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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숲 Aug 23. 2016

머리를 쓰다듬어 주세요, 엄마.

딸의 러브스토리


"냄새가 예쁘네"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문득 장난스럽게 정수리에 코를 박고 킁킁대며 하는 말이다. 맡아줄 만하네.

냄새가 예쁘다니, 참. 묘하게 시적인 구석이 있는 아줌마다.



나른한 오후, 나는 휴가 겸 집안 일로 호출받은 겸 부산에 내려와 늘어지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할머니 생신이라고는 하지만 초여름에 잠깐 얼굴 비추고 다시 올라가버린 큰딸이 보고 싶어서, 당신은 굳이 나를 부르셨을 것이다. 엄마.

당신 어머니의 생신을 빌미로 거나하게 외식을 하고 돌아온 다음날. 나는 엄마를 베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팔걸이 쪽으로 다리를 올린 채 엄마가 씻어온 체리를 먹으며 글을 쓰고 있고, 엄마는 그런 나를 쓰다듬고 있고, 선풍기는 약풍으로 돌아가고 매미는 운다. 이따금씩 엄마 손길이 머리카락과 두피에 닿는다. 넌 머릿결이 참 건강한 편이야. 늘 같은 말을 하면서 슬슬 쓸어 넘기는 손길이 싫지 않다. 한여름인데도 창문만 열어 놓으면 딱히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선선하고 습하지 않은 우리 집이, 누워서 바라보는 천장의 무늬가 새삼스럽게 만족스럽다.


저릅저릅 어느새 감기는 내 눈 너머로 엄마는 동생의 입시를 걱정한다. 쟤가 학원에를 보내도 성적이 오르지도 않고… 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단다. 오랜만에 보는 내 눈에도 동생의 모습은 딱히 모범생은 아니어 보였기 때문에, 조용히 긍정해 드린다. 네가 어떻게 조언을 해 주면 안 되니? 슬슬 쓸어 넘기는 손에 걱정이 묻어 나오는 것 같다. 본인도 교사이시면서, 참. 나름대로 입시에서는 성공한 큰딸이지만 동생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는 거 알잖아. 결국 자기가 해야지 뭐. 공부를 안 해서 속 썩인 전적은 딱히 없는 말 잘 듣는 딸로 살았기 때문인지 엄마는 이런 고민이 처음인 것 같다. 저게 대한민국 평균이에요, 엄마. 속으로 조금 키득거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나를 어루만지는 엄마의 손길에 장난은 치지 않기로 한다.



나는 지금은 조금 사랑스러운 딸인 것 같다. 맏이답지 않게 막내보다 애교도 많은 편이고, 이것저것 잘 챙겨주고 신경 써주는 편이지. 나의 학창 시절은 적어도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는 참 따뜻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애교쟁이에다 눈치도 빠르고 이것저것 챙기는 대견한 큰딸이었던 건 아니다.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큰 아이였기 때문에 사랑이 흐르는 곳에 얌전히 머물러 있었긴 했지만, 태생적으로 눈치 빠른 동생과는 다른 조금은 미련스러운 구석이 있는 꼬맹이였다. 그래서 어릴 때는 그저 혼날 때도 입 꾹 다물고 나에게 쏟아지는 야단을 다 받아내고 나서야 한바탕 혼남이 끝났었다. 미련하게 죄송하다, 한 번만 봐 달라는 말을 못 해서 한소리 듣고 끝날 걸 결국 집에 있는 30cm 자를 하나 부러트리게 만드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랑이 받고 싶은 소심하고 눈치 없는 아이였다.


서툴었던 유년기를 지나, 엄마 아빠가 귀찮기만 했던 사춘기도 겨우겨우 넘기고 진지하게 입시 공부를 시작하던 무렵이 17살, 4월부터였으니까 그전까지는 착하고 우직한 딸이기는 했으나 사랑스러운 딸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전까지는 동생이 나보다는 살가운 구석이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나도 딱히 부모님에게 큰 애착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엄마는, 나에게 조금은 먼 사람이었다. 늘 나를 혼내던 건 엄마였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나지 않아도, 엄마라는 사람이 참 특별하게 다가오기 시작한 시점이 있다. 아마도 내가 추측하기로는 막 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중간고사를 치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그때, 급격히 내적으로 성장통을 겪던 시기에, 엄마는 내 통학을 도와주게 되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던 내가 학교 애들이 도가 지나치게 시끄러워서 차에서 공부를 도저히 못하겠다는 이유로 굳이 엄마에게 운전대를 잡게 만든 것이다. 심지어 그때의 나는 밖에서부터의 상처와 외로움이 찌들 대로 찌들어있어서, 같은 학교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열 받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별 말없이 묵묵하던 큰딸은 방과 후 아간 자율학습을 하기 전에 학교를 빠져나와 학원으로 가는 엄마 차에 타면서, 그 날의 피곤했던 일들과 화났던 일들을 쏟아냈다.


 "걔네가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따위의 분노가 섞인 폭력적인 말들을, 아침 7시 반부터 일과가 끝나는 5시 반까지 꾹 눌러 담았다가 겨우 토해내는 것이다. 일종의 뒷담화. 엄마를 상대로 그렇게 내 마음을 노골적으로 뱉어내고 때로는 분에 못 이겨 울고, 공부가 잘 되는 날이면 때때로 농담도 했다. 성적이 나온 날은 괜히 으쓱해서 "나밖에 없지~?"따위의 '답정너'스러운 질문도 은근슬쩍 찔러보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늘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대로 해 줬던 것 같다. 주로 내게 필요한 건 '들어주는 것' 뿐이었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정말로.


