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두려움에게
캐나다에 대학원을 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2020년 말, 회사를 그만두고였다. 내가 공부를 하고 싶은 분야는 특수 교육, 응용행동분석학(ABA)이었는데, 비전공자에 무경력자이라 지원조차하지 못했었다.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올해는 이렇게 지원하고 나니 기분이 참. 이상하다. 하고 싶다고 하더니 기어코 지원했네. 후련하다.
지난 10월부터 준비 서류들(CV, Letter of Intent)을 아주 천천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당 분야에서 추천서 3개를 받아야 했는데, 커리어를 전향한 나로서는 이것부터가 정말 난관이었다. 3개월 정도 준비를 한 셈인데,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마치 영겁의 시간을 보낸 것 같은 기분이다. 어쨌든 지원서는 이제 내 손을 떠났고 결정을 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가늠조차 안되지만, 지원할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한다.
캐나다로 호기롭게 떠나오긴 했지만, 서른이 넘어서 무언가를 다시 하나하나 쌓아간다는 것에 조바심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이러다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럴 때면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 매직'에서 읽었던 문구들을 떠올려 본다.
친애하는 두려움에게
창조성과 나는 함께 여행길을 떠나려 해. 난 네가 우리들과 함께 갈 거라 짐작하는데, 왜냐하면 너는 언제나 그렇게 하니까. 넌 내 삶에서 네가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고 믿고 있으며, 그 일을 아주 진지하게 수행한다는 걸 난 알고 있어.
보아하니 네가 하는 일이란 내가 뭔가 흥미로운 일을 해 보려 할 때마다 그에 앞서 아주 큰 공포를 느끼게끔 하는 일인 것 같아. 그리고 내가 한마디 하자면, 너는 정말 그 일을 탁월하게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부디 계속해서 네 일을 하렴, 네가 꼭 그래야 하겠다면 말이야. 하지만 이 여행길에서 나 역시 내 할 일을 할 거야. 바로 열심히 작업하고 집중하는 일이지. 그리고 창조성도 자기 일을 하고 있을 거야. 나를 계속 자극하고 영감을 주는 일 말이지.
이 여행길에 오르는 동안 우리 모두가 함께 타고 갈 차에는 공간이 아주 많으니까 너도 마음껏 편안히 지내렴. 하지만 이것만은 꼭 기억해 둬. 길을 가는 동안 오직 창조성과 나만이 이 여행길에서 필요한 결정을 내릴 거야. 나는 네가 우리 단체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하고 또 존중하니까 결코 우리 활동에서 너를 소외 시키지는 않을게.
그래도 여전히 네가 하는 제안들을 우리가 따르는 일은 없을 거야. 너는 여기서 우리와 함께 앉을 자리가 허락되고, 우리가 하는 일에 네 관점에서 의견을 보이는 것도 허락되지만 네가 결정권을 갖는 일은 없어. 너는 우리 여행길의 지도를 만져서도 안되고, 우회로로 가자고 주장할 수도 없고 차내 온도를 조절할 수도 없어. 심지어 너는 차 안에 흐르는 배경 음악도 네 마음대로 건드리면 안 된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참으로 오래된 친구야. 네가 우리 차의 운전대를 잡게 되는 건 절대 금지야.
엘리자베스 길버트 - '빅 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