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의 황금기

2026년 4월 8일 (매우 맑음)

by Stella Lee

아이를 등교시키고, 꽤 먼 시내의 병원에 다녀왔다.


요 며칠 몸 어딘가가 불편했는데, 그냥 넘기기가 영 찝찝했다. 암 환자가 되고 나니 별게 다 겁이 난다.


내가 사는 곳은 시골 읍내여서 전문의에게 진료받으려면 장거리 이동은 필수다.


환부를 찬찬히 살펴본 의사 선생님께서는 요 며칠 내가 아팠던 것은 암 재발 방지를 위해 매일 먹는 약의 부작용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즉, 별 일은 아니었다. 힘들지만 감사하며 견딜 수밖에.


그리고...갈 길이 멀었다.


의료 및 편의 시설이 빽빽이 들어차 있는 크고 화려한 도시 빌딩을 나와, 유달리 배차 간격이 길고 다소 운전이 거친 작은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던 내 시야에, 대로변에 선 비딱한 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다.


가로수.


타고난 속성보다는 인간이 정한 용도에 따라 그 자리에 '배치된' 기구한 팔자의 생명체. 무자비한 전정 작업 후의 딱한 모습이, 부모의 뜻에 순종해 정해진 트랙 위를 걸으며 수시로 가지 치기를 당해온 나와 참 닮았다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종종 했었다.


밀로의 비너스처럼 팔을 잃은 가로수 중 많은 수는 시름시름 앓다가 썩어서 뽑혀 나가곤 하는데, 오늘 내 시선을 사로잡은 나무는 용케도 잔가지를 굵게 내뻗으며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은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봄에 초록빛 새싹 하나 틔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굳건히 살아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 가로수의 이야기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다. 여태 실현하지 못한 것은 실력이 모자란 탓도 있지만, 짜놓은 몇 가지 결말 중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아직도 망설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결말이 꼭 나의 결말이 될 것 같아서 더 신중해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리도 갈팡질팡, 뭉게뭉게 단계에 머물러 있는 가로수의 서사가 과연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올 수 있을지, 지금은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적어도 오늘의 그림에는, 가로수에게도 황금기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싶었다.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고

잘리지 않고

꺾이지 않고

아프지 않고

죽지 않기를.


오래도록 무사히, 생긴 대로 마음껏 가지를 뻗고 싹을 틔우기를. 그리고 많은 씨를 퍼뜨리기를.


나 또한 그 금빛 찬란한 일대기를 기쁜 마음으로 거침없이 그려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저녁에 아이의 학원 레벨테스트가 예정되어 있어, 그림을 급하게 완성해야 했다. 가로수야 미안해.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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