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작가와정피디 Mar 19. 2018

우연이 우리에게 준 것들 Ⅳ

DAY 3 네 번째 이야기




우연 혹은 인연


우여곡절 많았던 오늘의 여행 종착지, 디르홀레이를 내려와 다시 왔던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빙하 투어부터 고래 투어까지 아이슬란드에서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었다이 욕심 덕분에(?) 일주일 간의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의 2/3를 돌아보는 어마어마한 여행 일정이 나오게 되었다. 수도 레이캬비크를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5시 방향에 위치한 요쿨살론까지 다녀온 후, 다시 차를 반대로 돌려 북쪽으로 1시 방향에 위치한 후사비크까지 다녀오는 그야말로

 

‘마음대로 짠 오락가락’ 일정. 


내일 요쿨살롱을 가보기로 했지만 그 근처에는 우리의 조건(경비 그리고 경비...)에 부합하는 숙소가 없었기에 오늘은 레이캬비크와 요쿨살롱의 중간 기점인 '헬라'에 숙소를 잡고 짐을 풀기로 했다. 그리하여 정해진 오늘의 여행 코스. 디르홀레이까지 갔다 다시 헬라로 되돌아오기. 내일은 하루 종일! 요쿨살롱에서 온전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 정한 일정이었다.   

자, 그럼 디르홀레이도 보고 왔으니 오늘의 숙소인 헬라로 다시 돌아가자. 디르홀레이에서 헬라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 돌아가는 길에는 사진작가들의 단골 촬영지로 유명한 거대 폭포,

스코가포스를 만날 수 있다. 


아이슬란드의 흔한 폭포.JPG



전혀 생각지도 않던 장소도 가보고, 선물처럼 우연히 주어진 풍경까지 눈에 담느라 하루 종일 참 많이도 걸었다. 과장 살짝 보태면 촬영할 때보다 더 많이 걸어 다닌 것 같다. 발끝에서 시작한 피로는 점점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졸음도 넘실넘실 밀려온다. 스아실 허우대만 멀쩡하지 체력은 젬병인 이작가와 정피디. 두 사람 모두 속으로는 ‘어디 들르지 말고 그냥 빨리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다’는 마음이 절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지금 힘들어 그냥 숙소로 들어간다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걸. 


그리고 이렇게 귀찮아하다가도 막상 도착하면 완전 진짜 리얼 헐 분명히 좋을 거라는 걸. 아주아주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욕심쟁이 우리 두 사람이 절대 이런 최고의 뷰포인트를 놓칠 순 없지. 쉬고 싶다고 연신 외치는 몸뚱이를 애써 모른 척하며 폭포를 향해 달렸다. 

다행히도 폭포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차 안에서 레이니스파라를 디르홀레이로 착각한 정피디의 고백을 나누며, 우리가 그랬듯 긴긴 거리를 알지 못한 채 비행기 추락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보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세 스코가포스에 도착했다. 


입구의 캠핑장을 조금 걸어가면 야트막한 언덕이 보이는데, 그곳의 정상에서부터 떨어지는 폭포가 바로 스코가포스이다. 아이슬란드어로 스코가(Skóga)는 숲, 포스(foss)는 폭포를 뜻한다. 한데 숲은커녕 울창한 나무들 조차 보이지 않는다. 왜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이곳에 ‘숲의 폭포’라는 이름을 지은 것일까. 숲과 나무를 그리워하는 숲의 정령이 만들어낸 이름 이기라도 한 걸까. 

스코가포스에서는 푸릇푸릇한 풍경 대신 쉴 새 없이 바닥을 향해 내리꽂는 엄청난 낙차의 폭포와 물보라를 만날 수 있다. 때문에 날이 좋으면 무지개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소 중 하나라고도한다. 폭포 자체도 유명하지만 무지개를 보기 위한 사람들의 일념이 모여, 스코가포스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도 그 광경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멀리서부터 폭포의 웅장한 물보라 소리가 들려온다. 


과연 어마어마한 포스(force)의 포스(foss)다.

 


두근 두근 두근. 멀리서부터 느껴지는 웅장함



사실 아이슬란드에서 양, 말만큼이나 흔한 게 폭포다. 국도를 쭉 달리다 보면 저 너머에 크고 작은 폭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굴포스나 스코가포스, 고다포스, 데티포스 등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폭포들은 꼭 한 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우리나라의 폭포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그냥 스쳐가며 보는 폭포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 역시 처음 만난 폭포였던 굴포스와는 또 다른 모습의 스코가포스에 새로이 압도된 채로 폭포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알콜 샤워. 눈물 샤워. 그리고 물보라 샤워. 



굴포스가 어마어마한 규모와 웅장한 '느낌'으로 우리를 압도했다면 스코가포스에서는 '소리'로 압도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 물보라가 일어나는 소리,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의 소리. 마치 바로 옆에서 천둥이 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거기에 3D 영화관에서나 느낄 수 있던 물보라까지.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수 때문에 근처까지 가지 않아도 사방으로 어마어마한 물방울이 우리를 덮쳤다. 

하지만 오늘 아니면 언제 스코가포스의 물보라를 맞아보겠는가! 기왕 온 김에 바로 폭포 아래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어제는 비에 젖고 오늘은 폭포에 젖고. 아이슬란드 와서는 건조할 틈 없이 참 여러모로 늘 촉촉하다. 촉촉하다 못해 푹 젖어버리기 전에 모자를 꽉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장착하고 옷은 단디 여미고 폭포로 돌진했다. 점점 들어갈수록 우리 앞에서 걸어가던 사람들이 비에 젖은 생쥐꼴을 한 채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우리는 씩씩하게 폭포 아래까지 걸어갔다. 멀리서 폭포를 볼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알히 튀어 오르는 폭포의 물방울들.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의 낙차 소리, 그리고 끊임없이 흐르는 물, 순환하는 폭포의 움직임들. 


온몸이 푹 젖는 것도 잊은 채 우리 두 사람은 멍하니 물보라를 구경했다. 


공유하고 싶은 그때의 느낌. 이렇게라도 느껴볼 수 있다면.




<이작가와 정피디의 소소한 꿀 TIP> 


# 스코가포스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

스코가포스를 보고 싶지만 폭포수에 옷을 적시기는 싫은 사람들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을 소개한다. 바로 스코가포스 전망대로 올라가는 것이다.


스코가포스에 도착하면 폭포 옆 언덕을 따라 걷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폭포의 윗부분으로 

연결된다. 바로 꽃 같은 청춘들이 폭포를 내려다보았던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폭포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멀리 펼쳐진 지평선까지 만나볼 수 있다. 

이작가와 정피디 역시 이 길을 발견하고 끝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하루도 채 가지 못하는 몹쓸 체력. 비명을 지르는 노쇠한 몸뚱이. 이미 비행기 추락장과 디르홀레이에서 남은 HP를 다 쓴 두 사람은 차마 여기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아래에서 물보라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여행을 100% 만끽하고 싶다면 제일 먼저 체력을 기르길 추천한다. 더 많이 걸을 수 있고 더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가지 않은 길. 실은 가지 못한 길.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이 우리에게 준 것들 Ⅲ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