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오랜만에 본가에 갔다. 본가에 있길래 호기심에 읽게 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음울한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보니, 책의 제목, 표지부터 영 끌리지는 않았다. 다자이가 살면서 겪은 굵직한 사건들을 허구화한 책이고, 그의 삶을 일부 투영했기에 자전적 소설로 분류된다. 소설에 나온 '요조'는 어쩐지 다자이와 겹쳐 보인다. <인간 실격>에 나온 주인공 '요조'를 납작하게 묘사하자면 그저 부적응자라고 할 수 있겠다.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자기만의 세계에 미쳐있지도 못하고- 회색지대에 걸쳐있는 슬픈 인생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필사적인, 그야말로 천 번에 한 번밖에 안 되는 기회를 잡아야 하는 위기일발의 진땀 나는 서비스였습니다."
세상살이에 적응하지 못해도 주인공은 인간을 단념하지 못한다. 계속 연결되어 있으려 노력한다. 애처로운 자... 사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를 두고,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 대목에서인가 '요조'가 한편으로는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가 고흐와 모딜리아니를 부러워하는 순간에서. 어떠한 왜곡도, 속박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표현하는 그들의 순수함을 동경하는 대목에서, 요조를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대도 다르고, 국적도 다르지만 이 소설이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선택받는다는 건, 가면을 쓴 채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요조의 죄의식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시대가 흘러도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와 나답게 살고 싶은 욕구는 변치 않는다. 우리도 요조처럼 그렇지 않나. 세상이 원하는 나의 모습,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사이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잃게 된다. 그래서 요조는 어쩔 수 없이 세상을 등졌는지도... 나와 요조를 쉽사리 분리시킬 수 없게 만든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