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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 Apr 18. 2023

자폐, Autism은 누군가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다. 한 개인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성이고, 아시안이며, 이성애자이고, 비장애인이다. 개인이 갖고 있는 정체성의 구성에 따라, 경험하는 것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같은 여성 아시안이더라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마찬가지로 동일한 장애인이더라도 백인 장애인과 흑인 장애인이 겪게 되는 상황 또한 달라진다. 


나는 자신의 권리와 존재를 사랑하며, 나답게 살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항상 마음이 동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는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강렬히 노력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끌리지 않았나 싶다. 다양성 내에서도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은 언제나 존재한다. 주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지가 적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캐나다에 오기 전에 나는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크게 갖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인이며 아시아인인 내가 주류였으므로,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캐나다에 와서 다른 인종과 구분 지어지고, 미묘한 차별을 겪기도 하면서, 비로소 아시아인으로서의 나를 자각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분야인 장애학 (Applied disability studies)에서는 자폐를 인종이나 성 정체성처럼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자폐를 암처럼 치료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라, 개인의 특성으로 인정하고 이들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개선하며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폐는 피부색이나 성적 지향성처럼 개인과 분리될 수 없는 타고난 특성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고유한 방식,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폐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의 방향도 달라지게 된다. 자폐를 '완치'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자폐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한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이들이 삶의 통제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실제 서구 사회의 자폐인 커뮤니티에서는 정체성을 강조한 표현들이 선호되고 있다.


'정체성'은 내가 누구인지를 가리킨다. 따라서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그 개인 자체가 부정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퀴어, 여성, 흑인 인권 운동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결을 같이한다. 나의 정체성, 즉 나의 존재를 비극이나 수치로 여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음을 떳떳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인상 깊게 보았던 15분짜리 단편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 영화의 세팅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는 가정이다. 그리고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지 않은 돌연변이 아이가 태어나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정의하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관점을 비틈으로서, 비장애인으로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구조적인 불평등과 억압적인 관계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화 다운사이즈 업
영화 Downsid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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