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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와정피디 Feb 02. 2018

비 내리는 셀프 골든 서클 투어 Ⅲ

DAY 2 세 번째 이야기



게이시르, 냉정과 열정 사이 



삶은 달걀 냄새. 슬금슬금 다가갈 수록 유황냄새가 난다.



비에서 시작해 비에서 끝난 싱벨리어 국립공원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은 우리는 서둘러 공원에서 나와 게이시르로 향했다. 빗속에서는 알지 못했는데 차에 타자마자 새삼 추위로 오한이 돌기 시작했다. 히터를 끝까지 돌려 따뜻한 바람에 몸을 녹이며 다음 목적지, 게이시르는 또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다. 뽀글뽀글 간헐천이 솟구치는 곳이라는데 용암처럼 물기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가자마자 가장 큰 분화구로 달려가 카메라를 켜고 기다려야지. 비는 언제쯤 그치려나. 이런저런 기대감 토크(?)를 하다 보니 게이시르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에서는 차로 50분 정도. 평균 4시간을 자랑하는 아이슬란드의 거리를 감안한다면 가벼운 동네 마실(?) 정도의 짧은 거리였다.

 

드디어 도착한 게이시르!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게이시르는 생각보다 작았다. 싱벨리어 국립공원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규모였다. 게다가 멀리서 보기에도 비슷한 크기의 분화구가 여러 개. 분명 포스팅에서는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물줄기였는데. 여기저기서 물줄기가 깜짝 놀란 것처럼 잠깐 튀어 오르고 말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떤 분화구가 가장 큰 물기둥을 뿜어내는지를 알 수 없었다.  

무심하게도 여전히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겨우 말린 옷들이 다시 젖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구별할 수 있는 안내판은 비에 가려지고 유황천 연기에 숨어 형제만 간신히 구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 아이슬란드는 우리를 싫어하는 건가.



저기에 계란 삶으면... ♡



아이슬란드의 날씨가 오락가락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정도면 오락가락 수준을 넘어 숨 넘어갈 정도다. 날씨 너 나빠...


비와 유황 연기가 뒤섞여 짙은 안개에 뒤덮인 것처럼 묘한 뷰를 선사했다. 거기에 으슬으슬한 몸까지. 현실이 아닌 것처럼 묘했다. 다른 여행객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로 멍한 표정을 나누며 게이시르 웅덩이들을 구경했다.

한국에서 보았던 영상은 모두 한 곳이었다. 흐릿한 가운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서둘러 찾기 시작했다. 간헐천의 물기둥은 말 그대로 '간헐적으로' 솟구치기 때문에 영상 속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위해서는 적어도 30분은 자리를 버티고 있어야 했다.


물을 흠뻑 머금은 외투는 이미 짐이 된 지 오래였다. 추위는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며 우리에게 속삭였다. '어차피 제대로 못 보니까 그냥 가자.'  그냥 돌아서 차로 향하면 따뜻한 커피와 히터 바람이 우리를 기다린다. 조금만 걸어가면...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곳에 왔던가. 그 지긋지긋한 밤샘 작업을 버티고 왔는데! 온갖 스트레스를 뿌리치고 장장 15시간을 날아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서서 30분만 기다리면 볼 수 있는데!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깝고 지켜보기에는 지치는 시간이었다.

가고 싶은 마음을 한 53번쯤... 다독이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언뜻 보기에도 엄청난 규모의 웅덩이였다. 여기서 제일 큰 걸로 봐서는 영상 속 장소가 여기임에 틀림없다. 웅덩이에 고여있는 유황천은 언제라도 바로 솟구칠 것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모인 사람들 역시 약속이나 한 듯 주섬주섬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10여 분, 물기둥의 전조증상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물보라가 점점 커졌다. 사람들의 함성도 그에 비례했다. 곧 엄청난 물기둥이 솟아오를 것만 같았는데. 그랬는데.


