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9일 (춥고 비)
빗발이 셌다.
카디건을 걸친 몸을 움츠리며 베란다 유리창 너머 단지 내를 희게 물들인 벚나무를 본다. 여린 꽃잎들이 그래도 잘 버텨주고 있다. 며칠은 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걱정을 접고, 지난 일요일에 찍어 둔 벚꽃 사진을 참고해 드로잉을 했다.
우연히도 작년 4월 9일에 나는 똑같이 벚꽃을 그렸더랬다. 아니, 똑같지는 않았다. 전혀 다른 밤 벚꽃이었으니까. 무언가가 끝났던 그날 밤, 벚꽃의 색채가 폭우처럼 쏟아져 내려와 머리와 가슴을 가득 채웠고, 나는 그 먹먹함을 견딜 수 없어 종이 위에 그대로 토해냈다. 차마 언어로 치환할 수 없었던 복잡하고도 축축하고도 어두운 감정의 얼룩 사이로 꽃의 자태가 팝콘처럼 터져 나왔다. 불현듯, 무라카미 하루키가 카탈루냐에서 했던 연설의 일부가 떠올랐던 것을 기억한다.
“일본어에는 무상(無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상태=항상성을 유지하는 상태는 단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 “모든 것은 그저 스쳐 지나가 사라진다.”라는 시점은 말하자면 체념의 세계관입니다. (…) 벚꽃도 반딧불이도 단풍도, 극히 짧은 시간 사이에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불시에 닥치는 자연재해의 위험, 갑작스러운 죽음의 가능성에 항시 노출되어 있는 일본인 고유의 정서로 그가 청중에게 소개한 ‘무상’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불교용어이다. ‘제행무상’. 세상의 모든 것은 생멸하고 바뀌어간다.
지난 1년 사이에 내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가족력도 없는 암에 걸릴 정도로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이겨내고 있다. 그리고 2026년 4월 9일, 낮에 핀 벚꽃을 그렸다.
평범한 나날도 버거울 만큼 약체가 되었기에, 소소한 흔들림조차도 두렵다. 그럼에도 모든 게 달라질 1초 후, 1분 후, 1일 후를 받아들여야 한다. 머리카락과 손톱은 조금씩 자랄 것이고, 주름은 깊어질 것이고, 시력도 다소 나빠질 것이다.
벚꽃도 질 것이다.
그저, 기왕 겪을 변화의 방향이 좋은 쪽이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