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떨리는 노동부 대질조사
대질조사로 불러낸 두 중년의 사내가 내 앞에 앉아있다.
30년지기 친구였다던 두사람의 깨진 관계를 보여주듯
가까이 앉아있지만 사이에 시퍼런 냉기가 흐른다.
"쳐다도 보기 싫고, 말 섞는 것도 싫어요. 아주 죽여버릴 것 같아요"라던 진정인은
피진정인이 등장하자마자 벌써부터 얼굴이 욹으락 붉으락.
피진정인도 할 말이 많은지 내가 앉자마자 목에 핏대를 세우며 격하게 따져 묻는다.
"아니, 노동부가 이렇게 노동자편에만 서서 해도 되는거에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데 시간 버려가면서 여기까지 오게만들고"
어디서 지령을 받았는지 피진정인들은 다들 비슷한 말들을 한다.
"말같지도 않은 소리인지 말이 되는 소리인지는 제가 오늘 볼거구요. 시간 써가면서 앉아있는건 셋다 마찬가지죠. 저도 시간많고 심심해서 두분 모셔놓고 서로 얼굴보게하는거 아니에요. 계약서든 임금이든 근로조건이든 다 구두로 했고, 주장도 서로 다르시잖아요. 사실이 뭔지 위반이 있는지 한번 따져보기위해 어쩔수 없이 두분 모신거니까 이해해 주시고, 좋은마음으로 해주세요."
설명을 듣는 얼굴이 뚱하다.
사무실이 곧 시끄러워 질거라는 예감이 든다.
철천지 원수가 된 두 사람을 불러다가 구태여 싸움을 붙여야 한다.
질문을 통해 두 사람이 서로 처음 약속했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거슬러 올라가며 두 사람의 스토리를 듣는다.
동업을 하다가 배신한 관계, 부부사이였다가 이혼하며 법적 공방을 펼치는 관계
형제같은 친구 관계, 친 누나와 친 동생의 관계, 삼촌과 조카인 관계.
같은 임금체불이라도 사연은 모두 제각각이다.
신뢰를 가지고 웃으며 약속을 나누던 관계에서 서로룰 죽이겠다고 하는 사이가 되기까지.
무슨 사연이 있어 어쩌다 이지경까지 오게되었을까.
사연을 듣다보면 궁금한게 생기기도 하지만 길을 잃어서는 안된다.
느긋하게 감정을 헤아리고 서로의 관계를 회복시킬 시간이 없다.
절차를 이해시키고,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처벌의사를 묻는다.
몇 번의 질문에 서로 고성이 오간다.
각자의 응어리진 감정들이 폭죽이 터지듯 폭발한다.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손이 벌벌 떨리기도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나도 곧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 함께 빠지기도 한다.
"감독관님, 이 사람이 얼마나 나쁜사람이냐면요."
감독관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사건과 관계없는 정보들을 털어놓는다. 민감한 이야기들이 나오자 그들의 싸움은 더욱 격해진다. 슬슬 육두문자가 나오기 시작한다.
"나가세요. 나가세요. 잠깐만 쉬다가 오세요."
싸움을 말리려 퇴청을 시킨다. 퇴청을 시키는 과정도 녹록지 않다. 한바탕 요란한 소동이 벌어진다.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니 그제서야 우리 사무실이 이렇게 조용했구나 싶다.
감정이 가라앉으니 피로감이 몰려온다.
몸을 쭉 늘여 의자에 기댄 채 마른세수를 한 번한다.
오늘 이 조사가 끝이날 수 있을까?
정신을 다잡고 질문을 이어간다. 증거와 근거는 없고 주장과 고성만 가득한 이 대질을 감독관은 어떻게 해서든 끝을 내야 한다.
나가있던 진정인을 불러온다.
"들어오세요. 다시 시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