후하후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이 친구 덕분에 더 좋은 영상을 건졌다구!^^



분명히 우리가 봤던 영상에는 깜짝 놀랄 만큼 크고 거대한 물기둥이 솟구쳤다. 100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높이였다. 하지만 방금 우리가 본 건 그 영상의 1/10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소리만 요란했지 10m도 되지 않는 물보라. 심지어 물기둥이 올라오지도 않고 조금 큰 물보라만 부글거리다 다시 잠잠해졌다. 다음 폭발까지는 또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아니 얼마나 기다려야 간헐천 분수를 볼 수 있단 말인가요! '10분 뒤'라고 정해져 있기라도 한다면 기다릴 텐데. 기약 없는 기다림은 유난히 길고 지루하다. 그건 우리 말고도 저 여행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간헐천 주위를 겹겹이 둘러싼 사람들은 흥미를 잃은 표정으로 뿔뿔이 흩어져 다른 간헐천으로 향했다.

역시 흥미를 잃어버린 이작가와는 반대로 오기가 생긴 정피디. 그래도 피디인데 끝까지 남아 최고의 순간을 기록하겠다는 정피디는 다른 간헐천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물기둥에 흥미를 잃은 대신 지켜보는 사람들에 흥미가 생긴 이작가는 여기저기를 슬렁거리며 사람들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헤어져 서로의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합성, 보정 1도 없는 순도 100% 사파이어 블루 컬러. 마법같은 컬러.





이작가 SAYs, 아이슬란드의 신비, 우주의 신비


촬영에 여념이 없는 정피디를 뒤로하고 이곳저곳 웅덩이들 구경을 다녔다.

기괴한 모양으로 녹아있는 웅덩이부터 무지개 색깔들이 비치는 웅덩이. 너무 작아서 아무도 찾지 않는 것도 있고 따뜻한 김을 뿜어내며 사람들을 이끄는 것들도 있었다.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던 순간, 문득 옆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온도가 높아 훈훈한 열기를 뿜어내는 한 웅덩이였다.

잠깐 그곳에 멈춰 손을 내밀어 따뜻한 김을 쐬었다. 내가 오기 전부터 그곳에 자리하고 있던 노부부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룰 바라보며 "어떻게 이렇게 따뜻하지?" "사람들이 추우니까 선물로 온기를 주는 거야"라는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 저 멀리 산꼭대기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만년설과 활화산이 공존하는 나라. 천 년이 넘은 이끼가 가득한 도로를 지나면 천 년의 화산재가 덮인 빙하 덩어리를 만날 수 있는 나라.  

뜨겁게 폭발하는 동시에 꽁꽁 얼어버리는 나라.

 

과연 이곳이 지구가 맞을까.


세차게 내리는 비가 아니었다면 정말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피디 SAYs, 솟구쳐라 나의 열정


진심 정말 매우 완전 너무 많이 기대를 했나 보다.

머리로는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잊었던 PD 본능이 다시 되살아났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신기한 장면을 너무나도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몇 번을 계속해 봤던 장면.


나도 촬영하고 싶었다.


심지어 물기둥이 겨우 10m 솟구쳤을 때 촬영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내 앞에 있던 어린아이가 카메라를 제대로 가리는 통에 소중한 10m마저 제대로 찍지 못했다. 나는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게이시르도 가끔 쉬어갈 때가 있겠지... 한 번은 쉬었으니 다음은 내가 원하는 영상을 담을 수 있겠지 생각했다. 이작가와 헤어진 후 다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또다시 마냥 물기둥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10분은 지났을까? 바람에 모자는 자꾸 뒤로 벗겨지고, 우비는 찢어지고. 게다가 여전히 내리는 비에 입고 있던 점퍼가 푹 젖기까지 했다.

‘그냥 포기할까.. 어차피 보긴 봤으니 그걸로 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할 무렵,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잠잠한 웅덩이가 갑자기 꿀렁거리며 솟아오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경험상,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물기둥이 솟구칠 것이다. 점점 물이 끓는 것처럼 보글보글 방울을 뿜어내기 시작하고, 카메라를 웅덩이에 고정하고 있는데!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우렁차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웅덩이 속 물기둥이 꽤 높게 솟아올랐다. 서둘러 영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고, 촬영도 성공했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가 왔습니다. 영상으로만 만나볼 수 있던 게이시르의 물기둥!


오늘 제대로 만났습니다. 물론 기대한 높이는 아니었지만, 이것만으로도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힘차게 위로 솟구치는 물기둥을 보며 내 속이 다 시원해진 건 안 비밀.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과 함께 환호했다.


그래 됐어, 이번 내 미션은 여기서 대 만족이다!  


솟구치는 열정의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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