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장면들>
좋아하는 각본가 겸 감독인 아론 소킨의 <뉴스룸> 시즌1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 Will McAvoy: What does winning look like to you?
- Mackenzie MacHale: Reclaiming the fourth estate. Reclaiming journalism as an honorable profession. A nightly newscast that informs a debate worthy of a great nation. Civility, respect and a return to what's important; the death of bitchiness; the death of gossip and voyeurism; speaking truth to stupid. No demographic sweet spot; a place where we can all come together.
나락으로 떨어지는 저널리즘의 위상을 제4계급의 위치로 되찾는 것이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의 사명이어야 한다는 점. 내겐 깊은 울림을 주는 대사였고, 손석희의 <장면들>을 읽으며 미국 드라마 <뉴스룸>을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손석희의 뉴스룸 시절에 벌어진 굵직한 "큰"사건들을 위주로 회고하고, 저널리즘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월호, 태블릿 PC, 대선, 미투 등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시 마주하니,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무거운 사건 아니었는가.
손석희의 장면들은 그가 미네소타에서, 전 직장에서, 현 직장에서 정립한 저널리즘의 정의를 곱씹으며 실천하는 이야기다. 특히 레거시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는 시대에 레거시 미디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계속해서 곱씹는다. 알짜는 주로 그가 달아놓은 사족에 있었고, 그에 대한 평은 많이 갈리긴 하겠지만 언론인으로서의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특히 나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 서술한 부분 감시견(watch dog)/애완견(lap dog)에 대한 부분이 좋았고, '저널리즘을 위해 운동을 할 수는 있어도, 운동을 위해 저널리즘을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오랜 주장도 맘에 들었다.
이 에세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책의 서문에서 '어젠다 키핑(Agenda Keeping)'이라는 저널리즘의 한 방법론을 언급하는데, 이를 풀어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미디어가 단지 의제를 세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의제를 꾸준히 지켜냄으로써 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것과는 좀 다른 얘기다. 다만, 실제로 적는 한, 이상적이고도 취약한 주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을 수밖에 없다." 어젠다 키핑을 추구하면서 겪었던 부단한 시행착오 또한 이 책에 함께 기록되었다. 순수한 예술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기업의 광고를 먹고사는 곳이기에 그가 추구하려는 어젠다 키핑은 늘 구조적인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희망을 찾게 된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도 손석희는 어젠다 키핑의 힘을 믿었다. '도구'임을 인정하고, 그 '도구'가 '좋은 도구'였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그가 일관되게 '품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시청률도 중요하고, 단기적인 수익도 중요하긴 하지만 적어도 품위는 지키자는 것.
"나는 공영방송인 MBC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그 MBC 역시 시청료가 아닌 광고로 먹고사는 회사였기 때문에 '장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나는 그대나 지금이나 내가 그 '장사'의 '도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도구'였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서 사회 변화에 선한 일조를 한다면 적어도 비아냥의 대상은 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젠다 키핑을 생각하다 내가 좋아하는 영어 단어 "abide"가 생각났다. 머물며 견딘다는 말. 올 초에 읽었던 <두 번째 산>에 나왔던 단어다. 세상에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아, 큰 자극만큼이나 잊히는 속도도 가속화되었다. 챙겨야 할 것도 너무 많고, 점점 중요한 가치를 잃고 사는 때가 많아졌다. 그런데 <장면들>을 읽어보니, 적어도 손석희가 있었던 JTBC 뉴스룸에서는 끈질기게, 머물며 견뎌줬다. 진실에 다가갈 때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가 줬다. 그래서 그가 말한 어젠다 키핑을 머물며 견디는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덕에 우리 사회에서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 아닌가. 도구로서 남지 않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이 책에서 많이 배웠다.
“그때는 결정해야 했다. 감정은 사그라지고 논리만 남아 있을 때, 그마저 닫아버리면 어찌 되는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감정도 안 남고, 논리도 안 남는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분명히 존재하는 어젠다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할 수 있는,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껍데기만 남는 것이다. 그러면 (좀 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기자들은 어디 가서 앵벌이 해오는 것밖에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적어도 논리적으로 우리가 거기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 한 계속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언제 끝낼 것인가. 이에 대해선 사실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언론이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기억해준다면 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