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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와정피디 Jan 10. 2018

여기가 아이슬란드, 레알인가요 Ⅰ

DAY 1 첫 번째 이야기


아이슬란드다아!......아?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지. 앞으로 닥칠 멘붕을



환승시간 포함 장장 15시간. 긴 비행 끝에 드디어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장거리 비행인 데다 비행기에서 마신 맥주 때문에 숙취까지 겹쳐 몸도 마음도 헤롱헤롱 한 상태였지만, 빨리 아이슬란드를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 품고 짐 찾는 곳으로 달려갔다.

한국에서 부친 짐은 잘 도착했을까. 걱정반, 근심반으로 짐이 나오는 게이트 앞을 주시했다. 드디어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하나둘씩 짐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이미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짐을 찾아가고 옆자리 아저씨의 짐도 나왔지만 우리의 짐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중간에서 짐이 분실된 건 아닐까, 아예 한국에서 출발하지 않았으면 어떡하지, 설마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있는 건 아닐까.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영어로 '짐을 잃어버렸다'는 어떻게 말해야 하지, 보상은 어떻게 요구하지, 보상을 요구해도 당장 입을 옷은 어떻게 구하지. 머릿속에서는 수십 가지의 상황이 펼쳐졌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렇게 답하자, 시뮬레이션까지 하며 짐을 기다렸다.


거의 모든 짐이 나오고 이제 남은 여행객은 우리를 포함해 채 10명도 되지 않았다. 점점 불안해지던 그 순간! 컨베이어 벨트 끝에서 우리의 캐리어가 나란히 나타났다.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 님 감사합니. 덕분에 오늘 저녁에 샤워도 하고 옷도 갈아입을 수 있겠네요. 가뿐한 마음으로 캐리어를 챙긴 후 바로 옆에 위치한 공항 면세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들 잘 알고 있겠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술을 사기 쉽지 않다. 때문에 공항을 나서기 전,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여기, 공항 면세점에서 술을 잔뜩 사서 나가곤 한다.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의 로망이었던 ‘와인과 치즈가 함께하는 낭만 넘치는 아이슬란드의 밤’을 만끽하기 위해! 우리도 호기롭게 와인 한 병을 고르기로 했는데. 그랬는데.


아뿔싸. 여기서 또 우리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으니. 공항 면세점에는 넘나 많은 종류의 와인들이 가득했고, 우리는 와인에 넘나 무지하다는 것이다. 대충 훑어봐도 100여 가지는 넘을 듯한 와인 진열장 앞에서 우리는 ‘낭만의 밤’에 적합한 스파클링 와인을 찾지 못해 멘붕에 빠졌다.  

‘그냥 맥주나 살까’ 고민하는 순간, 어딘가에서 손 하나가 불쑥 나왔다. 바로 우리가 타고 왔던 비행기의 기장님! 기장님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 브랜드의 와인을 세 개나 담았다. 마침 매장에 들어선 승무원들 역시 맞추기라도 한 듯 모두가 ‘그 와인’을 담았다. 이거구나! 모두 가져갈세라 우리도 냉큼 한 병을 바구니에 담아 결제하고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출구 쪽으로 걸어 나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지2. 일단은 낭만과 달달함의 밤




<이작가와 정피디의 소소한 꿀TIP>

# 술 마시기 참 어려운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에서 '술'을 구하기란 참 어렵다.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도수 높은 술을 아예 찾아볼 수 없고 2%의 약한 맥주 혹은 무알콜 음료만 판매한다. 아이슬란드 내에서 술을 사려면 빈부딘(Vinbudin)이라는 정부에서 관리하는 주류 판매점으로 가야 하는데, 이 빈부딘은 몇 군데 없을뿐더러 오후 6시면 문을 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술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캐리어에 술을 담아오거나 아이슬란드 공항 내 면세점에서 술을 구매해야 한다.


