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버나움>을 보며...
처음엔 뭐 이런 영화가 있나 싶었다.
극영환 줄 알았는데 오히려 다큐멘터리 아닌가 했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건 극영화가 맞다. 다큐멘터리를 가장한 사회 고발성 짙은 영화다. 등장인물은 시리아 난민 출신들로 영화를 찍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각각의 등장인물은 실제로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는데 영화에선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고 심지어는 가족 지간인 양 자연스럽다. 이름도 실명을 쓴다.
솔직히 이런 영화를 본다는 건 즐거운 건 아니다. 뭔가 고통스럽고 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볼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영화가 아니면 난민국가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어찌 알겠는가. 또한 보면서 국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교육을 통해 문명을 깨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국력이 약하면 제일 고통당하는 건 어린아이와 여성이다. 무엇보다 그런 난민국가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절감하게 된다. 한 가정의 가장은 자신의 가정조차 지킬 수가 없다. 주인공 지인을 보라.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한다.
이야기는 어린 지인이 조혼의 구습으로 여동생이 어느 아저씨뻘 되는 남자에게 강제로 끌려가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다 사망자 홧김에 그 남자를 살인을 하려다 미수에 그치고 법정에 서게 되면서 시작이 된다. 물론 처음부터 이 상황이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소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엔 그저 주인공 지인이 자신을 방임한 부모를 고발하기 위해 법정에 선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 가지고 부모를 법정에 세울 수 있을까 갸웃거리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인이 사는 곳은 난민 지역이다. 과연 어디가 출생신고를 한단 말인가.
난민 지역이라고 해도 조혼 풍습을 버리지 못해 이제 막 월경을 시작한 어린 동생이 팔려가는 걸 막을 수 없었던 지인은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해 가출을 한다. 가출해 일자리를 찾던 중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젊은 여자를 알게 되고 그녀의 어린아이와 동거를 하면서 묘한 가족애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도 불법 체류자의 신분이라 그것은 언제 깨질지 알 수가 없다. 여자 역시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없어 몸이라도 팔아야 할 지경인데 하필 그 일을 하기로 한 날 경찰에 의해 체포되고 자식조차 잃어버랴야 할 위기에 처해진다. 그 사이 지인은 여자의 아이와 버텨보지만 결국 아이를 영아 인신매매단에 팔아버린다.
집에 돌아온 지인은 아버지로부터 심한 폭언과 폭력에 시달리다 여동생이 임신 중 사망한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던 지인이 극도의 분노로 칼을 들고 동생을 그렇게 만든 남자를 죽이겠다고 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그것을 그저 단순한 어린아이의 치기로만 볼 수 없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다행히 살인미수에 그치지만 한마디고 지인은 찢기고 부서진 영혼이다. 과연 이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게다가 재판 후 구치소에 수감 중인 지인은 자신을 만나러 온 어머니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잔뜩 독이 올라 마구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죽은 동생을 대신해서 태어날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저주를 받는 거라면서.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면 자신의 엄마에게 그런 독설을 퍼붓는 것일까. 그게 보는 내내 참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이 영화가 뭔가모를 일말의 의문이 남는다. 물론 난민의 어느 한 비극적인 가정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지인에 대해선 다소 감상적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솔직히 지인의 꿋꿋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치료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래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일수 밖에 없겠지만.
나라가 없으면 이런 비참한 데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도대체 어린 지인은 누구를 원망을 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지인의 나라는 회생하게 될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다가 남의 나라도 남의 나라지만 난 이내 학대당하는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집중적으로 아이들의 학대피해가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나름 복지 국가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나라가 없었던 시절에 비하면 아이들의 불행은 몰라보게 줄어든 것도 사실이지만 아이들의 행과 불행을 수치로 계산한다는 건 확실히 난센스다. 아이들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다. 훈육을 한답시고 아이들을 학대하다 훗날 늙고 힘없어질 때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를 두루 석권했다. 보면서 국력과 인권, 아동과 여성에 대해 두루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