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거리는 두 글자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경상도 마을에서 3남 3녀를 둔 부부의 손에서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 키우던 막내아들은 자라나서 부산의 한 항만회사에서 일하게 되었고, 집 앞에 나서면 갯벌이 보이는 전라도 마을 4남 3녀를 둔 부부의 손에서 예쁨 받고 자라난 셋째 딸은 자라나서 부산의 한 신발공장에 일하게 되었다. 이때 나이 스물 중반이 되어버린 경상도 청년과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전라도 아가씨는 함께 일하던 친구 커플의 주선으로 만나게 되었다. 키가 크고 매너가 좋았던 청년과 수줍음이 많고 예뻤던 아가씨는 서로의 첫인상에 반하게 되어 직장과 생활 터전이 '부산'이라는 공통점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함께하는 시간 동안 미래를 약속하게 된 사이가 되었다. 4년간의 사랑을 키워가던 중 서로에게 좋은 모습, 좋지 못한 모습 다 보았던 그들은 헤어질 뻔도 했었지만, 청년은 독립된 가정을 가진 가장으로서의 새 출발을 꿈꾸었기에 아가씨를 놓칠 수 없어 늘 붙잡았다고 한다. 아가씨는 청년보다도 청년의 누나들(미래의 시가 형님들이 될 분들)의 친절한 모습이 인상 깊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80년대 시대상황 상 우리나라의 동서 간 지역감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그들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지역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보수적인 집안이었던 청년은 자신의 셋째 누나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순서를 기다리느라 둘은 먼저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작고 소중한 생명이 생겨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청년의 셋째 누나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곧 청년과 아가씨의 결혼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 작고 소중한 생명이 바로 지금의 '나'이다. 경상도 청년이 우리 아빠, 전라도 아가씨가 우리 엄마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후일담으로 더 이야기하자면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엔 내가 찍혀있지 않았지만 그날의 현장 스냅사진 속에는 큰 엄마에게 업혀있는 내 모습이 기록되어 있었다.(엄마, 아빠의 결혼사진을 보던 중 성혼선언문 날짜가 내가 태어난 해보다 1년 뒤라 엄마에게 물어보니 이런 연애시절부터 결혼까지 쭉 이야기해 주셨다.)
신혼여행도 둘이 아닌 셋이 함께 갔었더랬다. 엄마, 아빠 그리고 한 살배기 아가였던 나.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시작했던 둘이었기에 그 당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제주도로는 신혼여행을 가지 못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가 다니고 있던 회사와 제휴되어 있었던 천안 독립기념관 콘도가 직원 할인가로 이용할 수 있었기에 신혼여행을 천안으로 떠났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아빠는 신혼여행을 즐기는 동안 카메라를 이용해 나와 엄마, 그리고 아빠 모두 함께 프레임 속으로 많이 찍어 놓았다. 그 사진들은 지금도 고스란히 우리 집 앨범에 꽂혀 잘 간직되어 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필름(원본)과 함께 말이다. 지금도 집에 내려가면 그 시절 사진부터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그 당시 아름답고 찬란했던 이십 대 청춘의 아빠, 엄마는 함께 만들어갈 삶의 주어진 시간을 치열하게 살아왔다. 항상 바쁘게 일하는 모습의 엄마, 아빠를 봤어야 했고, 세 식구였던 우리는 동생이 태어나면서 넷이 되었다. 지나간 시간들과 함께 얻어진 훈장 같은 흰머리는 엄마, 아빠의 풍성했던 머리카락 사이사이 늘어갔고, 얼굴 속, 손가락 마디 사이마다 주름들도 하나둘씩 늘어갔다. 꼬물거리던 아이들은 금세 자라 성인이 되었고, 가정을 꾸려 나갔다. 자식들은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 때보다 고생하지 않고 온전하게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였고, 그 성장을 항상 곁에서 지켜보며 든든한 지원과 응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넷이었던 가족은 각 가정을 꾸려 나가는 바람에 다시 이십 대 연애시절 때처럼 아빠랑 엄마 단 둘만 남아 있게 되었다. 과거 청춘을 지나 아이들과 함께 안정된 삶을 위한 생활에 집중했다면, 현재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은 엄마, 아빠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비로소 찾아오게 된 것이다. 칠순 그리고 예순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너무나도 좋은 시절을 다 보내버린 부모님에게 항상 미안함과 고마움은 공존해 있다. 다시 시작될 엄마, 아빠의 두 번째 청춘을 위해 곁에서 나와 내 동생이 응원해 줄 차례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못다 한 청춘을 한껏 펼치시길 바라며-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