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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업하는 선생님 Apr 01. 2023

당신의 아이가 과연 '문동은'일까요?

#학교폭력 #더 글로리 #아이들의 이중성 #만우절


선생님~ 지훈이가 제 물건을 도둑질했어요~~


선생님~ 태진이가 제가 물건을 망가뜨렸어요~~



저학년을 맡게 되면 선생님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받는 아이들의 고자질이 제 귓속에 들리는 듯합니다. 4월 1일 만우절을 맞이해 학부모님들께 교실에서만 볼 수 있는 고자질 뒤에 숨겨진 '아이들의 거짓말'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최근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복수극 '더 글로리'가 큰 인기를 맞이했습니다. '더 글로리'는 미혼모의 딸로 태어나 모진 학교 폭력을 당한 '문동은'이 가해자 '박연진'무리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넷플릭스 드라마입니다. '더 글로리'는 2000년대 초 존재했던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의 무능한 대처와 가해자에 대한 허술한 사법 처리 과정에 대해 재조명했습니다. 이 점은 공교육에 종사하는 명의 교사로서 스스로 경각심을 받고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고, 한 가지 주제를 극화(劇化) 하기 위해서는 사건과 인물들을 극단(極端)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 세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극단적인 사건들을 한 사람에게 중첩시켜야 하고, 인물들을 극단적인 선과 악으로 나누어 서사를 진행시켜야 합니다. 한 무리는 불운의 주인공이자 운명의 가혹한 피해자, 또 다른 한 무리는 극악무도한 악마이자 학교 폭력 가해자로.... 마치 기독교에서 천사 '선'으로 묘사하고 그 외의 잘못되고 사특한 것을 '악' '죄'로 규정한 것처럼.



그런데 과연 현실 속 교실도 그러한 모습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도 선과 악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이분법적인 세상일까요?


교실 속에 마주하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진술 속에 숨겨진 회색지대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소설에서 첫 장면을 보고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알랭 드 보통"의 마음 중




학교에서 마주하는 사건들은,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99.99% 사건은 선과 악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습니다. 완전무결한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고, 옹호 못할 가해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파악하려고 하지 않을 뿐입니다. 위에서 말한 알랭 드 보통말한 인용문처럼 아이들의 단편적인 고자질로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교사와 학부모의 오만이고 무지함입니다.




사건은 다중적이고, 여러 관점이 중첩되어 있고, 여러 이해관계가 엮여있습니다. 흑과 백으로 똑떨어져 있지 않고, 흑과 백 그 사이에 회색지대가 존재합니다. 하나의 경계선으로 가해 학생, 피해 학생이 나뉘어 있는 사건은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의 사건은 그 경계선이 흐릿흐릿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 하나만 잘못했다고 할만한 사건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정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건의 일부분만을 가져와
사건을 왜곡, 편집한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친구가 한 욕설을 가져와 자신이 그전에 한 모욕적인 언행을 숨깁니다.

학생 B : 선생님~ A가 저한테 못생겼다고 말했어요~ A를 혼내주세요...

(사실 B가 먼저 A의 외모를 돼지 같다고 놀렸음)

혹은 사건을 과장해 자신을 철저하게 피해자로 만들고, 가해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학생 B : 엄마 헝헝 나 억울해, 학생 A가 나 급식실 가는 길에 날 마구 때렸어 ㅠㅠ

(학생 A와 B 모두를 불러와 사실조사를 해보니 B가 물통으로 A를 건든 게
사건의 발단)

이런듯 사실을 명명백백히 이야기를 파악해 보면 십중팔구는 학교 사건들은 대부분에서 누구 하나 '문동은'이고 또 다른 하나가 '박연진'인 것이 아니고, 모두 조금씩은 '가해자'이고 '피해자'입니다.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들은 교통사고처럼 60대 40, 70대 30이 나오는 쌍방과실 사건입니다.







아이 싸움, 어른 싸움된다



교사들이 난감한 부분은 아이가 이 무의식적인 '기만'행위를 부모님께 하는 순간에 발생합니다. 아이의 누가 나를 괴롭힌다는 발언을 들은 부모님께서는 사건의 단편적인 부분, 아이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조작한 이야기만을 듣고 분기탱천해 교사에게 연락이 옵니다. 혹은 행동 빠른 학부모님들 같은 경우 곧장 경찰서에 연락부터 하는 경우도 생기지요.(두 눈으로 바라본 실제 사례!)


어느 한쪽 부모님의 신고는 곧잘 다른 부모님의 맞고소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왜냐면 먼저 고소를 한 학부모의 학생도 결코 잘한 부분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한 번 감정이 골이 쌓이기 시작한 학부모 님들의 싸움은 학교에까지 번지고, 담임 - 학교 폭력 담당 선생님 - 학교장에게 영향을 줍니다. 더욱 큰 문제는 같은 반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울리는 학부모의 전화 때문에 자신의 학습권을 침해받는 경우까지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교사와 학교장의 눈물 나는 중재로 쌍방고소는 취하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떨 땐 학부모님들 사이에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입니다.  경우엔 웃프지만 학부모님들 사이에선 법적 분쟁이 한창인데 교실 안에서는 아이들이 하하호호 즐겁게 놀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 아이가 과연 '문동은'이기만 할까요?



위에서 말한 '기만'행위를 아이들이 의식적으로 본성이 악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아이들은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는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유아동기 아이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 중심성'입니다. 또, 사건 파악하는 인지 능력도 부족하고, 기억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거짓말쟁이이고, 이기적이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극소수의 아이들 빼고 대부분 아이들은 진짜로 억울한 마음에 학부모님과 선생님께 말하는 경우입니다.



교사로서 아이들이 그런 모습이 싫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덕에 아이들은 한 번 투닥거리더라도 밥 한 번 먹고 나면 다시 하하호호 운동장에서 같이 뛰놀아다니니까요. 다만, 저희의 소망은 저희들이 가정에서 아이들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는 것처럼, 학부모님들도 교실에서 아이들이 어떤 모습인지 완벽하게 모른다는 걸 아시길 바랍니다. 부모님이 아시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아이의 입에 나온 슬프지만 신뢰할 수 없는 진술, 20분 남짓한 학교 상담에서 들은 교사의 의견, 공개수업에서 본 40분 동안의 짧은 모습>으로만 만들어졌습니다.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집안에서 착하고 미숙하고 보호받을 존재, '문동은'이 교실에서 누군가에겐 폭군, 같이 놀기 싫은 친구, '박연진' 일수도 있습니다.




단편적으로 파악하기엔 아이들은 너무나도 이중적이고 다면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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