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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ul 06. 2020

묘한 칭찬

대화를 수집합니다 #1

원래 엄마와 딸은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죽했으면 전생에 원수가 부모 자식으로 만난다고 했겠는가.


지난 주말 첫째와 둘째 조카가 왔다. 첫째는 남자아이(설마? 그만도 30대 초반의 직딩이다)라 좀 뚱한 편이고, 그 보다 한 살 아래인 여자 조카는 상냥하고 만만해서 좋다. 둘째는 지난 명절에 봤을 때만 해도 살이 좀 쪘다. 속으로 '쟤도 나잇살이 붙는구나.' 했는데 이번엔 홀쭉하고 예뻐져서 왔다. 얼마 전 안부 삼아 외할머니한테 전화를 한 모양인데 오지랖 넓은 엄마는 손녀 위로한답시고 "힘들지? 냉면 먹으러 와." 이러는 바람에 두 놈이 입맛을 다시며 외가에 온 것이다.     


둘째 조카는 원래 명랑하고 밝은 편이긴 한데 이번엔 더 밝아져서 왔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상글벙글하다. 전화 왔다고 했을 땐 왜 새삼스럽게 전활까 무슨 일 있나 했는데, 냉면 먹으러 오란 말에 밝아진 것을 보면 녀석은 외할머니가 해 준 음식이 그리웠었나 보다. 더구나 엄마가 녀석들 어려서부터 꽤나 걷어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냉면은 아직 못 먹어봤다는 말이 새삼 놀랐다. 정말? 결국 우리 엄마 실력 발휘에 들어가 주시고, 조카들은 한바탕 홰를 치며 먹고 돌아갔다.


강릉 사는 언니와 같이 살지 않은 녀석들은 먹기 전 할머니표 냉면을 사진 찍어 보내기도, 그 전부터도 외가에 갈 거라고 자랑 꽤나 늘어놨었나 보다. 결국 언니가 뒤늦게 전화가 왔다. 언니로선 아이들에게 냉면을 해서 먹여줬으니 모른 척할 수 없으니 전화한지도 오래돼 겸사겸사 했을 것이다. 엄마는 첫째에 대해선 살찐 것 외엔 그다지 할 말이 없는데, 둘째가 살이 빠진 것과 더 예뻐지고 성격이 밝아졌다며 칭찬을 했다. 그러면서 "걔는 참 지엄마 안 닮았어." 하며 한마디를 더 보탠다. 손주의 엄마라면 누구를 이름이겠는가. 바로 당신의 딸을 이름이다. 자식 가진 엄마들은 자신보다 자신의 아이를 칭찬해 주는 것이 더 좋다고 하던데 언니의 입장에서 친정엄마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빗대서 딸을 칭찬하면 어떤 기분일까. 


하긴 내가 봐도 둘째는 언니를 안 닮긴 했다. 언니는 데면데면한 것이 요즘 말로 츤데레 스타일이고 그건 우리 집 내력이기도 하다. 타고난 걸 어쩌라고. 또 알고 보면 그게 다 조상 탓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둘째가 주워왔을 리는 없고, 오래전 둘째가 갓 태어났을 때 우연히 언니네에서 언니의 시어머니를 뵌 적이 있다. 물론 언니 결혼식 때 뵌 적이 있긴 했지만 기억에 없었고 난 그때야 제대로 뵌 셈이다. 그분은 한마디로 얄상한 미인형이었다. 그땐 둘째가 친할머니를 닮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워낙 핏덩이였으니. 아이는 집안 그 누구라도 닮는다고 둘째가 자라면서 외모며 성격도 딱 친할머니 판박이다. 그러니 엄마는 둘째가 뚝뚝하고 츤데레인 외가를 안 닮아 다행이란 말을 그런 식으로 간단히 후려쳤으니 언니의 입장에선 친정 엄마가 딸을 칭찬해 준 마음은 고마운데 왠지 뒤가 찜찜할까 했을 것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건만. 그러자 언니는 걔가 얼마나 쌀쌀맞고 팩팩거리는지 아냐며 사실을 폭로한다.

그러고 보면 엄마와 딸은 뭔가 꼬인 관계다. 그러려니 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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