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0일 (흐린 뒤 맑음)
아침부터 공기가 찼다. 오후 2시가 넘어가며 은총과 같은 햇살이 비쳤지만, 금세 날이 기울고 말았다. 4월 초에 책상 밑의 난로를 켜고 발을 데우는 사치를 누리며 그림을 그렸다. 온기가 핏줄을 타고 전신에 퍼진다. 마치 침대 안에 있는 듯한 포근함에, 프루스트도 이런 기분으로 소설을 썼을까,라는 주제넘은 상상을 한다.
오늘의 소재는 동네 묘목장에서 목격한 어린 서양측백나무와 민들레다.
묘목은 다른 묘목에 비해 크기가 확연히 작았다. 제초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묘목장과 이해관계가 없는 과객인 내 눈에 이 들꽃은 참 예뻤다. 뽑아 버리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쨍하고 생생했다. 흙바닥이라는 소우주의 태양이요, ‘역할’이나 ‘존재 의의’라는 사슬에 절대로 얽매이지 않을 천진난만한 영혼이었다.
불시에 뜯겨 나갈 순간까지.
살면서 “무엇이 어떻든, 너는 너야.”라는 위로의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해야 하는 것, 하면 안 되는 것을 정신없이 배우고,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혼나고 미움받고 손해 볼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었던 나날. 기준을 충족하면 그다음 과제가 등장하고, 이를 클리어하면, 또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야 하는 계단식 루트를 그대로 따라 올라갔다. 껍데기만 올라갔다. 알맹이는 빈약해져 갔다. 사람들이 가리키는 ‘저 위’가 정말 ‘위’일까? “잘했다.” “부럽다.”라는 덕담을 아무리 들어도 불편했다. 민들레가 아무런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냥 민들레일 때, 나는 나일 수 없었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고 다 놓았다.
빠져나왔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와 논밭이 펼쳐진 시골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뿌리내리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매일 연필을 들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나는 아직도 땅속에 머물러 있다.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하고, 때로는 추위에 숨이 넘어갈 뻔하면서도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주문처럼 한 문장을 되뇐다.
Festina Lente.
Festina Lente.
나를 꽃피울 봄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