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업하는 선생님 Jun 07. 2023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줄 수 있는 관계



나에게 유별난 취미가 하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참가해 온 독서 모임이다. 


이곳에선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 같은 면모를 에둘러 표현할 필요도 없으며, 


학교에서의 가식적 얼굴을 내려놓고 내가 보이고 싶은 얼굴만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 한 권 달랑 들고 갈 수 있다. 







원래부터 읽고 쓰기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 같은 면모는 직장 동료와 친구들에게 꽤나 설명하기 곤혹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교장 교감 선생님껜 뭐라 말할지 곤혹스러운 점이 많다. 고향을 떠나 먼 타지 부산에서 생활을 하고 있고,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저 연차에, 남교사라는 갖가지 칭호는 교장과 교감 입장에선 관심의 대상이 되나 보다. 



학교 끝나고 뭐 하세요? 


대학생 시절 듣거나, 또래 동료 여교사에게 들었다면 설레었을 질문도 아버지 어머니 뻘 교장 교감 선생님께 들으면 무어라 말할지 참으로 난감하다. "독서모임 다닙니다!", "글 쓰고 있습니다!" 답하자니 이거야 원... 꼬리에 꼬리를 물 질문이 두렵고, 어르신들과 남다른 취향이다 보니 충격받을 표정을 생각하자니 머리가 절로 지끈지끈해진다.



게다가 다 큰 성인 남성 입장에선 보여주시는 관심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갖 전역한 입장에선 관심이라는 게 결코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만은 않는다. 군대에선 관심이란 자살우려자 등 복무부적응자 인원에 대한 지휘자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교장 교감선생님께서 내미는 딱딱한 관계를 녹이기 위한 우호의 손길임을 머릿속으로 알지만 관심보다 더한 도움과 배려의 손길이 올까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항상 "운동 다닙니다.", "아는 선생님들이 있어 같이 놉니다." 등 에둘러 말을 돌려 평범한 대답을 내던져두고 황급히 자리를 떠날 뿐이다.






그러나 독서 모임이라는 곳은 <유능한 직원>, <착실한 교사> 사회적 가면을 쓸 필요가 없기에 여간 반가운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직장과 학교라는 곳은 초라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어 매일 아침 가면을 바르게 고쳐 쓰고 가야 하는 공간이지만 모임이라는 곳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집중하는 독서 모임은 부산에서도 꽤나 규모가 큰 독서 모임이다 보니 매번 갈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진다.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만남이기에 이 하루가 지나면 날 잊을 사람이기에 오히려 이들과의 관계가 오히려 더 큰 위안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직장에서 처럼 특별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에 한껏 풀어진 채로 이야기할 수 있다. 사소한 말실수로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신경을 곤두서 평판 관리할 필요도 없다. 



이곳에선 보여줘야 할 모습이 아닌
그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


이곳에선 가면을 벗어 형편없는 내 얼굴을 들이밀어도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간다. 내가 꽤나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돈, 지위 내 위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장식품 없이도 나는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곳에선 이상하게도 무관심도 관심도 좋게 다가온다.


이곳에선 모두가 읽고 쓰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또, 각양각색의 세계를 가진 사람들이 많기에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타지에서 생활하고, 교사라는 칭호라는 특별한 다름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내가 원할 땐 대중 속으로 숨을 수 있어 오히려 이런 무관심도 좋았다. 


반대로 나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궁금증을 가져주는 것도 좋다. 나에겐 너무나도 시시해 별 것 없어 보이는 내 삶을 모임원들이 주는 관심은 특별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독서 모임이 좋다. 


누가보기엔 남는 것 하나 없는 관계에 이리도 시간을 쓰냐 핀잔을 남길 수도 있지만, 그런데 어쩌랴 나는 이 무용한 것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데. 


마치 친구들과 소파 위에서 한껏 늘어져 하하 호호 떠들며 되돌아오는 기분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데


남는 건 하나 없는 수다였지만 즐거운 기분 하나만큼은 남기고 


내일을 위한 위안 하난 간직하고 나올 수 있는데 


어찌 싫어할 수 있을까 보다.





I형 인간이 프리랜서로 커리어를 전환한 후 '느슨한 인간관계'를 통해 얻게 된 사회생활 노하우와 팁을 담은 에세이 <I형 인간의 사회생활>을 읽고 적는 글입니다. 


MBTI에서 70% 이상 E가 나오는 저이지만 I인 황유미 작가의 이야기들은 많은 공감을 주었습니다. 


아래 한 문장으로 위에 처럼 긴 글을 줄줄 내뱉게 만드는 걸 보니 성향을 떠나 같은 글을 사랑하는 사람, 사회인이기에 많은 공감과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낸 듯싶습니다. ㅎㅎ


종종 형편없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자괴감을 느끼다가도
더 나은 모습을 꺼내 보일 수 있는 모임에서 안도했다


#밀리의서재 #밀리에디터클럽 #I형인간

                    

작가의 이전글 카프카에게서 배우는 나를 찾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