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비에리, <자기 결정>을 읽고
어느 추운 겨울,
독립서점에서 발견한 도발적인 빨강책, <자기 결정>. 사회학교수가 운영하는 서점이다 보니 인문, 사회학, 철학 쪽의 서적이 많은 곳이었다.
책의 색깔, 제목, 얇디얇은 두께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없었던 책.
나는 얇은 책을 참 좋아한다.
짧은 시간에 강한 통찰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병철 작가의 작품도 꽤 좋아하는 편이다. 까뮈, 체호프, 모파상도 이런 맥락에서 참 좋아한다.
짧은 분량의 책에서 강한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진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장편소설이나 두꺼운 책들도 흐름을 따라가 읽다 보면 마지막 즈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래도 취향차이가 아닐까 한다.
짧고 굵은 메시지와 메타포로 가득 담겨있는 이 얇은 분량의 책을 내 것으로 만들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읽고, 또 읽고, 인덱스 테이프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일일이 체크하고 또 읽어봤다. 물론 지금도 모든 내용을 이해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처음보다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되고 체득하게 되었다.
"자기 결정"
우리가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익숙한 단어다. 다시 말해,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선택의 문제일까?그렇다면 선택은 어떤 과정으로 일어나는가?
페터 비에리는 남이 아닌 자기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도 모르게 노출되는 미디어의 광고, 정치선동, 가십거리가 나의 가치관이나 생각에 영향을 얼마나 미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본 적이 있는가?
그에 따르면,
자기 존엄이란 자신을 잘 파악하는 것이다. 자기존엄은자신을 말과 글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통해 배양된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지속적으로 읽고, 기록하고, 내뱉는 연습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를 찾는 것이야말로 '자기 결정'의 진정한 실현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욕구와 되고자 하는 이상이 일치하지 않을 때 괴리감을 느낀다. 이러한 욕구와 이상의 차이를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고 구별해 냄으로써 일치시키는 작업이 자기 결정의 핵심적 가치다.
내가 원하는 이상과 욕구가 일치할 때, 우리는 온전히 모순 없는 '자기 결정'을 할 수 있고, 자신만의 진정한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과 욕구가 일치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억압이나 권력에 의해 짓눌려있다면, 더더욱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의 욕구와 이상이 일치될 때까지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답을 찾는 길은 책이 될 수도, 일상의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어떤 일을 맞닥뜨렸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자신만의 메타포를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어찌 보면,
행복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남용되어서 쓰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주어진 것에서 자신의 행복을 치열하게 찾아내야 한다.
최근에 함께 읽은 거인의 노트에서도 매우 유사한 성찰이 담겨있다.'기록'하는 행위로 자기 성찰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기록은 자신의 생각을 객관화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제삼자의 시선으로 확인할 때, 자신의 현재 욕구와 원하는 자아상에 대한 탐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말과 글로 나를 치열하게 표현하고 기록하는 행위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작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