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말하다
출근을 하고 자리에 앉으니 빼곡하게 적혀있는 캘린더가 보인다.
오늘은 두 건의 조사가 예정되어 있다.
첫번째 사건은
일용직 건설 근로자의 일당을 챙겨 잠적하신분이다.
전화도 안받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다.
누군가를 이렇게 간절히 기다렸던 적이 있던가.
연인을 기다리듯 오매불망 기다리지만
오늘도 아마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예감이다.
두번째는 근로자와 개인사업주의 대질조사로 오후 일정이다.
피튀기는 싸움이 예정되어있다.
저번 조사에서 눈을 부라리며 따져대는 진정인의 얼굴이 머릿속에 확하고 떠오르니
곧바로 피곤함이 몰려와 캘린더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어제 조금 잠을 설쳤는지 눈이 뻑뻑해지고 하품이 나온다.
감독관이 되고 수시로 인공눈물을 넣는 것은 나에게는 이제 꽤나 익숙한 일이다.
탕비실에 가서 녹차한잔 타와 내부전산 프로그램에 들어가본다.
째깍 째깍 시계의 초침이 가는 것 처럼
사건의 남은기한도 하루마다 줄어든다.
수십개의 숫자가 날마다 줄어드니 가끔씩 사건이 많이 쌓여있을 때에는
숨이 막힐듯한 기분이다.
'빨간불, 빨간불, 마이너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고민보다는 행동이 언제나 정답이 된다.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움직이자.
큰 맘먹고 서랍에 모셔둔 서류뭉치들을 잔뜩 꺼냈다.
가지고 있는 것은 수십건이지만 한건 한건 처리하는게 쉬운일이 아니다.
고도의 몰입이 필요한 감정 노동이다.
돈이 얽혀있는 일은 항상 쉽지가 않다.
감정이 항상 따라오기 때문이다.
내 임무는 노동법령 위반에 대한 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일이지만
가끔씩은 양 당사자간의 얽혀있는 감정을 만지는 일도 필요할지 모른다.
전화기를 들고 거침없이 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이 길어질수록 생각의 꼬리도 길어져 간다.
신호음이 끝나고 목소리가 들린다.
진정사건이 접수되었다고 조사 절차를 안내하자 탄식이 들려온다.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 말을 건넨다.
수십분의 통화가 이어진다.
어찌 이 사건도 들어보니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조사일정을 잡고 힘겹게 전화를 끊어낸다.
서류뭉치에서 한장을 꺼내 옆으로 내려놨다.
다음 진정서에 적힌 전화번호를
기계적으로 누른다.
전화를 받지 않는 진정인.
문자를 남겨놓고 다음 진정서를 확인한다.
진정내용에 빼곡히 적힌 '연장수당, 야간수당'을 포함한 수백자의 사연.
한숨을 쉬고 다음 진정서를 힐긋 넘겨보니 15명의 다수 진정서가 보인다.
어느새 시계바늘은 점심시간을 가리키지만
오늘은 어쩐지 긴 하루가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