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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수집가 Aug 05. 2020

우리는 얼마나 살게 될까?

대화를 수집합니다 #2

어느 봄날, 어느덧 50대 중반이 된 H와 J가 오랜만에 만나 카페에서 수다를 떤다. 


"...... 이제 전 사는 것에 미련 없어요. 아이들 다 컸겠다 남편이야 뭐 30년 살아줬으면 나 죽은 다음에 새 장가를 가던 말던 내 알 봐는 아니고, 내일이라도 죽어야 한다면 죽는 거지 별 수 있어요?

 언젠가 이 얘기를 남편한테 했더니 인정을 안 하더라고요. 당신은 오래 살 거래요. 아프면 앓는 거 싫다고 제깍제깍 병원 가고..." 

"게다가 이렇게 욕심 없이 사는데. 하하."

"그런가요? 하하하."

"저도 이제 사는 것에 미련 없어요. 6년 전 그렇게 건강하던 오빠가 암으로 떠나는 거 보고 사람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거구나. 그러니 꿈을 가진 들 뭐하고 야망을 가진 들 뭐하겠어요? 그저 오늘 하루를 잘 살고, 한 달을 잘 살고, 일 년을 잘 살면 그만인 거죠. 그러다 어느 날 가겠죠."

"진짜 H 씬 그렇겠어요. 하지만 그러고 살면 사는 게 너무 심심하고 밋밋하잖아요"

"그러라고 있는 게 삶인 걸요? 옛날에 꿈 많고 철없을 때 중년이나 노인들 보면 꿈도 없이 하루하루 어떻게 저러고 사나 좀 심한 말 같지만 집짐승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집짐승?"

"집 없이 살 수 없고, 집만 지키고 그 안에서 볶닥거리고 사는..."

"흠..."

"말이 너무 심했나?"  

"아뇨. 좀 생경해서요."

"후후. 이걸 두고 내로남불이라고 해야 하나? 막상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평범하게 살다 보니 그렇게 사는 사람도 존재의 의미가 없는 건 아니겠더라구요." 

"H 씨가 무슨 꿈을 못 이루고 평범하게 살아요? 작가로 열심히 글 쓰고 살았잖아요. 책도 냈으면서..."

"아유, 그깟 책. 개나 소나 다 내는 책인데..."

"그 개나 소나 내는 책을 나는 아직도 못 내고 있습니다요."

"그거야 안 내는 거지 못 내는 건가? J 씨도 마음만 먹으면 책 한 권 뚝딱 낼 걸요? 하긴 말이 좋아 뚝딱이지 쉽지는 않더라구요. 그래도 마음 하나 뚝딱 먹으면 언제든지 책은 낼 수 있어요.   

어쨌든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쉽지는 않아요. 그런 사람도 어느 날 세상에 없으면 슬퍼할 사람이 있을 거잖아요. 그럼 그것으로도 존재의 의미가 있는 거잖아요."

"아유, 그럼요."      

"그런데 사는 것도 맘대로 안 되는데 죽는 것이라고 맘대로 되겠어요? 난 그냥 유전자로 감 잡고 있어요."

"유전자...?"

"내가 아버지 유전자를 닮았으면 60도 못 채우고 갈 것이고, 엄마 유전자를 닮았으면 오래 살 거예요. 

아버지도 할머니의 유전자를 받았으면 오래 사셨을 거예요. 할머니가 80 넘어 돌아가셨거든요. 근데 하필 할아버지 유전자를 닮아 가지고. 할아버지가 아버지 11살 때 돌아가셨대요. 그것도 갑자기."

"그럼 꽤 일찍 돌아가신 거네요. 옛날 분들 결혼 일찍 하셨잖아요. 열아홉, 스물에. 그러면 30대 중반...?"

"아, 그 보단 오래 사셨을 거예요. 우리 할머니가 후처셨거든요. 아버지 위로 이복형이 둘이 있구요. 그렇게 생각하면 거의 40이거나 겨우 넘기셨거나 뭐 그러지 않으셨을까요?"

 "그랬겠군요."

 "그래도 아버지는 60을 못 채우셔서 그렇지 할아버지 보단 오래 사셨어요. 근데 또 아버지 5형제 중에 아버지만 단명하셨죠."

 "그래요?"

 "두 큰 아버지는 70은 넘겨 사셨고, 아버지 밑의 두 작은 아버지도 아직 살아 계세요. 둘째 작은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해소병이 있으셨는데 그게 생각보다 무서운 병이더라구요. 그래서 항상 죽는다 죽는다 했대요. 그런데도 여태 살아 계세요. 그러고 보면 아버진 생에 대한 욕심이 너무 강했봐. 하하."

 "그런 건가요? 하하."

 "어쨌든 그러더니 우리 오빠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게 일찍 갔잖아요. 그런데 비해 우리 외가 쪽은 장수 체질이에요. 외할아버지가 일흔넷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미국에서 돌아가셔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래도 80은 넘기셨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 엄마도 봐요. 대장암이어도 80 넘도록 건강하게 잘 살고 있잖아요."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면 나도 오래 살 것 같아요. 우리 엄마도 치매지만 팔십 둘이고, 우리 큰 이모가 거의 90을 사셨어요. 엄마 형제들이 다 그렇죠. 아버지 쪽도 그렇고."

 "그러니까 J 씨는 오래 살 거라니깐요. 하하. 하지만 그런 건 있을 것 같아요. 사람이 몇 살에 죽던 죽으면 세상이 변화해 가는 걸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으니 좀 아쉬울 것 같아요. 하긴 지금도 변하는 세상에 살지만 그렇다고 만족하며 사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

"그 변해 가는 세상에 내가 없을 거니까 그렇죠. 이 세상은 내가 나고 살아온 세상이지만 죽어서 갈 세상은 우리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겠죠? 그래도 몇 살을 살든 엄마 보단 조금 오래 살아야지 해요."

"그럼요. 그래야죠." 


 그녀들은 그러면서 두런두런 다른 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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