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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Mar 11. 2022

우리는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

책의 제목부터 강렬하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법> 그런 방법이 있을까? 궁금증을 갖고, 움베르토 에코의 에세이를 읽었다. 책의 서문을 이탈리아 버전, 프랑스어 버전으로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어 버전이 좀 더 와닿는 감이 있어서 가져와 보았다.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진짜로 쓸 것을 미리 쓰는 것이다. 패러디의 사명은 그런 것이다. 패러디는 과장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제대로 된 패러디는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웃거나 낯을 붉히지 않고 태연하고 단호하고 진지하게 행할 것을 미리 보여 줄 뿐이다.


이어서 움베르토 에코는 이렇게 말한다. 책을 전체를 관통하는 언어유희의 목적은 바로 재미라고 강조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첫 책에 실린 패러디들은 그 나름의 도덕적 기능을 지니고 있긴 해도 일차적으로는 재미를 주기 위해서 쓰인 것들이다. 그리고 이 책에 실린 글들 역시 그와 똑같은 맥락에서 태어났다. 이는 나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재미를 누릴 권리를 옹호한다. 그 재미가 사고 능력과 언어 능력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패러디가 "도덕"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순간 급격히 재미가 없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


에코가 느꼈던 분노의 순간을 그만의 재미난 방식으로 표현했다. 표현이 재밌어서 웃지만, 웃고 난 다음에 불편함을 알아차릴 수 있는 것. 예를 들면 호텔 시스템의 비효율을 꼬집는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 에피소드라든지, <말줄임표를 사용하는 방법>,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법>등 실용 처세법에 나온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그가 가진 위트와 순발력에 어질어질하다. 한편으로는 에코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긴다. 유머도, 할 말 잘하는 것도 결국에는 화자가 어떤 위치의 사람인지도 중요한 요소니까. 나는 그러지 못하는데, 에코는 그럴 수 있으니 이 지점에서 대리 통쾌함을 느꼈던 것 같다. 맞다. 이 책을 읽고 좋았던 감정은 나를 대신하여 상대방에게 어퍼컷을 날려주는 통쾌함이었고, 씁쓸한 감정은 바로 나는 그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분노하는 것은 참 쉽다. 하지만 상황을 관조하고, 뭐가 됐든 재미로 풀어내는 것은 그 이상의 지적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에코는 이를 참 쉽게 한다. 진지하면 흥미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시대에 유머로 사람의 관심을 환기하고, 뼈 있는 이야기를 한다. 참으로 부러운 능력이다. 나도 웃으면서 화내고 싶은데, 그게 가능한가. 쉽지는 않겠지만 시도는 해보련다. 무작정 화내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상, 배워야 할 게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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