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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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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Jan 26. 2020

자의적 해석

#오줌싸개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오줌을 쌌다. 

오줌을 좀 오랫동안 참고 있긴했다. 처음엔 참을만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수업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참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정말 오줌보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선생님이 종례하는데 급하다고 교실을 뛰어나 갈만큼 담대하지도 못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못 잡고 끙끙거리고 있는데 종례 마지막 순서로 청소 당번 아이들을 위해 걸상을 책상 위에 올려야 하는데 순간 뭔가가 내 안에서 툭하고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뭐지 하는데 순간 뜨끈한 액체가 내 다리 사이로 쏟아졌다. 

 

뭔가 아랫배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어느 짓궂은 남자 아이의 눈에 띄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쩔 줄 몰랐다. 그런데 웬일로 아이들은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모르는 건지 아무도 내가 오줌 싼 사실에 대해 반응이 없었다. 정말 내가 말하지 않으면 무덤까지도 비밀로 하고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오줌 싼 자리야 청소 당번 아이들이 대걸레로 닦아줄 것이고, 양심에 꺼린다고 오줌 쌌다고 광고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니 모른 척하고 교실을 빠져 나왔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쌌기 때문에 화장실을 따로 갈 필요도 없었다.


어쨌거나 시원했고 아이들은 요행히 피해 갔다지만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하면 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축축해진 바지도 말릴 겸 천천히 집으로 가면서 엄마를 어떻게 속일까 궁리를 했지만 별 뾰족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부딪히며 해결하는 수밖에.

집에 도착해 엄마한테 상냥한 건지 아양을 떠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다정하게, 

 “엄마, 나 속옷 갈아입을까? 갈아입은 지 좀 오래된 것 같은데.”

 그러자 엄마는 태연하게 그러라고 했다. 나는 또 내친김에,

 “그럼 바지도 갈아입을까?”

그러자 그건 좀 있다가 갈아입으란다. 바지도 갈아입으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고 몰래 빨래를 하기엔 난 너무 어려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난 영악한 걸까? 엄마가 그렇게 말할 땐 당연 며칠 있다 갈아입으란 말이었는데 그걸 작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즉 몇 시간 있다 갈아입으란 소리로. 좀 있다갈아 입으라하지 않는가. 그래서 몇 시간 있다 갈아입기로 했다. 혹시 나중에라도 엄마가 뭐라고 그러면 조금 있다 벗으라고 해서 벗은 거라고 둘러댈 참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것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며칠 있다 마당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옆의 빨래 그릇에 내 오줌 싼 바지가 노란물에 담겨 있는 게 보였다. 이 정도라면 엄마가 궁금해서라도 혹시 오줌 싼 거 아니냐고 물어 볼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그 바지가 노란색 털로 짠 바지였는데 엄마는 아마도 거기서 노란 물감이 나온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나는 본의는 아니었지만 완벽하게 엄마를 속인 셈이 된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나 자신 1학년 때도 싸지 않았던 오줌을 2학년 때 쌌다는 게 좀 충격이긴 했다. 그런 건 애기 때나 하는 거 아닌가. 다 커서 그러고 다닌다는 게 나 자신 생각해도 창피하긴 했다. 


하긴 동생은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도 밤에 자다가 오줌을 싸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키 쓰고 소금 받아 오라고 놀리곤 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정말 실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가 그렇고.   


#마이크

TV 쇼 프로그램을 보면 가수들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게 왜 그렇게 끌리는지 그걸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 TV에서 가수들이 마이크 줄을 동그랗게 감고 노래를 부르는 게 유행 아닌 유행이었다. 난 그게 참 매력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비싼 걸 아버지께 사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게 너무 탐나 가수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어느 날 외할머니 댁에 전축을 들여놨다고 해서 방학 때 구경을 갔다. 그런데 마이크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방송국에서 쓰는 마이크는 아니고 그 전축이 녹음 기능이 있었는데 바로 녹음 마이크였다. 꿩 대신 닭이라고 그렇게라도 있다는 게 어딘가. 


