펀딩을 받는 대신 학부생 대상 강의를 맡는데, 그 학부생 강의 자료도 개강 첫 몇 주 안에 다 완성해 놓고 이후 나머지 14-15주 동안은 자기 연구에 집중하는 게 자신의 전략이라고 했다. 그 얘길 듣고 늘 마감기한 되어서야 허덕이며 제출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부지런하고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니 8주 안에 논문을 끝내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그게 얼마나 불가능한지 내 앞에서 열심히 떠들고 있는 A가 무안해지기만 할 테니까.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 장대한 계획은 현실이 되었다. 그 친구는 8주도 안 남은 기간 동안 무사히 졸업 논문을 완성해서 심사를 받았고 박사 학위를 달았다. 그다음 학기인 이번 학기에 지금도 미국에 머물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논문을 완전히 끝내 놓고 이번 학기에는 여유 있게 구직에만 집중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하튼 그 일을 겪으며 나는 A의 시기 질투하는 모습에 조금은 학을 떼게 되었고, 그 때문에 A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임에도 나 역시 당시 열심히 작성 중이던 졸업논문 proposal에 대해 함구했다. proposal을 완성해서 심사를 마칠 때까지도 비밀로 부쳤다. 나 또한 그 장대한 계획을 세웠던 A의 동기만큼이나 조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계획을 세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막판에는 코로나에 걸린 상태에서도 연구실에 출근해 잠자는 시간만 빼고 글을 썼고 무사히 종강 3일 전 심사를 통과해 박사 후보생(ABD) 신분이 되었다. 이번 학기 초에 A와 대화를 하다가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심사 통과한 사실을 얘기하게 되었고 A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남에게 너무 관심이 많고 질투심이 있어서, A는 저걸 잘 다스리지 않으면 저거 때문에 불행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A와 잘 지내지만, 그 아이의 심기를 거슬릴 만한 주제, 가령 내가 뭔가를 A보다 더 잘했다든지 빨리 끝내는 경우에는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A와 가까우면서도 가깝지 않은 사이이다. 내 모든 걸 오픈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A 본인은 아마 모르겠지만.....
그런데 며칠 전에 바로 그런 A를 이해하게 된 일이 있었다. A는 유럽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번주부터 3주간 유럽과 미국 본토를 오가는데, 출국하기 전날 같이 저녁을 먹었다. A가 뜬금없이 물었다.
"너는 비행기 타는 거 좋아해?"
"음, 글쎄. 예전엔 좋아했는데 요새는 학회 때문에 본토 많이 오가다 보니까 좀 힘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그건 왜?"
"난 싫어. 9살 때부터 싫어했어."
"아홉 살?"
"응. 우리 부모님이 그때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 영주권을 따야 하니까 미국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인도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려면 공항까지는 부모님이 날 바래다줬지만 비행기는 나 혼자 타야 했어. 물론 보호자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미리 항공사에 신청을 하면 항공사 직원이 함께 동행해 주긴 했지만."
나는 학부생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 올 때나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보았는데 (그전에 캠프로 친구들과 다 같이 우르르 탄 것 제외하고), 그때도 탑승구에서 손을 흔드는 가족을 보며 눈물을 한가득 쏟았었다 (왜 탑승구 문은 멀쩡하던 사람도 아련해지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무려 9살? 아홉 살에 난 한국에서 뭐 하고 있었지? 어린 여자애가, 아직 영어도 서툰 애가 공항에서 처음 보는 사람의 인계에 따라 비행기에 오르고 48시간 경유해서 인도 공항에 내리고, 공항에 마중 와 있던 할머니를 만나 인사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아무리 옆에 동행하는 어른이 있다 해도 그 48시간이 얼마나 긴장되고 힘들었을까? 가족과 함께 해도 힘든 게 장거리 여행인데 쉽지 않았겠구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우리가 가진 성격은 우리가 어려서부터 그런 성격으로 성장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발달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즉 너무 말이 없고 소심한 사람은 그렇게 내향적이고 소심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성격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나는 조금 남들에 비해 예민하고 감성적인 편인데, 그래서 늘 사소한 감정의 요동에도 쉽게 학업에 영향을 받는 내가 싫을 때가 많았는데, 저 얘기를 듣고 나서 조금은 나 자신을 애틋하게 여기게 되기도 했더랬다.
A의 그 주도면밀하고 눈치 빠르고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성향이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9살 먹은 여자애가 성공적으로 그리고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비행을 하려면 주위에 돌아가는 상황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만히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마음 편하게 앉아있기는 힘들었을 테다. 10살도 안 된 딸을 비행기에 태워 보낼 수 있는 부모라면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상당히 독립적인 사람이 되도록 딸을 키웠을 가능성이 높겠지. 영주권을 따고 시민권을 따기까지 그 부모는 많이 고단하고 바빴을 테니 외동딸인 A를 마냥 평범한 가정에서처럼 느긋하게 키울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 덕에 두 부모는 모두 미국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고 A는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 살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이것은 대부분의 이민자 가정의 자녀라면 흔히 겪는 스토리일 것이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정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모, 그리고 그 부모 밑에서 나름 그 사회에 구성원으로 진입하기 위해 애쓰는 2세, 3세들. 웬만한 남들보다 잘 해내야 했고 그래서 남들의 뭘 얼마나 어떻게 하고 있는지 파악해야만 늘 앞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환경. 너의 성격은 그래서 그렇게 형성된 것이었구나.
우리는 많이 대화할수록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많이 알게 되면 상대의 약점이나 단점에 대해 '그래서 그랬구나' 더 수용하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며칠 전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누군가 미워질 땐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설교 영상을 보았다. 다 보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어떻게 미운데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A의 이야기를 듣고 난 지금은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을 더 알게 되고, 그래서 그 사람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듣고 나면, 그 사람의 삶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마냥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다는 결론. 학과 내 모든 애들을 경쟁자 취급하는 것 같아 조금은 꺼려졌던 A의 성향이, 그렇게 해야만 이 낯선 미국 땅에서 마침내 이방인이 아니라 시민권자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니 이해가 되었고 안쓰럽기까지 했다.
유학생활은 내게 학문뿐 아니라 인간을 더 이해하게 해 준다. 뜻밖의 인문학 예찬론으로 끝맺는 오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