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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Sep 30. 2019

노근리를 아십니까?

영화 <작은 연못> 리뷰

영화 보기를 좋아하지만 가끔 우연히 본 영화가 마음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이 영화가 그렇다. 한국전쟁이 있던 그해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다. 그동안 들어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는 몰랐다. 영화를 보면서 부끄러웠다. 우리나라에 이런 역사적 사건을 왜 난 여태 몰랐을까.


영화는 러닝타임이 비교적 짧다. 한 시간 반이 채 안 되는데 구성도 좋고 잘 만들었는데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난 6.25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때를 생각하면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고향을 버리고 다 피난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특히 남쪽 지방일수록 피난의 필요성은 별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설혹 피난을 염두했더라도 그전에 전쟁이 빨리 끝나 주길 바랐을 것이다. 또 그런 만큼 피난엔 시간차가 있었다.


전쟁이 나던 그해 7월만 해도 충청도의 노근리 마을은 정말 전쟁이 일어났나 싶게 평화로웠다. 어느 날 마을에 인민군이 쳐들어 올 것이니 주민들은 빨리 피난을 하라는 통고를 받는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은 피난길에 오르지만 피난을 도와주겠다던 미군은 노근리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마을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죽음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그때의 마을 사람들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묘사한다. 


마을 사람들이 얼마나 순박했는지, 얼마나 평화로웠는지, 정말 피난을 가야 하는지 가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하다 결국 다수의 뜻에 따라 너도 나도 피난을 떠나는 형국을 실감 나게 그린다. 언제나 그렇듯 그 가운데 반드시 대열에서 이탈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과연 그 가족들은 학살을 피해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대열에서 이탈했다고 해도 그들에게도 복불복의 상황은 마찬가지 아닐까.


그것을 보니 문득 영화 <타이타닉>이 생각나기도 했다. 침몰하는 배 속에서 우왕좌왕 살려고 바둥거리는 가운데서도 처절하게 살아남으려고 하느니 우아하게 죽겠다고 선실 자신의 방에서 평안히 두 손을 맞잡은 노부부 말이다. 물론 어차피 죽음을 맞이하지만 이렇게 사람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마음이 있다는 게 새삼 놀랍다. 그런 것처럼 그 피난 대열에서 이탈한 그 가족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살면 다행이고 이탈한 대가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러라지 하는 마음. 그 장면은 아주 짧게 보여주고 지나가지만 저런 순간에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해 본다. 그때그때 달라요가 되지 않을까? 순간 살고자 원하면 나도 이리저리 뛰고 구를 테고, 사람이 살고 주는 건 전적인 하늘의 뜻이라면 끝까지 우아하려 하지 않을까.   


영화가 인상적인 건 양민학살도 학살이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순박한지, 이들의 일상이 얼마나 평온했는지를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를 듣는 청각적 효과와 함께 어느 국민(초등) 학교 어린이 합창에서 극대화시켰다는 것이다. 또 그와 대비되게 이들이 얼마나 살고자 했는지는 철길에서의 아수라장과 굴다리에서 스스로 미쳐가는 상황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해 가을 그렇게 한바탕 폭풍을 치르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 싶게 하나둘씩 마을로 돌아오지만 역시 옛날의 그 풍경은 아니라는 것.


(내가 영화를 잘못 봐서일까) 영화는 이 양민학살이 왜 일어났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좀 얼떨떨했는데 찾아봤더니 미군이 북괴군이 잠입한 줄 오인하고 학살했다는 것이란다. 그럴 수도 있을까 싶다가도 좀 어처구니가 없다. 어떻게 양민을 북괴군으로 오인할 수 있단 말인가? 미군이 북괴군인지 양민인지 식별도 없이 작전을 펼쳤단 말인가? 이 영화가 아쉬운 건 마을 사람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서 끝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나름 노근리 사건에 관심 끌기에 성공한 듯도 하지만, 그 후 이 사건을 두고 어떤 진상 규명과 재판 과정이 있었는지 자막으로만 간단히 보여주고 말아 궁금하다. 예상하긴 했지만 미군은 그 사건에 대해 함구했고 지금도 해결이 안 되고 있다고. 과연 아직도 역사 속에 묻힌 해결되지 않은 과거사가 얼마나 많은 건지 알 수가 없다.   


영화는 특별히 누가 주연이랄 것도 없이 출연 배우들 모두가 주연이라면 주연이고 조연이라면 다 조연이다. 그 밖에도 알만한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특별히 박광정 배우가 눈에 띄어 좀 놀랐다. 이미 고인이 된 줄로 아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했다. 그만큼 필름 상태가 좋았다. 알고 봤더니 상영 연도가 2010년이다. 그가 죽은 건 2009년이고.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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