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
글을 쓰는 건 아랫도리 벗고 남들 앞에서 서는 것이다.
책을 읽다 뇌리 속에 박힌 이 구절은 저에겐 큰 공감이 되었어요. 지금은 브런치나 불특정 다수에게 저의 글을 보여주는 것에 거침이 없습니다. 그러나 처음 SNS에 글을 올릴 때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다이어리에 꾹꾹 눌러 적은 생각들은 제가 보기엔 재미도 없고 유익해 보이지도 않아 독자들에게 보이기 민망했거든요. 글을 따로 배워보지도 않았고, 세상엔 너무 좋은 책과 작가들이 많아 제가 한 자리 들어갈 공간 하나 없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건 전부다 변명이었습니다.
우리 반 학생들은 시험을 싫어해요. 특히, 수학시험을. 제가 "시험은 너희들이 부족한 점을 확인하고 채우기 위해 보는 것이다.". "앞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을 해도 단원평가만 들어가면 깊은 탄식 소리와 비명소리가 나타났어요. 평가를 하고 채점을 할 때에도 신경이 곤두서있어요. 옆에 친구가 채점을 매길 때에도 평가지의 주인은 채점자에게 은근한 눈치를 주고, 채점자는 절친한 짝꿍의 마음이 괜스레 신경 쓰여 빗금을 긋지 못합니다. 내 '진짜' 실력을 시험지의 빨간 빗금으로 확인하면 수학을 잘한다는 믿음이 깨질까 두려워합니다. 우리 반 학생들과 글을 공개하지 못하는 저와 다를 바가 없던 것 같아요.
하지만, 온갖 자기 방어로 나를 밝은 태양빛 아래 평가받고 확인하는 것을 거부했던 것이 무색하게 글 공개는 중력이었어요. 클래스 101 강사의 강권으로 시작한 공개하는 글쓰기는 절벽으로 절 밀어주었습니다. 브런치에 늘어나는 라이킷 수, 올라가는 조회수 하나하나 짜릿했습니다. 수치 그 자체보다 누군가 귀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것이 큰 응원이 되었습니다. ‘나 여기 살아있어요’라고 외치는 글을 흥미 있게 읽어주는 존재는 제 삶을 글쓰기로 채워주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꾸준히 쓰고 읽기 시작했어요. 공개적으로 글을 쓰는 것은 멈춘 적은 있지만 항상 머리 구석 한켠엔 글쓰기가 머물렀습니다. 마치, 집에 하교할 때 보지도 않을 수학책을 가방에 넣어두는 것처럼 눈이 글엔 머물지 않았지만 신경의 촉수는 항상 뻗쳐있었습니다. 전역 후 지치고 삶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때에도 내 글을 기다려주는 구독자는 존재만으로 큰 응원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분들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글쓰기를 이어나갈 수 없을 것 같아요.
잘 쓰기보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힘든 것이 작가의 길입니다. 썼지만 아무런 대답 없는 종이에만 글을 쓴다면 게으르고 멈춰 서게 될 거예요. 하지만 누군가 바라보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글에 더 정성을 들이고 몇 번이라도 고쳐 써 더 좋은 글을 대접하기 위해 노력할 거예요. 벽을 보고 이야기하고 리액션 없는 소개팅 상대와 하는 대화에서 벗어나면 글감의 고갈 상태도 벗을 수 있습니다. 독자 만난 작가 보다 물 만난 물고기라는 표현이 잘 맞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지금 혼자서만 자신의 글을 읽는 당신,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에서든 독자를 만나보는 건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