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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ul 04. 2020

그 언니

회자정리#1

 그 언니가 언제부터 그 집에 살고 있었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 언니를 정희라고 불렀다. 성까지는 알지 못했고 그냥 그렇게 불렀다. 

 요즘엔 가사도우미라고 순화해서 부르지만 예전엔 '식모'라고 했고, 조금 점잖게 부르면 가정부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 언니는 우리 옆집 식모였다. 지금의 가사도우미는 일주일에 몇 번, 시간을 정해서 오지만 그 시절 가정부는 주인집에 얹혀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상경했으니 마땅히 거할 숙소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입주해 들어간 주인집에서 허름하고 조그만 방이 있다면 그게 그녀의 방이 되고, 없으면 아이들이 쓰는 방에 끼어 자면 그만이었다. 또 그런 만큼 아이들도 그것에 대해 특별히 별 거부감이 없었다. 우리 집도 식모를 두고 살았는데 적어도 우리 집은 그랬다.

 그렇다면 그 언니는 그 집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언니가 따로 쓰는 방이 있었을까? 아마도 그런지도 모른다. 그 집엔 남자아이만 둘이 있었으니까. 아무리 주인집 아이들 방에 끼어 잘 수도 있다지만 남자아이만 둘인 방에 들어가 자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그 집 큰 아들이 중학생인가 고등학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과분지 이혼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혼자 살고 있는 옆집 아줌마의 방 한 구석에 겨우 이부자리 한 채를 필 정도의 공간이 그 언니한테 허락된 공간의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그녀들의 삶을 오죽했으면 '식모살이'라고 했을까. 

 엄마는 어디서 들었는지 그 언니가 고아라고 했다. 하지만 일을 잘해서 엄마는 그 언니를 좋아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탐을 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에 일하러 들어온 식모들은 하나 같이 일을 못하던가, 만 하루가 못 되어 우리 집 물건을 훔쳐 달아나거나, 일을 곧 잘하면 금방 어디론가 가버리곤 했다. 엄마의 입장에선 인복 그중에서도 식모복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듣거나 말거나 엄마는 가끔씩 왜 저런 얘가 우리 집에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다며 쓴 입맛을 다시곤 했다.

 엄마는 살림을 잘하기로 유명했는데 그 말은 즉 식모 보는 눈이 높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엄마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 언니는 정말 일을 잘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엄마의 기준은 오직 하나다. 그저 살림을 깨끗하게만 하면 최고의 식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언니는 성격도 좋았다. 밝고 서글서글한 게 그늘지지 않았다.

 얼핏 듣기론 옆집 아줌마가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 준다는 조건으로 어느 고아원(보육원)에서 데려왔다고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아줌마는 언니를 5학년에 다닐 수 있게 해 주었는데 기초가 너무 없어 학교를 자퇴했다고 들었다. 고아가 아니고 정상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면 벌써 중학교에 다닐 나인데 언니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가 없어 학업을 포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언니는 친화력이 좋아 그 누구에게든 환영을 받았다. 오죽했으면 나의 언니나 오빠도 그 언니를 무슨 친척 누구를 대하듯 했으니까. 중학교와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벌써 자의식이 생겨서 그 언니를 식모 이상도 이하도 아니 게 볼 텐데 확실히 대하는 게 달랐다. 그건 또 어쩌면 엄마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엄마가 좋은 사람은 나에게도 좋은 사람일 거란 생각이 은연중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좀 달랐다. 어렸을 때부터 예쁘단 소리를 듣고 자라서일까. 언니는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처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심한 건 아니지만 가까이 가면 행주 냄새가 났다.


 그러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한 달만에 퇴원을 했지만 당장 학교에 갈 수 없어 휴학을 했다. 그게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여름방학을 하려면 아직 2주 정도가 남았는데 형제들은 다 학교에 갈 때 나는 갈 수가 없으니 심심했다. 그런 내가 언니에겐 딱하게 보였는지 아침에 할 일을 마치고 낮에 잠깐 짬이 나면 우리 집에 와서 나와 놀아주고 가곤 했다. 그나마 우리 형제들이 방학을 하니 언니는 발걸음이 뜸해졌는데 아무래도 형제들이 있으니 자신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아니면 자신이 고아라는 걸 생각할 때 우리 집이 다복해 보이는 게 오히려 마음의 그늘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언니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다 그해 가을 무렵 우리 집이 이사를 했다. 엄마는 그때 옆집 아줌마에게 집 정리를 위해 며칠 언니를 빌려 이사하는 길에 동행했다. 근사한 집으로 이사하는 것도 좋았지만 언니가 동행을 하니 더 좋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엄마와 옆집 아줌마가 이물 없이 지내는 사이라고 해도 (공교롭게도 내 동생과 아줌마의 아들이 친구였다) 식모까지 빌려주고 빌려고 해도 좋은 건지 의문스럽다. 아무리 그 언니가 좋기로서니 엄마 체면에 빌려 달라는 말이 쉽게 나올 리 없고, 아줌마 역시 일을 하고 있어서 선뜻 빌려 준다는 말을 못 할 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하기론 그 언니가 우리 집에 머문 기간은 못해도 열흘쯤 되었던 것 같다. 아니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어린아이가 시간에 대해 느끼는 것이 어른과 같지 않을 수 있어 이건 정확하지 않다.) 아무튼 난 이사를 가서도 당장 학교를 다닐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언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그저 좋았다. 

