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고 써야하는 이유
부모님 세대와 같은 고성장 시대는 끝이 났다. 이젠 메디컬을 나와도 옛날만큼 우월한 지위를 얻지 못한다. 소박한 소망인 가정을 꾸려 가족과 행복한 삶을 만든다는 것은 성공한 소수만이 가능한 불가능한 이상이 되었다.
불과 10년 20년 전 선배들 사이엔 커리어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는 기조가 존재했다. 하지만 요즘 일터에 떠도는 기운은 음울하기만 하다. 일터엔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산송장과 냉소적인 허무주의자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냉소주의자들이 직장에서 뛰쳐나와서 한다는 것은 집에 가서 핸드폰 보다가 잠들기다. 나도 그렇게 살아봤지만 그렇게 살아가며 느끼는 것은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뿐 이었다. 직장의 노예에서 탈출했다는 상쾌함보다 나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꽃조차 못 피우고 쓰레기통에 처박는 기분을 느꼈을 뿐이다. 일에서도 삶에서도 의미와 목적을 잃은 '상실의 시대'이다.
희망조차 없는 미래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
내 인생을 허비했다는 자괴감
이것들을 잊기 위해 우리는 '자극'에 몰두한다. 그런 사람들의 바람을 읽고 기업들은 더 강렬한 쾌락 물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게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자본의 계산 대상이 아니다. 식품 업계가 우리 몸을 가지고 놀고 뇌도 기업의 손아귀에 놀고 있다. 구글, 메타, 틱톡 등의 거대 기술 중심 기업은 하루 34기가바이트에 이르는 정보를 우리에게 무차별적으로 쏟아붓는다.
2시간 영화는 10분 유튜브 영상으로, 유튜브 영상에서 1분짜리 쇼츠로 정보는 파편화되었다. 정보는 날이 갈수록 쉽게 소화되도록 짧아졌고 밀도도 낮아졌다. 그리고 디지털과 함께할수록 우리의 뇌 회로는 디지털 매체와 점점 닮아간다. 사고는 파편화되었고, 단어의 선택 폭은 좁아졌으며, 의미는 개울물처럼 얕아졌다.
무자비한 정보의 홍수 그리고 복합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존재. 그래서 우리들은 정보의 폭풍 속에 나를 포기한 것 같다. 흐름에 휩쓸려 자기 몸 하나 가누지 못하고 거대한 흐름에 종속되어 살아갈 뿐이다. 영화 <메트릭스> 속 기계에 묶인 인간들과 우린 다를바가 없다.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플러그에 꽂혀 거대한 사회의 꼭두각시가 되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사는 것에 정신없고, 정보의 폭풍 속에 정신 하나 지켜 낼 수 없다. 그러는 와중 독서와 글쓰기는 폭풍 속에서 나를 잃지 않게 붙잡아주는 닻이다.
글은 영상처럼 직관적이지도 않고 먹기 좋게 잘게 쪼개져 있지 않다. 오히려 불친절하고 추상적이다. 사이사이 숭숭 빈 골프공으로 채워진 병과 같다. 그 빈 곳을 채우는 건 바로 '나'다. 글자 사이사이, 문장 사이 사이엔 빈 곳이 있고 그 공간에서 나의 목소리가 생겨난다. 존재했는지조차 몰랐던 '나'를 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기발견'은 게임,SNS, 쇼츠 등에 외부에 의존한 쾌락과는 달리 내적으로 무언가 차오르는 만족감이 있다. 마시면 마실수록 바닷물처럼 갈증이 생겨나는 공허한 쾌락과 비교도 되지 않을 즐거움이다.
노예의 사슬을 부수는 망치, 뇌에 박힌 플러그를 뽑는 네오, 중독 물질의 홍수를 막는 격벽, 중독 치료 센터는 바로 글과 글쓰기다. 글 속에서 세계를 평가하기 위한 자기만의 조타실의 탄생이다.
우리는 글과 함께 사회에 종속된 노예에서 벗어나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주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