이모들은 돌아가며 우리 들의 목소리를 녹음해 줬고, 그 소리를 듣게 해 줬는데 정말 내 목소리가 이랬나 적잖이 놀랐다. 그때 내가 불렀던 노래는 가수 김정호가 부른 <이름 모를 소녀>란 노래였는데, 폐가 안 좋아서 일찍 세상을 마감한 것으로 안다. 특히 그 노래는 왜 그리도 고독하고 서글픈지. 난 그 녹음 마이크에 대고 그 노래를 불렀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물결 바람에 이누나

출렁이는 물결 속에 마음을 달래려고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 속에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    


유재하나 김광석 역시 요절 가수로 가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들이 있기 전에 김정호가 있었고 그에 앞서서는 배호라는 가수가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싸움(II)

2학년 때 내 짝하고 처음으로 싸움이란 걸 했다. 살다 보니 그런 것도 한다 내가.

뭐 때문에 싸웠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아이의 싸움이란 건 사소한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 나름대로는 심각한 것일 테지만. 


그런데 정말 심각해졌다. 편이 갈라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편은 없었다. 짝을 옹호하는 무리만 있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알 수가 없었다. 싸움은 짝과 나 둘이만 했을 뿐인데. 하지만 그건 의외로 간단했다. 짝은 내가 못 됐다고 몇몇 아이들에게 소문을 퍼뜨리고 아이들은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단순하게 믿어버리고 만다. 그러면 어제까지도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이 싸늘해져서 나와는 말도 섞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것도 싸움의 전략인가 싶기도 했고, 다음에 나도 누구와 싸우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먼저 선수를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나를 상대 안 해 주는 건 그렇다고 쳐도 우리 반에서 가장 예쁘고 인기도 많았던 부반장인 L마저 내게서 등을 돌린 건 좀 충격적이었다. 그것도 하굣길에. 


집에 돌아가는 길을 누구하고 같이 가겠느냐를 두고 또 싸운 것이다. 그래봤자 얼마만큼 가면 뿔뿔이 흩어지는데 그 몇 발자국을 같이 가겠다고 싸우다니. 그만큼 친구가 중요했던 것이다. 나와 냉전 중이던 짝은 이미 세력을 키웠기 때문에 L은 당연히 자기와 함께 갈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별로 맞는 생각 같지는 않았다. L이 누구와 같이 갈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거지 아이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고 그렇게 믿는 것은 잘못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L의 왼쪽 팔짱을 끼고 끝까지 따라 붙었다. 


그러자 내짝은 내가 그러고 나오는 게 괘씸했는지 갑자기 L과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 떨어지라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가 무엇을 할지 짐작이 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냥 이대로 가는데 까지 가자고 했다. 그러자 잠시면 되니까 기다리는 것이다. 


결국 난 못 이기는 척 하자는 대로 했다. 또 그래도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건 L은 예쁜 아이니 생각도 지혜롭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적어도 조금 전의 상황으로 돌아와 공평하게 길을 걷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짝은 나와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L에게 뭐라고 쏘삭거리더니 그대로 L마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 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L이 좋아 집도 일부러 돌아서 가기도 했는데 어이가 없었다. 예쁘다고 다 지혜로운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난 변함없이 L을 좋아할 마음이 있는데 결국 말을 섞을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다 얼마만 이었을까? 갑자기 짝의 교과서에 연필로 줄이 가 있는 게 보였다. 그 흔적으로 봐선 일부러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실수로 그런 것 같긴 했다. 그런데 짝은 나를 의심했다. 그래서 내가 한 것 아니라며 마침 지우개가 가까이 있어 별 말없이 지워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그러자 짝도 나의 친절이 고마웠는지 아니면 자기도 그 동안 양심이 괴로웠는지 그제야 나에 대한 긴장을 풀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 특히 L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예전처럼 나와 친하게 지냈다. 


그러고 보면 내 짝은 사람을 사로잡는 보스 기질이 있는 아이는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예쁘게 생긴 아이도 자기편으로 만들 줄 아니 말이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고, 아무리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친절과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걸 그 친구가 훗날에라도 깨달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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