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두 번째 이야기
날씨 액땜을 했다고 생각한 건 순전히 우리의 착각이었다. 헬라에서부터 비크까지는 구름 한 점 없는 완벽한 날씨였는데. 출발하자마자 또 첫날에 겪었던 비와 돌풍을 만났다. 바깥 풍경을 감상하기는커녕 어딘가에서 돌이 날아와 우리 붕붕이에게 흠집을 내진 않을지 걱정하기 바빴다.
이렇게 거센 돌풍이 불면 도로가의 작은 돌은 어김없이 차체로 날아든다. 차 여기저기 작은 흠집이 나는 건 예사, 찌그러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유리창까지 깨진다고 한다. 첫날 렌터카 보험을 계약할 때 (굴욕의) 보증금 문제로 가장 저렴한 기본 보험만 들었다. 때문에 오늘 유리창이 깨지거나 차가 긁히기라도 하면 어마어마한 수리비를 물어야 한다. 긴장한 정피디는 말도 아낀 채 최대한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이렇게 오락가락한 날씨라니.. 혹시라도 후에 우리에게 아이슬란드의 날씨를 물어본다면, 그것만큼 바보 같은 질문은 없어! 라며 일축할 것이다. 분명 오늘 일기예보에 이런 돌풍은 없었다!
항상 출발하기 전, 기상청에 들어가 날씨를 확인하지만 지역마다 예보가 다르고 그 예보마저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지역의 날씨를 맞추기란 거의 복불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째 요쿨살롱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더 나빠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요쿨살롱까지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도착해서 빙하투어를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타기로 했던 투어 보트는 바람이 심할 경우 운행하지 않는다는 글을 보았기에 더 걱정이 앞섰다.
이 빙하는 제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빙하일지도 모른다구요. 언제 여기 다시 올지도 모른단 말입니다. 제발 오늘만은 저희에게 날씨 운을 주세요. 오늘 빙하투어를 할 수 있다면 집에 가는 비행기가 내내 흔들려도 상관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기도를 하며 우리 두 사람 모두 잔뜩 긴장한 채 도로를 달렸다.
몇 시간 정도 달렸을까. 시간 감각이 점점 흐려질 때 즈음, 몰아치는 비바람 너머로 검은 화산재 언덕이 보이다가 슬금슬금 눈 덮인 빙하 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도 놀랍고 신기해서 이제 놀라는 것도 지겹다. 한 나라 안에 존재하는 이토록 다채로운 풍경이라니. 분명 우리가 출발한 곳은 꽃이 예쁘게 핀 들녘이었다. 헌데 지금 우리 눈앞에는 꽁꽁 언 만년설 산이 보인다.
이 나라에 고작 4일 있었을 뿐인데 지구의 365일을 모두 만난 기분이다.
1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보라색 꽃 루핀보다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바위를 뒤덮은 이끼들이다. 언뜻 보면 푸른 들판처럼 보이는 이 이끼들은 사실 빙하와 함께 천 년의 역사를 그대로 품어온 아이슬란드의 터줏대감이다.
실제로 아이슬란드의 이끼는 그 자체를 보존하기 위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몇 군데만 개방하고 사람들의 접근을 철저히 금지시키고 있다. 루핀처럼 예쁘지도 않고 빙하처럼 신비롭지도 않지만 이 이끼야말로 아이슬란드의 모든 곳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낸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혹시 도로를 달리다 이끼가 덮여있는 자갈밭을 마주치면 잠시 차를 세우고 한 번쯤 가만히 들여다보자. 아이슬란드 천 년의 시간을 가장 손쉽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니.
그리고 진짜 꿀팁 하나.
아이슬란드의 이끼는 보습과 면역력 강화에 뛰어나 비누, 기초화장품에 쓰일 뿐만 아니라 차로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실로 ‘천 년을 인내한’ 으마으마한 효능 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