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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와정피디 Mar 15. 2018

우연이 우리에게 준 것들 Ⅲ

DAY 3 세 번째 이야기




더 높은 곳으로


이상하다. 걷기만 했을 뿐인데 체력이 벌써 바닥났다. 

벌써 오늘의 여행은 다 한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의 일정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거. 지친 두 몸뚱이를 추스르고 오늘의 첫 목적지, 디르홀레이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한 시간 30분 정도를 더 달려야 할 것 같다. 

다행히도 오늘 날씨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다. 먹구름이 끼며 흐려지는 것 같던 하늘은 점점 개이고, 우리는 다시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연신 창밖을 바라보았다. 


날이 좋아도, 좋지 않아도 달린다.



여러 갈래 길을 거쳐 드디어 디르홀레이 표지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말 거의 다 왔구나, 다시 설레기 시작했다. 몇 개의 오르막을 달리며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도 우리의 마음을 더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제 이 길만 넘어가면 디르홀레이다. 

음 그런데...? 


웬걸, 진짜 길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허름한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고개를 넘듯이 꼬불꼬불한 급경사 커브길 양옆에는 가드레일도 없다. 핸들을 잘못 돌리는 순간 바로 추락할 것 같은 길이었다. 다른 길을 찾아봤지만 내비게이션은 이쪽이라 하고, 설상가상 우리 뒤를 바짝 따르는 차들 때문에 돌아갈 수도 없다! 

한껏 긴장하는 정피디를 토닥이며 살금살금 고개를 넘었다. 다행히도 길지는 않아 금방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정말이지 아이슬란드에서는 어떤 것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준다. 

그 이상이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분명 좋은 쪽인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우리에게 선사했으니.


탁트인 초원에 풀어 두는 내 이야기들 



올라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탁 트인 초원이었다.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광경에 우리 두 사람은 할 말도 잊은 채 서둘러 주차를 하고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초원 위, 그림처럼 홀로 자리를 지키는 하얀 등대.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절벽과 검은 모래 해변. 절벽 틈에는 이름 모를 새들의 둥지를 아가 새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또 하나의 아이슬란드를 만난 기분이었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 틈에서 우리도 서로가 느낀 디르홀레이를 각자의 핸드폰에 담았다. 


코끼리 물 먹는 중!



문득 우리가 처음 여행을 결심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 당시의 우리는 너무도 답답하고 힘들었다. 

일주일에 7일을 꼬박 일해도 늘 시간은 부족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늘 문제가 터졌다. 화풀이를 하듯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웃어넘겼지만 마음속에는 힘들었던 기억들이 아직 남아있었던 것 같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때의 일들을 꺼냈고, 탁 트인 절벽에 앉아 두런두런 모든 감정들을 털어놓았다. 


이곳은 우리만의 ‘대나무 숲’이었다. 


어느 하나 같은 곳이 없는 그 곳. 디르홀레이.





정피디 SAYs, 우리 잘 모르고 왔어요


여행을 오기 전까지 정말 바빴다

심지어 출발 하루 전날이 프로그램 납품일이었다. 

정신없이 편집을 하고 방송국을 오갔으니 인터넷이나 책을 찾아보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중요한 몇 군데만 찾아본 것이 전부였지만 마음이 가벼웠던 이유는 청춘들이 아이슬란드를 가는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는 것이었다. 방송에 나왔던 장소를 중심으로 여행코스를 짜 보려고 했고, 디르홀레이도 그중 하나였다.


사실 디르홀레이에 도착하면 ‘할그림스 키르캬’ 디자인의 모토가 되었다는 주상절리와 검은 모래 해변이 장관을 이루는 바다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이상하게도 내비게이션은 자꾸 언덕 위를 가리키는지. 

사람 간 떨리게 절벽 옆의 길만 안내하는지. 그래도 절벽에 도착해 아래에 펼쳐진 검은 모래 해변과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며 ‘모로 가든 잘 도착했으니 됐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다시 찾아보니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곳은 ‘레이니스파라’였다. 

두 장소 간 거리도 멀지 않고 풍경도 비슷해서 디르홀레이를 그곳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얼마나 대강 알아보고 온 건지 들통 난 순간이었다. 


나 진짜 준비 1도 안 하고 왔구나. 

그나마 봤다고 안심했던 그 프로그램도 제대로 본 게 아니었구나. 

물론 디르홀레이에 도착한 순간 다른 것은 생각이 나지 않았을 정도로 만족스러웠지만, 

다음 장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 사실을 이작가에게 고하며 너무나 부끄러웠다. 

다음 여행은 반드시 장소를 확실히 알아보고 가리라. 나름의 교훈을 남긴 에피소드였다.



세상 아름다운 뷰. 카메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이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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