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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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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un 10. 2019

돈 싫어하는 사람 있니?

그때 우린 순진했다


#금기사항

나를 포함한 우리 형제들이 우리 집에서 살려면 몇 가지 금기사항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한숨을 쉬지 않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문지방을 밟고 서 있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면 당신이 죽는다고 했고, 문지방을 밟고 서 있으면 거지가 된다고 했다. 그건 확실히 미신 같은 것이기도 했는데 우리는 정말 그렇게 되는 줄 알고 그 두 가지는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정말 엄마가 죽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어느 날, 실제로 대문을 닫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 틈을 타고 거지가 들어와 부엌 문지방에 서서 먹을 것을 구걸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엄마는 그 일이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엄마는 그 두 가지를 통해 우리가 반듯하게 자라주길 바랐던 것 같다.   

                                                                    


#돈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종종 밤늦게 친구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제일 난처한 건 엄마였겠지만 안방에서 잠을 자던 나와 동생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통행금지가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통행금지 30분 또는 1 시간을 앞두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으니.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돌아갈 때면 엄마를 의식해서인지 나와 동생에게 꼭 얼마씩의 돈을 쥐어주고 돌아가곤 했다. 그래 봐야 코흘리개 과자 값이지만. 하지만 아버지와 엄마는 아이들 버릇 나빠진다고 온몸으로 막곤 했는데 그것도 훗날 생각해 보면 마음에도 없는 일이었단 생각이 든다. 자기 아이 예뻐서 돈 주겠다는데 싫어할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그러면 어떤 아저씨들은 술기운에 내 이름을 잊어버렸는지 미스 김을 외치며 기어코 돈을 쥐어주고 돌아가곤 했다. 미스 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나를 그렇게 부르면 닭살을 넘어 꽤 묘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어린 나를 여자로 보나 해서 편치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못 들은 척하고 엄마와 아버지가 온몸으로 막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돈을 받아내고 만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와 엄마의 방어전도 약간은 허술했던 것도 같다. 아직 돈을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뜻 하지 않게 돈이 생기면 다음 날 가게 가서 뭘 사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못 다 잔 잠을 청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야말로 대박 사건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같이 아버지의 친구 중 한 분이 돌아가면서 돈을 줬는데 무려 5천 원을 주고 간 것이다. 당시 돈 5천 원은 어른에게도 상당한 액수의 돈이었다. 그것이 코흘리개 아이에게 주워졌으니 어땠겠는가? 물론 실수였을 것이다. 그때 백 원과 5백 원짜리 지폐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지갑에서 그 비슷한 돈을 꺼낸다는 게 얼떨결에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엄마와 아버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그 돈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동생에게 주었다는 것. 


그러자 나의 생각은 희한하게 돌아갔다. 비록 그 아저씨가 나에게 준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나도 있었으니 그 아저씨는 분명 누나와 함께 쓰라고 동생에게 대표로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저씨도 남아선호 사상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항상 10원짜리 군것질을 동생과 같이 사 먹는 관계가 아닌가. 하지만 무조건 다짜고짜 주장을 필 수는 없으니 동생을 좋게 구슬렸다.     


그 돈은 나와 너 밖에는 모르니 우리 이것을 가지고 매일 맛있는 것을 사 먹자고. 나는 매일 엄마한테 군것질 값 10원을 받느니 그 돈에서 사 먹는 것이 훨씬 좋을 거라고 했다. 그러자면 그도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얼마나 좋은가 엄마한테 돈 타는 것도 귀찮은데. 


나는 동생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 내 생각에 동의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음 날 동생은 무슨 생각인지 나와 상의도 하지 않고 엄마에게 그 돈을 자진 반납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5천 원은 우리 같은 조무래기가 갖고 있기엔 버거운 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난 동생의 그런 행동이 좀 못 마땅하긴 했지만 화는 내지 않았다. 결국 꿈은 사라지고 우린 여전히 군것질을 사 먹기 위해 엄마에게 10원의 돈을 탔다. 


그런데 엄마는 동생에게 받은 돈을 어떻게 했을까 오랜 세월을 두고 궁금하긴 했다. 아버지에게 줬을까? 그렇다면 아버지 역시 또 그 돈을 친구에게 돌려줬을까? 아마 그랬을 것도 같다. 웬만한 돈이라야 모른 척하고 넘어가지 그 아저씨가 다음 날 그렇게 큰돈이 없어진 것을 알면 아버지와의 우정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사람 좋아하는 아버지가 돈을 안 돌려줬을 리 만무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 아저씨가 맨 정신에 그랬다면 아버지는 모욕을 느꼈을 것이다. 애들에게 큰돈은 어른들에게도 큰돈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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