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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un 19. 2019

피아노는 나의 족쇄

예쁘게 생긴 것도 죄인가요?

#피아노   

우리 집엔 언제부턴가 빨간색 장난감 피아노가 있었다. 그것도 그랜드 피아노 모양을 한. 그나마 고장이나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았고 다리도 부러져 거의 쓸모가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뭐 때문인지 그걸 버리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언니와 오빠에게 책을 사 줄 무렵 나와 상의도 없이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그게 대략 7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왜 피아노를 배워야 하는지도 모르고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엄마와 아버지가 좋을 것 같으니까 배우게 한 것이겠지. 하지만 난 거기에 동의한 적이 없다. 어느 날 엄마는 개인 피아노 교습을 하는 어느 여자 선생님께 데려가더니 아버지가 진짜 피아노를 살 때까지 며칠 동안을 엄마는 거의 강압적으로 나에게 고장 난 피아노로 건반 연습을 시켰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 피아노가 들어왔다고 해서 좋아했던 것도 아니다. 나 보다 세네 배는 큰 까만 물체가 건넌방에 떡하니 자리하게 됐을 때 사람들 특히 언니가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지만 난 속으로 무척 부담스러웠다. 이것이 나의 족쇄가 될 거라는 걸 직감했으니까. 그때 나는 예쁘게 생긴 건 결코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쁘게 생기면 저런 피아노도 배워야 했으니까. 게다가 그때가 아버지의 사업이 한창 번창하던 시기였는데 누군가의 번창이 누구에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골목의 개

피아노 집은 집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나마 좁고 허름하긴 하지만 샛길로 가면 훨씬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꼭 먼 길로 돌아가곤 했다. 꼭 그 길이 편해서만도 아니었다. 샛길로 가면 어느 집 개인지 까만 점박이 개가 사람만 지나간다 싶으면 짖는 것이었다. 어린 내가 볼 땐 그게 굉장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아버지가 워낙에 개를 좋아해 집안에서도 개를 키우고 있었지만 그 개는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하도 무서워하자 엄마가 눈을 마주치지 말고 모른 척하고 지나가면 된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피아노 선생님 댁 이층 방에서 보면 그 개를 지켜볼 수가 있었는데 어느 날 어떤 젊은 여자가 길을 가는 것이 보였다. 개는 또 어김없이 어디선가 나타나 그 여자를 보고 짖는 것도 모자라 발등을 깨무는 것 같았다. 나는 그걸 보면서 도저히 엄마 말대로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엄마 말이 맞는 것 같긴 했다. 그 여자는 그 개가 뭘 하든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정말 그 개가 여자의 발등을 깨물었다면 아프다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멀쩡히 자기 갈 길을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을 보면 엄마 말대로 해봐도 좋을 것 같긴 하지만 역시 자신이 없었다. 아무리 개라고는 하지만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 무렵 오빠가 어디서 광견병 얘기를 들어가지고 미친개에게 물린 사람은 그 자신도 

미친개라고 생각해서 누군가를 문다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한 좀비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직 채 피워보지도 못한 인생을 미친개에게서 마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좋으나 싫으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는 늘 큰길을 돌아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곤 했다. 

                                                                    

#피아노 선생님

나의 첫 피아노 선생님은 미인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날씬하고 세련됐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새로운 곡을 가르칠 때면 뒤에서 두 손을 내 어깨 위로 뻗어 시범을 보이곤 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에게선 비누인지 향수인지 모를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또한 길고도 하얀 손에선 건반과 손톱이 부딪혀 조그맣게 딱딱 소리가 났는데 난 그게 은근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면 나는 왜 피아노 칠 때 그런 소리가 안 나는지 선생님이 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또한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스르르 잠이 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난 피아노를 싫어해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은 선생님께 칭찬을 받기도 했는데 이렇게 칭찬을 받는데 굳이 연습이 필요한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칭찬 보단 야단을 맞을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그럴 때면 속이 상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고, 급기야는 피아노를 마치고 선생님 댁을 나설 땐 뒤도 안 돌아보고 “내일 안 올 거예요.”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래, 오지 마라.”하곤 뒤에서 대문을 쾅 닫는 것이다.    


아직 어려서일까? 서글픈 건 잘 모르겠는데 뭔가 아쉽긴 했다. 그럼 그 말을 어떻게 선생님 얼굴을 보고 한단 말인가. 하지만 선생님은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내가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나타나 피아노 앞에 앉아 있을 거라는 걸. 왜냐하면 내가 피아노를 치러 오지 않을 다른 마땅한 이유가 없었으니까. 피아노 안 간다고 해 봤자 엄마한테 혼이나 날 텐데 나는 양쪽으로 혼나느니 차라리 싫지만 피아노를 배우러 가는 게 낫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아유, 내 팔자야.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그때 정말 화가 나셨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그렇게 뒤에서 나를 배웅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그때 선생님도 나름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이라고 제자가 그렇게 말하는데 기분이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조그마한 게 당돌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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