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이 낭비는 아니었어...

by 창업하는 선생님
출처 : 영화<어벤져스>
수트를 벗으면 넌 대체 뭐지?


영화 <어벤저스>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오만한 토니 스타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대사가 군 생활을 시작할 때의 저에게도 내려 꽂혔습니다.



저는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부산에서 1년 정도 교직 생활을 했었습니다. 입대 당시엔 나이도 26살로 많다면 많을 나이 적다면 적을 나이였고 사람들도 제 직업을 말하면 긍정과 호의의 눈빛으로 답했습니다.



하지만 군대라는 상황은 절 감싸고 있는 껍데기를 모두 벗겨버리고 저의 벌거벗은 모습을 직면하게 했습니다. 교사라는 지위, 괜찮은 학력, 잘 꾸며진 외모, 나이, 교사로서의 전문성 이런 장신구와 옷 등 외적인 것들이 사라지면 '나'는 뭐가 남는지 확인하게 했습니다. 말 그대로 벌거벗은 실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이 제로가 된 상황에 저는 내던져졌습니다. 선임과 조교들에게는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었든 간에 전 빡빡머리 21년도 2월 군번인 신병에 불과했으니까요.



이런 외적인 것의 상실은 반대로 내면적인 것에 집중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교사'가 아닌 '인간'으로서 넌 어떤 사람인가? 너에게 돈, 지위, 나이 이러한 허울들이 사라지면 너는 어떤 사람이냐? 이것이 제 군 생활 동안의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인간적 따스함


사회에선 항상 존중의 눈빛만을 받아왔다가 냉담함과 경멸로 가득 찬 훈련소와 신병 시절을 보내다 보니 제가 받아온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재 속에서 존재를 확인한다는 말처럼 인간적 존중을 받지 못하다가 저에게 따스한 한마디의 말을 건네는 선임과 조교를 보며 당연시 여겼던 존중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운전병이란 보직은 처음이었고 저는 불완전했습니다. 큰 사고를 여럿 치기도 했고 갈등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선임들과 간부님들은 놀랍도록 저에게 관대했고 따뜻했습니다. 큰 처벌을 받아야 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몇 번의 이해를 받았습니다. 바깥이었으면 저 스스로 책임을 지고 큰돈이 나가야 했지만, 간부님들은 별 말없이 제 잘못의 책임을 대신 짊어져 주셨습니다. 마치 부모님이 철없는 아들의 실수를 대신 책임지듯이...



그렇게 사고뭉치 신병이었던 저는 이젠 녹견을 단 분대장이 되었고 군 생활도 얼마 남지 않은 말년이 되었습니다. 저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젠 간부님들께 인정받고 후임들에겐 존경받는 선임이 된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그들의 관용과 이해가 없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받았던 것들이 너무나도 감사했기에 베풂을 받았던 만큼 다시 후임들과 신병들에게 베풀고자 했습니다. 차를 몰고 신병들을 인솔할 때면 딱딱하게 굳은 신병들에게 일부러 질문을 주고받고 부대 생활할 때 필요한 지식도 알려주곤 했습니다. 저는 군 생활에서 '인간인 나'를 보지 않고 '군인인 나'로 대우받는 게 큰 상처였기에 선후임 관계는 내려놓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존중하고자 했습니다. 분대원이 실수했을 때에도 질책하고 화를 내기보다는 간부님들이 선임들이 그랬듯이 관대해지고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전 제가 받았던 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군 생활은 낭비다.', '18개월을 허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만큼은 군 생활은 낭비가 아니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통장잔고는 제자리걸음이고 경력은 쌓지 못했고 교사로서의 전문성은 오히려 퇴보했지만 전 따스함을 경험할 수 있었고 존중과 관용을 베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누군가가 저에게 '교사라는 지위가 없으면 넌 뭐지?'라고 물어보더라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난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대지만, 누군가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본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군 생활을 하며 나만 피해받는다는 피해 의식, 불평, 불만을 가지기보다는 절망적 상황에서도 숨겨진 가치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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