그렇게 내가 내 마음을 엄마라는 존재 앞에서 터트리기를 삼 년, 졸업 때까지 엄마는 묵묵히 나의 비밀 노트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큰딸은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의지하게 되었다. 내 모든 마음을 알게 된 엄마는, 눈빛만 봐도 내가 피곤한지 기쁜지 슬픈지 화가 났는지 짐작한다. 힘든 시간 속에서 유일한 배출구가 된 엄마는 새벽이 다 돼서 공부를 마친 딸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잠에 들지 않고 기다렸다가, 따뜻한 캐모마일 차를 같이 한잔 하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당신의 이야기도 나의 이야기도 그 차 한잔에 녹아들었고, 우리는 다시 내일을 위해 그것을 목으로 뜨겁게 울컥울컥 넘기곤 자러 갔다.
모녀는 그렇게 많이도 가까워졌다. 사춘기일 때는 생전 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던 딸이 몇 달 새 엄마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을 보며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그때부터 나는 엄마와 딸이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흔한 문장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삼 년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학교에서 받은 상처와 그것으로 더 바짝 독기가 올라 명문대를 가려고 했던 큰딸은 결국 원하는 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딸은 그제야 밝아진다. 결국 해냈다는 안도감과 노력에 대한 긍정으로 나는… 괜찮은 아이가 되었다. 하는 말에서 부정적인 단어가 많이 줄고, 웃음이 늘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했다. 지독히도 내향적이고 마치 고슴도치같이 가시를 바짝 세운 불안했던 아이가 말이다.

자연스럽게, 애교가 늘었다. 내 가장 편하고 의지하던 사람에게  그제야 어릴 때의 그것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것을 아무 말없이 지켜봐 준 엄마는 안타까움에 얼마나 마음이 지쳤었을지, 그런 생각을 했다. 당신의 첫사랑이라고 줄곧 불러주던 큰딸이 결국 목표를 이루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벅찼겠는지, 당신의 딸이 그 모든 것을 당신과 나누고 견뎌온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게 생각했을지. 점차 많이 밝아져 주변 사람들에게 애정을 보이고 먼저 다가가는 여유로워진 딸이 되는 것이 나로서도 많이 으쓱했다고 기억한다. 

그 과정에서 그다지 가깝다고 말하기 민망했던 우리 사이는 어느새 끈끈해져 있었다. 가끔 둘이서만 같이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하거나 같이 소파에서 도란도란 하고, 내 통학을 도왔던 그 차로 같이 드라이브도 하고.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까지 참 오랜만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것 같다.


… 겨우 친해졌는데, 큰딸은 서울로 간다. 엄마는 허전하다. 딸도 마찬가지다. 기숙사 천장이 밉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엄마 생각이 난다. 딸이 잠에 들기 전 이마에 양손을 포개고 기도를 해 주던, 통통한 엄마 손이 그립다. 한동안 많이 그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났다. 그녀는 이제 곧 고3이 되는 작은 딸을 걱정한다. 엄마는 좋은 수험생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해 주시겠지.
멀리 있는 자식이 그렇게도 애달픈지 하루에도 꼭 한 번은 밥은 먹었는지, 더운데 더위는 먹지 않는지, 공부는 잘 되는지 궁금해하는 엄마가 새삼 너무나 고맙다. 자주도 안 찾는 딸이 야속하진 않으실까. 바빠서, 지쳐서 연락을 무심하게 받을 때가 종종 있는 딸은 뜨끔하다. 


늘 딸을 보고 싶어 하는 여전한 엄마는 해가 갈수록 나보다 작아진다. 운동화를 신고도 엄마보다 껑충 크던 딸은 이제 구두를 신고 부산역에 내린다. 얼굴도 빨갛고 뽀얗게 뭘 칠했는지 영 낯설다. 여느 때처럼 자가용으로 마중 나온 부모님 쪽으로 총총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도도한 척하던 가면이 엄마를 보고 웃으면서 와장창 깨져 버린다.
집으로 가는 차는 아빠가 운전대를 잡았다. 엄마는 신나서 이것저것 물어본다. 요즘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니, 덥던데. 차 뒷좌석에 캐리어와 함께 구겨져 앉아있는 딸은 엄마의 걱정 섞인 잔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당신이 방금 조금 더 작아졌다, 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플랫 슈즈를 신어야겠다, 고 생각한다. 아직은 나에게 너무 큰 당신이 작아졌다고 느끼기 싫다. 역시, 여전히 엄마에게 보살핌 받고 싶은 열일곱의 큰딸이고 싶은가 보다. 화장한 딸은 괜히 무심하게 밥 잘 챙겨 먹고 있다고 대답한다.



나는 엄마 글을 쓰고 있고,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그런 나를 쓰다듬고 있고, 선풍기는 약풍으로 돌아가고 매미는 운다. 이따금씩 엄마 손길이 머리카락과 두피에 닿는다.


다시 말없이 머리를 쓸어 넘겨주는 

엄마의 작고 통통한 손마디가 내 두피에 스칠 때마다, 

괜히 콧등이 알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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