아이슬란드가 술을 가까이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존재한다. 가장 큰 이유는 종교와 관련이 깊다. 성찬 의식 때 포도주를 사용하는 등 비교적 음주에 자유로운 가톨릭 국가와는 달리, 개신교와 금욕주의 문화를 전통으로 하는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술을 '사람들의 정신을 미혹시키는 나쁜 것'으로 보고 20세기까지 금주령을 내렸다. 아이슬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또한 냉대 기후 지역인 아이슬란드에서는 너무 추워 와인의 주 재료인 포도가 자라지 않는다. 과일 또한 재배하기 힘들어 과실주를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야 했다. 그래서 주식인 감자와 호밀 등으로 술을 만드는데, 이는 식량의 감소를 뜻했다. 때문에 술을 규제대상으로 만들어 식량이 바닥나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물'과도 아주 연관이 깊다. 프랑스 등 대부분의 서유럽 지역에서는 수돗물이 석회암이기 때문에 물을 사 먹어야 하고 가격도 높은 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식사를 하며 물 대신 맥주나 와인을 곁들여 마시는 것이 보편적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커피나 차를 마신다. 이와 달리 북유럽은 지대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지하수가 저절로 정화된다. 실제로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바보 같은 행동이 '생수를 사 먹는 것'이다. 그냥 수돗물을 마시면 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같은 유럽이지만 서로 다른 환경과 기후로 사람들의 취향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결론은, 아이슬란드에서 '취한 밤'을 보내고 싶다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것!




짐도 나왔겠다, 낭만의 밤을 위한 와인도 샀겠다! 이제 입국심사 도장만 받으면 되는데, 출구를 찾아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걸어갔는데....? 입국심사 도장은커녕 바로 밖으로 나가는 문이 열린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노.룩.패.스?? 알고 보니 EU 국가를 환승한 사람들은 별도의 심사 없이 입국을 할 수 있었다. 핀란드를 경유한 우리 역시 심사 없이 입국이 가능했던 것.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계속 입국심사장을 찾아 헤맸으니. 뭔가 시작은 엉성했지만 어쨌든 제대로 왔으니 다행이었다. 게다가 날씨도 생각보다 춥지 않다.

그동안 상상해오던 아이슬란드와는 넘나 다른 모습에 불안했지만 묘하게 흥분되기도 하면서 우리의 첫 여행은 시작되었다.

여행은 항상 하늘 위에서 가장 설레이는 법.





이작가 SAYs, 조금 더 불안해지기


뭐든지 다 설레던 대학교 1학년 첫 방학. 혼자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돌아보기로 했다.

갈 곳을 정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여행 일정을 정리하고. 처음 혼자 가보는 여행에 두근거리는 마음도 컸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라 사실 불안감이 더 컸다.

버스를 헷갈려 잘못 타면 어쩌지, 여기서 여기까지는 어떻게 이동해야 하지.

결국은 몇 번 버스를 타고 어느 정류장에서 내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세세하게 경로를 체크했고 분 단위의 여행 스케줄을 짠 후에야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꼼꼼한 스케줄은 되려 여행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슬이 되었다. 분명히 정각에 버스를 타야 하는데 한참 뒤에 도착해 기차를 놓치기도 하고, 한참을 걸어가 겨우 도착한 곳은 이미 없어진 곳이었다.

그렇게 첫 여행은 ‘실패한 여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해, 다시 여행 계획을 짜며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일정을 짰다. 꼭 가고 싶은 장소 몇 군데만 찾아보고, 숙소만 정한 채 무작정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몰라 불안과 멘붕의 연속이었지만, 이내 그 불안은 묘한 흥분으로 바뀌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지루하면 내려서 걷기도 하고, 우연히 들른 동네가 좋아 숙소를 바꿔 며칠 동안 동네를 누비기도 했다. 

무작정 걸어가다 만났던 대문호의 문학관, 이름 모를 해변에서의 꿀 같던 낮잠.

아무 정보 없이 들렀던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멋진 추억까지. 여행이 즐거운 '사건'들로 채워졌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마르셀 푸르스트


그 이후로 나의 여행은 새로운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풍경으로 바뀌었다.

낯선 곳에서 마음껏 불안해하자. 그리고 그 불안감을 가만히 느껴보자. 그 감정들은 당신을 전혀 가보지 못했던 새로운 곳으로 데려갈 수도 있다. 새로운 눈으로 그곳을 바라본다면 이전에는 얻지 못했던 뜻밖의 것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f9y-g9wcRU8

여행길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 Thomas Cook 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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