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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유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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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Feb 05. 2020

다듬이 소리

#깨달음

 학교에 등교하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깨끗했던 내 책상이 누군가의 토사물로 그득했던 것이다. 사실 토사물이란 정확한 근거도 없었다. 그냥 내가 하도 멀미를 잘하니 비슷한 모양새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이다. 토사물이라면 옆으로 파편이 튀기도 할 텐데 그런 흔적은 없었고 누가 일부러 장난을 쳤던 것 같기도 했다. 지금처럼 CC TV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정황도 증거도 없어 답답했다. 전날 청소 당번 아이들이 청소하는 걸 보고 갔으니 우리 반 아이가 그랬을 것 같진 않고 아무래도 옆 반 아이의 소행일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공부는 해야 하니 억울해도 책상을 닦아야 할 텐데 도저히 닦아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방법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무릎 위에 책과 공책을 번갈아 올려놓고 수업을 듣는 게 다였다. 

 선생님도 내가 치우고 편하게 공부하길 바라셨겠지만 당신이 치워 줄 것도 아니니 굳이 뭐라고 하시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래도 이러고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가 보다 했다. 하지만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채로 몇 교시가 흘렀다. 그때였다. 나하곤 평소 인사 정도만 하고 지내는 한 여자 아이가 내가 그러고 공부하는 게 딱했던지 청소 도구함에서 걸레를 가져와 내 책상을 깨끗이 닦아주는 것이었다. 그것도 얼굴 하나 찡그리지도 않고. 그 아이가 상냥한 성격을 가진 건 알았지만 순간 천사 같았고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나는 그 아이가 치워주길 기다렸던 건 아니지만 결국 그런 것 하나 내 손으로 못 치워 남의 손을 빌린 꼴이 되었으니 민망한 생각도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소 억울해도 내 손으로 치우는 게 맞다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다른 아이의 손이 더러워진다. 그것 역시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그걸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이다.  

 

#생리대

 언니가 생리를 시작한 건 아마도 6학년 여름 무렵일 것이다. 나는 그때 그게 생리대인 줄도 몰랐다. 그건 옷장 서랍에서 발견이 되었는데 처음엔 휴대용 화장지를 포장한 것은 아닐까 했다. 그래서 이리저리 만져도 보고 뜯어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화장지는 아니었다. 화장지였다면 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겠지. 

 그때는 접착식 생리대가 나오기 전이었는데 겉에 부직포 같은 하얀 반투명 포장이 씌워 있었다. 그게 좀 신비스럽다고 생각했다.

 

#훌라후프 돌리기

 나는 훌라후프를 잘 돌렸다. 물론 처음엔 익숙하지 않아 돌리면 곧장 떨어지곤 했는데 곧 익숙해지고부터는 허리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나의 훌라후프 돌리기 최고 기록은 2500번이었다.

                                                                   

#다듬이 소리

 내가 언제까지 다듬이 소리를 듣고 자랐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이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소창이나 광목으로 이불잇을 삼곤 해 우리 집뿐만 아니라 여느 집에서도 다듬이질을 많이 했다. 


다듬잇돌과 방망이가 어울려 내는 소리는 정말 독특하다. 이불잇에 풀 먹이고 하는 이 다듬이 소리는 어떤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한 손으로 방망이질은 네다섯 번 한 후 그다음엔 이내 두 손으로 번갈아 가며 하는데 나름 꽤 리드미컬하다. 

딱 딱 딱 딱 딱 똑딱똑딱똑딱똑딱똑딱........


이걸 두 사람이 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도합 네 개의 방망이가 어른 손으로 네다섯 뼘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 같은 다듬잇돌 안에서 자유자재로 한 번도 겹치지 않고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놀랍기도 하다. 피아노 연주 중엔 한 대의 피아노로 듀엣 연주를 하기도 하는데 가히 그것에 비할 만하다. 

그렇게 해서 빳빳하게 말린 소창이나 광목을 입힌 이불과 요는 바늘에 실을 꿰어 시침을 해 야 한다. 처음엔 너무 뻣뻣해 살이 베일 정도고, 여름엔 살에 달라붙지 않고 선선함마저 든다. 겨울엔 정말 차다. 그 시절엔 잠자기 적어도 30분이나 1시간 전엔 잠자리를 펴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동안 그 차가운 느낌을 견뎌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이런 이불빨래를 엄마는 한 달에 한 번도 하고, 두 달에 한 번도 했다. 누가 들으면 보통 그 정도 하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것도 세탁기가 있기에 가능한 말일 것이다. 엄마가 한창 다듬이질을 하고 살았을 할 때는 그리 가능하지가 않았다. 물론 우리 집에 세탁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전기값 나오고 손빨래가 깨끗하다며 잘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것을 이불잇에 풀기가 가셨다 하면 일일이 실을 풀어 그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다듬이질과 이불 시침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무엇보다 난 엄마가 그러고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시절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았다. 분명 잊힌 소리라 아쉽긴 하지만 왠지 다듬이 소리를 마냥 정감 넘치는 그 옛날 우리 어머니의 소리라며 추켜세우고 싶진 않다. 

그건 분명 힘들게 살아왔던 우리네 어머니의 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아 한쪽으론 마음이 찡해진다. 만일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도 난 엄마에게 다듬이질만큼은 권하고 싶진 않다. 


우리 집엔 적어도 나의 어린 시절을 기준으로 거의 백 년을 바라보는 다듬잇돌과 방망이가 있었다. 할머니의 할머니 또는 그 위의 할머니가 쓰셨을 법한 그것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이사하면서 흐지부지 잃어버렸다.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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