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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Mar 19. 2022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이유는

모티머 애들러 <듣는 법, 말하는 법>

오랫동안 나는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어쩜 저렇게 물 흐르듯 글을 쓰는 건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정말 부럽더라. 글이야, 몇 번이고 수정하면 되는 거지만 한 번 잘못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 박제된다. 이러니 신경 써야 할 게 참 많다. 게다가 내 앞에 있는 청자의 반응을 살피며 말해야 하니 보통 에너지가 필요한 게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니 글도 글이지만 말로써 상대방을 납득시키고 설득시켜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잘 말하는 법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모티머 애들러의 <듣는법, 말하는 법>을 보고 역시나 - 잘 듣고 말하는 게 정말 어렵고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Rhetoric)에 나온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를 중심으로 잘 말하는 법에 대해 설명한다. 워낙의 유명한 개념이지만 정작 실천하기 어려운 게 설득의 세 가지 요소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아닌가. 이 부분을 읽다가 최근 옆 팀 동료의 비즈니스 대화를 엿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강사로 모시고 싶을 만큼 명료한 톤으로 말하는데, 나는 감탄하며 그분께 "공손하면서, 뼈 때리고, 재치 있다"는 다소 오만한 감상평을 전했다. 그분은 멋쩍게 웃고 넘겼는데, 따지고 보니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가 다 들어가서 그랬던 것. 상대방의 신뢰와 호감을 얻는 에토스는 보통 나를 낮추는 겸손함과 내재된 공손한 태도에서 나온다. 사실을 놓고, 논리 정연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은 로고스고, 파토스는 청자의 열정을 자극하고 감정을 북돋아 어떠한 행동을 하게 유도한다. 이 세 가지가 잘 맞물리면 설득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


덧붙여 저자는 말의 구성을 관장하는 택시스(taxis)와 모호성을 피해야 하는 언어의 양식, 즉 렉시스(lexis)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택시 스는 서두, 본론, 맺음말의 중요성을 늘 챙겨야 한다는 것이고, 일상적이지 않거나 평범하지 않은 용어를 얘기할 때는 그 단어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더 세심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 텍시스, 렉시스를 모두 챙기면서 말하는 게 말 잘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아, 그런데 앞서 말했듯 말을 하는 게 어려운 것은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청자가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이런 to-do들을 정리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당연하지만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누구나 어렸을 때에는 약간의 천재를 지니고 있다.  말은  누구나 진정으로 들을  안다는 것이다. 아이는 듣고 말하기를 동시에   있아. 그러다가 조금  나이를 먹으면 많은 아이가 지쳐서 점점  듣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듣는 극소수가 있다. 그들도 아주 나이를 먹으면 결국  이상 듣지 않는다. 무척 슬픈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기로 하자. - 거트루드 스타인(손턴 와일더 기록)”


아무리 유려하게 말 잘하면 뭐해. 상대방이 말하는 얘기를 잘 듣지 않으면 말짱 꽝임을. 대화의 핵심 열쇠는 늘 상대방의 말에 있음을 우린 종종 잊는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말할 때 초롱초롱한 눈으로 경청하는 상대방이 있다면,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꺼내서 하고 싶지 않은가. 경청과 공감의 추임새는 그다음에 이어질 대화를 더욱 수월하게 만든다. 내가 다니고 있는 트레바리 방에 붙인 벽에 이런 포스터가 있다. "좋은 대화는 잘 설득하는 사람이 아닌 잘 설득당하는 사람이 만듭니다."라고- 정말 명문 아닌가. 이 문장을 보면 늘 반성하게 된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유독 지분율이 높으면 오히려 후회가 밀려온달까. 기본적으로 내가 꿇릴 것도 없고, 여유가 있을 때 느긋하게 침묵을 즐길 수 있는 것인데 말이야. 물론 이 책은 말 잘하는 방법이 대부분이고, 듣는 법은 짧게 다뤘다. 잘 듣는 방법은 어떻게 더 설명할 수 없었던 게지. 왜냐면, 이건 그 순간의 대화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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