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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un 07. 2019

남의 것을 탐내지 마라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만...

#가스레인지

집수리를 하면서 그렇게 국그릇이나 밥그릇이 통과하는 조그만 일종의 배식 문을 부수고 아예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큰 문을 달았다. 그러자 안방과 부엌을 드나드는 동선이 훨씬 짧아졌다. 전에는 마루를 거쳐 드나들었는데 말이다. 또한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를 설치해 빛이 났다. 모르긴 해도 그 동네에서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몇 안 되는 집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때까지 연탄불이나 석유곤로에 음식을 해 먹는 게 일반적인 형태였으니까. 또한 바닥도 흙바닥 대신 타일을 깔아 맨발로도 드나들 수 있게 했는데 그게 가장 큰 변화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엄마로선 가스레인지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게 큰 기쁨이었을 텐데 정작 가스레인지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그땐 가스통을 연결해 썼는데 떨어지면 그것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에 전화해 배달을 시켜야 했다. 그것이 번거롭고 쉽지 않아 여전히 연탄불과 석유곤로를 사용했다.  


  


#책

어느 날 우리 집에도 책이 생겼다. 계몽사란 어린이 책을 전문으로 내는 출판사에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세계 소년소녀 문학전집인가 해서 50권이 한 질과 20권짜리 어린이 전래 동화를 엄마가 외판원을 통해 산 것이다. 


하지만 그건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나나 동생에겐 그림의 떡이고, 당시 초등학교 4학년과 2학년이었던 언니와 오빠를 위한 것이었다. 엄마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서열상 문학전집 50권짜리는 언니 것이고, 전래 동화는 20권 밖에 되지 않으니 오빠 것으로 잠정 결정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나와 동생은 나중에 학교에 들어가서도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언니는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오빠가 은근 텃세가 심했다. 남이 자기 물건에 손 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와 동생도 남의 것이라 정해진 물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문학전집은 한 권의 두께가 제법 도톰했다. 괜히 남의 물건 넘봤다가 읽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면 그것도 곤란할 테니 아예 남의 물건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신 가끔 심심할 때면 그것들을 뽑아 바닥에 흩어놓고 걸레로 하나씩 닦으며 1권부터 50권까지 책꽂이에 다시 꽂는 놀이를 했다. 주로 동생과 많이 했고 가끔 오빠도 함께 했는데 아주 재미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소일 삼아하기엔 나쁘지 않은 놀이였다. 그런데 이 책이 발이 달렸는지 두세 권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언니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했다. 


물론 나에게도 나만의 것이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해서 크게 서운해 하진 않았다. 내가 뭘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책은 (아직) 원하는 물건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정말 뭘 모르고 한 생각이었다. 얼마 후 아버지와 엄마는 엄청난 것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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