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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와정피디 Feb 26. 2018

우연이 우리에게 준 것들 Ⅱ

DAY 3 두 번째 이야기






한 시간쯤 달렸을까? 우리의 첫 목적지 디르홀레이까지 한 시간 반쯤 남았을 때였다.

관광지처럼 보이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에 정차되어 있는 수많은 차들과, 어디론가 걸어가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 목적지가 어딘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느낌에 이끌리듯이 우리도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아이슬란드에는 워낙 사진을 찍거나 쉬어 갈 수 있는 포인트들이 도로 중간마다 잘 정비되어 있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보는 곳이라면 필시 우리가 모르는 관광지일 거라는 생각에 우리 두 사람 또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들판을 슬슬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길어도 10분 정도면 도착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10분은 고사하고 30분을 걸어도 목적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설상가상 길은 울퉁불퉁한 자갈밭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길의 끝을 알고 있다면 마음이라도 설레지, 뭔지도 모르는 길을 계속 걷고 있자니 밤새 하염없이 걷던 꿈마저 생각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힘들 줄 몰랐지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분명 JYP는 이 길을 걸으며 GOD의 노래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쩜 이리 가사와 찰떡궁합인지.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계속 걸어가는 이 애매모호한 느낌적인 느낌. 

다시 돌아가기에는 걸은 시간이 아깝고 계속 나아가자니 얼마나 더 가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아니 내 옆에서 같이 걸어가고 있는 저 커플은 어딘지 알고 걷는 것인가. 왜 표지판은 제대로 세워놓지도 않아서 우리는 이렇게 알지도 못하고 걷고 있는가. 


알 수 없는 어느 한 지점



노래도 부르고 농담도 주고받고. 즐겁게 걷는 것도 잠시, 이내 우리 두 사람은 점점 말없이 걷기만 했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걸어보려 양옆으로 떨어져 걷기에만 집중했다. 

처진 어깨, 바닥으로 향한 시선, 의지와는 상관없이 걷고 있는 내 다리.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는 외국인들은 우리를 보며 목적지가 멀지 않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지만 힘을 내기에 우리는 너무 지쳐있었다. 

호기심이 아닌 오기로 걷기를 한 시간 즈음. 

어렴풋이 바다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바다는 없고 이상한 물체와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 종착점. 보인다!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만남이자 발견이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이곳을 찾아본 적이 있다. 여기가 바로 ‘Solheimassandur Plane Wreck’였던 것. 이곳에 미 해군 비행기가 추락했는데 사상자 없이 다들 안전하게 살아남아 이렇게 비행기를 기념으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여행루트를 의논할 때, 가보고 싶긴 했지만 거리가 맞지 않아 포기했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마주칠 줄이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온 우리에게 신이 준 선물 같았다. 정피디는 비행기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이작가는 근처 돌을 주워 작은 돌탑을 쌓고. 각자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디르홀레이를 향해 돌아가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길은 거리가 무려 7km. 그러니까 왕복 총 14km를 걸은 셈이었다. 


같은 곳 다른 시간. 두 사람의 다른 기억.



돌아오는 길은 갈 때보다 더 짧게 느껴졌다. 얼마나 걸어가야 하는지 가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맞은편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의 얼굴도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아까 목적지까지 걸어가던 우리의 표정과 매우 흡사했다. ‘아직 지치지 말아요, 아직 1시간은 더 걸어야 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이작가 SAYs ,  길 위의 인생, 인생이라는 이름의 길


나는 늘 마지막이 궁금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책을 읽을 때면 늘 마지막 장을 펼쳐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확인을 하고 읽어야 직성이 풀린다. 

영화를 보러 갈 때면 대개 스포일러를 한 번 보고 영화를 본다. 

일을 할 때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체적인 것들을 체크하는 것이 습관이다. 

끝을 알아야 마음이 편해지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끝을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인생, 지금 흐르는 시간의 종착지. 


이 지난한 길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중간에 돌이킬 수도 없다.

잘못 왔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리셋하고 다른 편을 선택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 끝은 있고, 그 끝에 도착하면 무언가는 반드시 남는다. 


이 길에서 감히 인생과의 공통점을 찾아본다. 

그래서 흔히 인생을 길 위에 있다고 표현하나 보다. 

내 인생길의 끝에서 나는 어떠했다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궁금하다.



누군가의 종착점이 될 수도 있었던 곳.





정피디 SAYs, 포기하면 편해~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정말 진심으로 여행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딱 두 번 있었다. 

바로 첫날과 오늘. 

첫날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비바람 속 렌터카를 빌리던 순간, 

그리고 비행기를 보기 위해 끝도 없이 걸어가던 오늘이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여행 자체를 포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 이거 하지 말까? 여기서 그냥 포기해 버릴까?’라는 생각을 내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왕복 3시간이 되는 여정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걸었던 덕에 기억에 남길 수 있는 

소중한 추억 하나 가 늘어난 셈이었다. 


사실 나는 포기가 굉장히 빠른 편이다. ‘안 되면 말고’라는 생각을 달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 태도가 어떤 사람들은 ‘쿨’하다고 말해주지만, 사실 쿨하기보다는 그저 편한 것을 추구하는 것뿐이다.  도전하기보다는 포기하는 편이었고 그렇게 지내며 나는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일을 통해 느꼈던 성취감 역시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방송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내가 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피디’라는 직업에 대해 자신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고, 마음을 정리하고자 여행을 떠났던 것이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인생 속 이런 난관은 어쩌면 남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정도의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길을 걷는 내내 맘속에 되뇌던 ‘포기할까?’라는 말을 이겨내고 획득한

달콤한 성취감인 것이다.



이들도 우리와 같은 달콤한 성취감을 느낌 사람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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