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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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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an 13. 2020

미안함에 대하여

#친구

친구가 좋았다. 얼마나 좋았냐면 학교 재래식 변소 안까지 같이 들어 갈만큼. 

세 네 명이 들어갔던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좁은 곳에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라고 해도 말이다. 


어느 날 학교 변소에서 번갈아 가며 일을 보다가 실수로 친구의 도시락이 빠지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것이 다 친구를 너무 좋아해서 생긴 불상사라면 불상사인데 난 왠지 그게 꼭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안 좋았다. 나는 그 친구가 혹시 엄마한테 혼이 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나는 학교에서 그 친구를 보자마자 엄마한테 혼났냐고 했더니 대수롭지 않게 아니라고 했다. 순간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그 친구의 엄마는 마음이 너그러운 분인가 보다 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감히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도시락

초등학교 2학년이 무슨 도시락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시락을 싸 가지고 오는 날이 있었다. 그것은 앞으로 고학년이 되면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그것을 적응시키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나는그날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아이들과 함께 오순도순 반찬을 나눠먹는 맛이 가족들이랑 먹는 밥과 또 달랐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골이 나도록 들고 다녀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좋아라 했다. 

그때는 모든 게 새로웠고, 재미있었다. 


#칠판

1학년이던 어느 날 엄마가 칠판을 샀다. 그때는 우리 집에서 과외를 할 때인데 분필로 칠판에 글을 쓰는 그 느낌이 좀 남달랐다. 백묵가루가 술술 칠판을 타고 내리는데도 정말 내가 선생님이 된 것 같았다. 

실제로 그 칠판 장난이 좋아 나도 교사가 되면 어떨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외할머니

나는 친할머니 보단 외할머니를 더 좋아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너무 못 생겨서 누구에게 내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할머니는 꽤 오랫동안 쪽진 머리에 한복을 입고 다니셨다. 그땐 그런 할머니들이 많아 그러려니 했지만 할머니의 못 생긴 얼굴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2학년 때 할머니가 학교에 오시는 상황이 벌어졌다. 뭔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내가 담임선생님의 심부름으로 뭔가를 가져가야 하는데 그게 좀 크고 무게가 나가는 거라 내가 학교에 들고 가기가 어려웠다. 엄마가 들고 오면 좋겠지만 이상하게도 엄마는 내가 학교를 들어갈 때부터도 학교에 가는 것을 무척 꺼려했다.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언니나 오빠 심지어 동생의 담임선생님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어떤 아이들은 엄마가 교실까지 따라 들어와 이것저것을 챙기는데 그게 얼마나 부럽던지. 왜 우리 엄마는 저렇게 못하나 싶었다.


아무튼 그 문제로 엄마랑 작은 실랑이까지 벌였다. 학교엔 할머니가 가실 거다.할머니만 보내기만 해 봐. 엄마가 와야 한다고 짜증을 내면, 엄마는 왜 할머니가 가면 안 되냐고 맞섰다. 그러면 할머니는 너무 못 생겨서 창피하단 말을 할머니 듣는데서 차마 하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를 아이들에게 내놓고 자랑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이라니.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을까 나 자신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가 오셔서 담임선생님께 물건만 전달하시고 가신 모양인데 나조차도 긴가민가할 정도로 금방지나갔다. 그때 교실문은 창문이나 있어서 사람이 지나가는 걸 지켜볼 수가 있었는데할머니가 나를 보고 빙긋이 웃고 지나가시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주 잠깐인 걸 난 왜 그렇게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던 걸까할머니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할머니 지나가는 거 봤다고 얘기했더니 할머니는 나를 못 봤다고 했다. 그냥 어림짐작으로 네가 나를 볼 것 같아 웃으며 지나갔던 거라고 했다. 

그날은 정말 내가 걱정을 해도 너무 많이 했구나 싶었다.   


#미안함에 대하여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청소 당번 아이들을 위해 교실을 떠나기 전 자신이 앉던 의자를 책상위에 올려주고 가야한다. 그런데 나는 그때따라 의자를 한 팔로 들어 올리다 그만 실수로 내 뒤에 있는 남자 아이 정수리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순간 아찔했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 아이도 한동안 머리를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앉아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정수리에 번개가 꽂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왜 그랬을까? 걸상을 들어 올린 내 팔을 잘라버리고 스스로 머리를 쥐어 밖고 싶었다.그런데 사람의 심리가 참 묘했다. 그렇게 미안한 마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저릿한데 미안하단 그 한마디를 못하겠는 거다. 너무 미안하니 그런 것 같았다.


잠시 후 그 아이는 아픔이 어느 정도 가셨는지 주춤거리며 일어났는데 이런 내 마음을 이심전심으로 아는걸까? 굳이 사과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미안하지? 괜찮아.’ 그러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 아이는 키가 크고 착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나로선 그런 아이에게 실수해서 다행이란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여느 아이 같으면 자신이 당한 아픔만큼 돌려줘야 한다고 해도 뭐라고 할 수 없고 고스란히 그 아픔을 되받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그 아이는 확실히 대인배였다. 

어쨌든 그런 마음은 그때 처음으로 느껴 본 건데 왜 미안하면 미안하단 말을 못한 건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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