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억수집가 Sep 13. 2019

국민으로 산다는 것

요즘 영화를 드문드문 보고 있어 별 기대 없이 봤는데 의외로 몰입도가 좋다.

나 역시 IMF를 거쳐 왔지만 그것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것을 영화는 상당히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치 다큐멘터리 극영화를 보는 듯하다. 영화는 그 시절 매스컴은 IMF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 편집해 보여주기도 하는데, 문득 그것을 보도한 당시의 공중파 앵커와 아나운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궁금하다.


                             

영화는 국가 부도의 날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한시현(김혜수 분)을 중심으로 어떻게든 국가의 부도를 막아 보려고 노력하는 부류다. 또 하나는 부도가 날 것을 예상하고 한몫 단단히 챙기는 즉 위기는 기회라는 걸 몸소 보여주는 윤정학(유아인 분). 그런 위기의 순간에도 어떻게든 성실하게 일하면 잘 살 수 있을 거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살다 희망에 배신당하는 갑수(허준호 분). 그런 국가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관료적인 태도를 버리지 않는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과 그에 편승하는 일파들. 그들은 그 시대가 그랬던 것만큼 한시현을 향해서도 여성 비하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갑수를 보면서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IMF가 있기 훨씬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내가 중학교 땐가, 전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들어오셔서 다음 날 술병이 나서 출근을 못하셨다. 뭔가 일이 일어나도 크게 일어난 모양인데 어리다는 핑계로 차마 여쭤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의 무게, 조그만 사업체지만 대표로서의 무게가 얼마만 한 건지 조금이나마 알 것도 같았다. 갑수를 보면서 IMF 그 시절에도 살아계셨다면 똑같이 힘들어하셨겠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착하고 성실함만으로는 살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또한 서글펐다. 국민의 대다수가 갑수 같은 삶을 살지 않을까?         


하지만 반대로 갑수 같은 부류가 잘 살게 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원래 자기네들이 목표한 것이 그것인 양 산다. 즉 남한테 피해 안 주고, 가장으로 가정을 건사 잘하고, 자녀들이 성장할 때까지 아프지 않고 잘 살아주는 것. 경제에 관해선 그다지 아는 바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시현이 보여주는 캐릭터도 나쁘지 않다.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는 막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번번이 관료적인 재정국 차관과 그 일파들과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똑똑하고 지혜로운 부류는 단연 아무도 믿지 않겠다던 윤정학이다. 경제라는 것, 자본이라는 건 언제나 그냥 있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 여러 모양으로 그 모습을 바꾸는 도깨비 같은 것이다. 그것의 흐름을 알고 그것 위에 군림했을 때 엄청난 국가적 재앙에서 살아남았다.


국가 부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IMF 구제 금융은 신청하지 않을 거라고 언론을 하나 같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 같이 실천되었다. 언론과 정치를 믿으면 안 된다. 그래 놓고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국민의 저력이라며 한껏 띄워 주기도 한다. 물론 그건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겠지만, 왜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과 백성은 호구가 되어야 하는가. 뭐 그것까지도 좋다고 치자. 정치지도자들 눈에 우리는 개 돼지로 비치기까지 하지 않는가?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좀 화가 났다. 영화는 영화로 보는 게 좋은데 그때를 너무 리얼하게 다루고 있으니 그냥은 봐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가 보여주는 대로 관료주의자들에 대하여 분노만 하면 안 된다. 


나아가 어떻게 애국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렇게 나라가 어려울 때 금이나 털컥 내주는 것만으로 애국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애국은 좀 더 공동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네 부류의 사람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다수가 윤정학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윤정학 같은 사람이 된다면 관료주의자들만큼이나 위험하다. 이 세상엔 갑수 같은 사람이 훨씬 많고, 갑수의 삶이 꼭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근면 성실하게 사는 게 뭐가 잘못인가. 하지만 그들 역시도 등 따습고 배 부르면 나태해질지 모른다. 그리고 관료주의자들은 비로 이런 점을 들어 개 돼지라고 표현했던 것이 아닌가. 그러나 저 네 부류의 사람은 역사적으로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항상 있어왔다. 그렇다면 그들은 상호 작용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사실 관료들도 정신만 차리면 나라에 큰 일을 할 사람들 아닌가? 


분명한 건 국가 운영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린 분명 지나간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보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영화감독들은 <만추>를 만들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