 나는 매일 밤 언니와 같이 자면서 이야기 한 편씩을 듣곤 했다. 그것도 지금 생각하면 좀 의문스럽긴 하다. 언니는 학교도 안 다니고 겨우 한글을 뗀 정도일 텐데 어떻게 그렇게 나에게 매일 들려줄 수 있었을까. 언니의 상상력과 언변이 놀랍기도 했다. 물론 매일 들려주진 않았다. 어느 날은 피곤하니 내일 들려주겠다고 하곤 나를 강제로 자게 했다. 그래도 집에 머무는 동안 몇 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다 집 정리를 마치고 언니가 돌아가야 할 날이 돌아왔다. 나는 언니와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난 언니가 이다음에 놀러 오겠다는 말에 큰 한숨으로 눈물을 참고 언니를 보내 주었다. 그때 난 정말 언니를 곧 다시 만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엄마가 갑자기 전화로 누구와 험하게 싸우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그렇게 전화로 누구와 싸우는 일은 흔한 일은 아니었는데 알고 봤더니 옆집 아줌마와 싸웠던 것이다. 혐의는 그 아줌마가 아버지에게 속된 말고 꼬리를 친 게 엄마를 자극했다. 더 정확히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옆집 아줌마에 대해 먼저 얘기를 했다. 좀 이상한 여자 같다고. 그러니까 엄마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한 것이란 얘기다. 또 그만큼 옆집 아줌마가 아버지에게 추근댔다는 말이다. 여자의 직감이 무섭다던데 그렇다면 엄마도 그전부터 뭔가의 낌새를 알아채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그때까지 모른 척했을까. 아직 뚜렷한 혐의는 없고, 그렇게 그 언니를 아쉬울 때 써먹으려니 그랬던 걸까? 반대로 옆집 아줌마가 그런 흑심이 있었으니 엄마에게 점수를 따야 한다고 생각해 언니를 먼저 빌려준다고 자청했던 걸까.

 그런 일이 있자 문득, 처음 엄마와 옆집 아줌마가 가까워지려고 할 때 우리 집에 당시 막 출시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병 콜라 12개들이 한 궤짝을 가게 아저씨를 시켜 가져 온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 콜라의 가격이 싸지도 않았지만 엄마는 탄산음료가 몸에 안 좋고 못 먹게 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게 콜라가 생겼으니 오죽 좋았을까. 하지만 천국의 맛이라던 콜라를 마시면서 그 어린 마음에도 아줌마가 좀 의아스럽다는 생각을 0.2초쯤 한 것 같긴 하다. 그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의심해 볼 걸 그랬나 보다. 대신 난 매일 그 아줌마가 선물한 병 콜라를 뽑아 먹으면서 아줌마는 우리 엄마보다 세련되고 융통성이 있어 좋다고 생각했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깨끗하고 몸에 좋은 것만 먹는단 말인가. 몸에 좋은 건 하나 같이 맛이 없는데 말이다. 엄마가 학교를 안 다녀서 그렇지 아이들은 누가 걱정을 하든 말든 불량식품을 매일 사 먹는다. 그런데 비하면 콜라는 불량식품 축에도 못 든다. 그런 점에서 난 엄마가 그 아줌마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엄마는 하도 먹는 것을 가지고 닦달을 하니 먹는 게 살로도 안 갈 정도였다.     

 어쨌든 그런 일이 생겼으니 그 언니와 내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꿈은 더 이상 꾸지 않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다음에 놀러 온다, 언제 한 번 보자는 말이 약속의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때 언니가 했던 말도 허울뿐이었을까. 

 아무튼 나와 그 언니는 그렇게 회자정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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