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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Mar 10. 2022

세상에 나와줘서 감사한 책

하미나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여성들의 고통과 우울에 관한 책. 고통과 우울이라니 -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었다. 일단 남의 우울을 듣는 일이 그렇게 유쾌하진 않으니까. 구입을 하고, 오랫동안 책장에 머물렀던 책이었다. 왜 읽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는다. 걱정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술술 잘 읽히다가도 마음이 아파서 읽고 덮기를 반복했다. 어떤 부분은 정말 공감이 된 반면 또 어떤 부분은 내가 겪지 못했던 충격적인 일의 연속이라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이 감사한 이유는... 책에 등장한 인터뷰이들을 단순한 피해자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아서였다. 모든 인터뷰이는 단단하고, 용기 있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런 힘 있는 모습에 이 책을 읽으며 한 줌의 희망을 느꼈다. 


말하자면... 나는 치료가 필요했으나, 인생을 해석할 권한을 누구에게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정신과에서 듣는 얘기든 심리 상담에서 듣는 얘기든, 이는 판단의 자원으로만 남길 바랐다. 내가 우울하고 미친 인간이기만 할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하느라 아팠던 것을 약함의 증거로 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너무나 열심히 싸워오질 않았나. 어쨌든 이렇게 살아 있지 않은가.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울증'이라는 진단명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스스로 다시 쓰게 되었다고. 이 책은 저자,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인터뷰이의 권한을 뺏기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터뷰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책 제목의 의미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상황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아도 도 주체적으로 현 상황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굳건한, 주체적인 여성들이었던 것. 자꾸만 사회가 이들을 객체로, 피해자로 환자로 그려내려 하지만 그들은 머무르지 않는다. 욕을 하든, 약을 처방 받든, 상담을 하든, 글을 쓰든, 이렇게 인터뷰에 참여하든 주체적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고 해결하려고 한다. 이런 장을 만들어준 저자에게도 감사했다. 저자는 이어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에 대한 말과 글이 아니라 이들에 의한 말과 글이다. 무엇보다 주요한 의사결정권이 이삼십 대 여성에게 직접 주어져야 한다."


사실 이삼십 대 여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순간은 사건 그 자체라기보다는 발언, 저술의 기회조차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일 테다. 나 또한 그랬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말할 구멍을 찾으려고 노력했고, 기회가 닿는 대로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혹시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책에 나온 사람들을 제멋대로 재단하기보다는 응원을 보태주길 바란다. 이 책이 나와, 너무 반갑고 고맙다.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여성들이 멈추지 않고 나서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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